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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 김길웅 시인314

영웅은 초년에 고생했다 영웅은 초년에 고생했다   김길웅, 칼럼니스트 7080 어른들은 산업화 이전에 초등학교를 다녔다.  말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초년고생을 겪은 세대다.  그때의 고생을 곧잘 함축한다. “초근목피를 먹었다.” 오뉴월이면 찔레의 새순을 먹고, 고픈 배를 속이려고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삘기를 뽑았다. 남의 고구마밭에 들어가 몇 뿌리  파먹어도 ‘서리’라고 용서하던 시대의 관용이 있었다.  고무신을 신었지 운동화는 구경도 못했다.  보자기에 책을 싸서 들거나 허리춤에 묶고 다녔다.  아, 생각난다. 한 학년 올라갈 때엔, 어머니가 동네를 돌다  이웃 마을에까지 가 헌 교과서를 구해 오던,  그 가난의 숨결은 얼마나 가팔랐나. 어머니가 손수 뜬 무명옷엔  있어야 할 호주머니가 빠져 있기도 했고, 머리를 깎