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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 김길웅 시인346

가을 통신 가을 통신 김길웅. 칼럼니스트 일상의 단조함에 대한 가벼운 저항인가. 언제부턴가 습관이 됐다. 아침에 일어나 베란다 창을 열면 그 너머 한라산 어깻죽지로 눈이 달려간다. 어떤 손이 비질했나. 간밤에 잔뜩 머물렀을 구름 한 조각 떠 있지 않다. 활짝 열린 아침 산은 세상을 비추는 장대한 명경 같다. 이 섬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다는 아득한 상상에 닿는다. 무서리 밟고 산을 가파르게 내린 산의 정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거기 겹겹이 에워싸인 내 사유의 둘레로 한 좨기 소슬바람 지나간다. 머릿속엔 생각다 만 어제의 잡념 같은, 풀지 못한 채 침전된 앙금 같은 것들, 한 톨도 남아 있잖다. 하수종말처리를 끝낸 삽상한 아침이다. 어디를 유랑하다 돌아온 사람처럼 딛고 선 자리가 허술한 느낌이었다. 코로나19가 침노해.. 2020. 10. 24.
2020 트롯 어워즈 ‘2020 트롯 어워즈’ 제주일보 승인 2020.10.15 김길웅. 칼럼니스트 트롯 100년을 결산하고 새로운 트롯 100년을 모색하는 ‘2020 트롯 어워즈’가 추석날 밤에 열렸다. 코로나19로 지쳐 있던 국민들, 추석 명절임에도 귀성하지 못한 채 주저앉은 가족들에게 뜻밖의 위로와 즐거움을 선물했다. ‘어워즈’란 말이 낯설어 까칠했으나, 시상식쯤으로 추슬렀다. 트롯이 아닌,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의식도 어워즈일 거라 하면 편하다. 트롯은 서민의 알짜 노래로, 그들의 애환을 담은 대중음악이다. 노래방이 그냥 생겨난 게 아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열린 공간에서 민요를 타령으로 부르며 가슴속 맺힌 한을 풀었다면, 오늘의 한국인들은 닫힌 공간인 노래방을 즐겨 찾는다. 트롯 열풍엔 세대 차며 도·농이 따로.. 2020. 10. 16.
제주일보여! 제주일보여! 김길웅. 칼럼니스트 9월 27일, 75번째 생일을 축하합니다. 1945년, 나라가 해방되던 해에 창간했으니, 감회 곱절이겠군요. 사람의 나이 종심(從心)에 5년을 더 얹어야 합니다.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풍찬노숙 다 겪었으니 고난의 시절을 견뎌낸 용기와 강단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군요. 미물에게도 있는 이름 하나 제대로 갖지 못해 濟州新聞→제주일보→제주新보→제주일보로 전전해 오다 본명 ‘제주일보’를 되찾은 게 지난 7월 15일이었습니다. 그날 필자, ‘뺏겼던 그 이름, 되찾다’란 글을 올렸던 게 떠올라 가슴 울렁입니다. 하지만 미래를 바라봐야 할 우리가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미덕이 아닙니다. 이제는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닫힌 철비(鐵扉)도 반드시 열어야 할 그 계제이지요. 왜 대중이 .. 2020. 9. 25.
옷수선 옷수선 김길웅. 칼럼니스트 집이 해묵어 낡으면 수리한다. 기계가 녹슬거나 고장 나도 수리해 쓴다. 특히 집수리가 커지면서 반지르르하게 고치는 게 요즘 많이 하는 리모델링이다. 기계 수리라면 몰라도 집수리란 말은 별로 쓰지 않게 돼 간다. 시대의 물결을 타고 변화에 예민한 게 언어다. 언중(言衆)의 약속이라 말엔 그 시대가 고스란히 투영된다. 한데 옛일이 돼 버려선지 풍요로운 시절에 옷수선이란 말도 별로 쓰이지 않는다. 옷이 헐거나 허름한 것을 손봐 고치는 것인데, 요즘 세상에 옷을 수선해 입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을 것 아닌가. 오랜만에 옷수선이란 말을 들추니, 옛일이 떠오른다. 어릴 적에 입던 옷은 대부분 무명옷이었다. 무명은 천 짜임이 워낙 거칠고 성겨 촘촘하거나 단단하지 못했다. 그것을 어머니가 마.. 2020. 9. 18.
호감 그리고 사랑 호감 그리고 사랑 김길웅. 칼럼니스트 서로의 속정을 드러내어 친밀감을 내보일 때 우리는 이런 감정을 우정이라 한다. 좋게 여기는 감정에서 움트는 것으로 그 기반은 호감이다. 호감으로 긍정적인 마음이 고양(高揚)된다. 호감은 먼 데 있거나 막연한 게 아니다. 그가 나를 혹은 내가 그를 바라보는 관심의 눈길을 발견하고 그것을 상대에게 돌려주는 것, 그러니까 눈을 맞추고 서로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 그게 호감이다. 사랑은 호감에서, 호감이라는 잘 숙성된 좋은 감정에서 발원한다. 호감이 전제되지 않은 사랑은 실체로써 존재하지 않거나, 있어도 허술할 수밖에 없다. 이운 잎은 꽃으로 말하려던 자신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 있다. 하지만 호감이 사랑은 아니다.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근본적으로 말해 호감은 허울을 벗듯 그.. 2020. 9. 11.
잘 버리기 잘 버리기 김길웅. 칼럼니스트 살다 보면 많이 버리게 된다. 낡아 못 쓰게 된 것들이 대상이다. 헌 옷가지, 녹슨 철제품, 해진 신발, 오랜 가재도구…, 책도 버린다. 소장 가치가 없는 거라면, 읽지도 않으면서 공간만 축내고 있을 이유는 없다. 장식으로 전락하면 의미가 없다. 얼마 전 시내로 이사하며 적잖은 책들이 곁을 떠났다. 전집류도 과감히 정리했다. 출판한 지 반세기가 된 것들이 누렇게 떴을 뿐 아니라 세로쓰기에 좌서(左書) 체제가 오늘에 맞지 않아, 아이들이 읽으려 하지 않는다. 고서(古書)가 돼 버려도 그 시대의 향기는 변함이 없는 거라고 토를 달려다, 그만뒀다. 요즘 출판이 얼마나 깔끔한가. 장정(裝幀)이 하도 좋은 바람에 내용이 다소 빈곤해도 대충 넘어가기도 하는 세상이다. 서가에서 책들을 .. 2020. 9. 4.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김길웅 칼럼니스트 “미스터트롯 콘서트예요.” 8월 21일 밤 10시, 건넌방에서 오는 소리에 책을 덮었다. 일 없는 내게도 금요일은 느긋하다. 며칠 전 열렸던 미스터트롯 대국민감사콘서트였다. 나라를 휩쓴 물난리로 상처가 아물지 않은 데다 코로나19에 전 지역이 뚫려 심각하지만, TV 앞에 앉아 시름을 놓을지 모른다. 트롯이 국민의 아픔을 잠시나마 어루만져 주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TV를 보느니 책 한 장 넘긴다던 내게 어느 날 트롯이 묘용(妙用)한 감동으로 와 있지 않은가. 무딘 음감을 깨워 준 중심에 트롯 ‘진’ 임영웅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대중가요가 서민과 애환을 같이한다는 관념적 기대감을 뛰어넘어, 시나브로 그 속으로 빨려드는 건 모를 일이다. 이도 인연인가. 그의 목소리.. 2020. 8. 28.
반바지 반바지 제주일보 승인 2020.08.20 김길웅 칼럼니스트 불과 십수 년 전, 양복을 입던 교직 시절을 떠올린다. 교사는 학생 앞에 정장을 하고 섰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정장을 했다는 게 맞는 말이다. 가르치는 사람은 교사로서 품위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방과 티셔츠를 입거나, 요즘처럼 캐주얼한 옷을 입고 교단에 서는 교사는 거의 없었다. 어느 해, 고3생들과 원보훈련의 일환으로 한라산 1일 등산을 하던 날, 담임 한 분이 정장에 구두 신고 산을 오르내렸던 게 기억에 남아 있다. 경황없어 그랬겠지만, 관념적으로 그 정도였다. 옷은 불편해도 신발은 평소 신던 구두라 편했으리라. 정년퇴임 후 빠르게 달라진 게 복장이다. 변화가 속도를 탔다. 넥타이도 최근 몇 번 매지 않았다. 윗옷을 입어 예도를 .. 2020. 8. 21.
이 청록(靑綠)의 계절에 이 청록(靑綠)의 계절에 김길웅 칼럼니스트 읍내 초등학교가 별안간 새 옷을 갈아입고 있어 깜짝 놀랐다. 벽체를 몇 등분해 빨강·파랑·노랑 삼원색을 칠하고 바탕에도 새 색을 올렸다. 칙칙하던 학교가 새로 태어난 모습이다. 그냥 달라진 게 아닌, 재탄생이다. 빛깔의 묘용(妙用)이 효용 가치를 발휘했다는 느낌이 들면서, 색채의 해방과 창조에 혀를 찼다. 현대인들은 색상 표출에 자유분방하다. 파스텔 톤이나 흑백은 진부하다. 모호하고 단조 순일한 것에서 탈피해 다양한 색을 추구한다. 색에 관한 관념이나 기준 같은 경계의 억압을 파괴한 지 오래다. 다분히 공격적·도전적이다. 철철이 입는 현란한 여인들 의상에서, 그림에서, 도시 디자인에서 색상의 연출은 자유자재하다. 색상이 폭발하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하.. 2020. 8. 15.
길가 나무 그늘 길가 나무그늘 김길웅 칼럼니스트 여름 하늘에서 불잉걸을 쏟아붓는 건 아닌가. 7월 하순께 긴 장마가 걷히더니 기다렸다는 듯 여름이 활활 타오른다. 연일 폭염주의보가 발효 중이다. 사람이 발을 놓고 생명을 의탁하는 대지를 한순간에 불태우기라도 할 양 덥다. 스쳐 지나던 한 좨기 바람마저 스러지더니, 허공으로 비상하던 새의 날갯짓도 뚝 그쳤다. 더위에 사위 고자누룩한 한낮.차창 밖이 8월의 햇살에 눈부셔 어지럼을 탄다. 이비인후과에 들렀다 돌아오는 길. 망설이다 불쑥 객기가 발동했다. 아무리 여름이 제철이라지만 이건 우심하지 않나. 일방적·공격적인 것에 뒤물러 설 일이 따로 있다. 이열치열, 더위에 맞서자고 뼈대를 세우니 근육이 의기투합해 꿈틀댄다 연동 입구에 이르자 버스에서 내렸다. ‘이제부터 도심 속 아.. 2020. 8.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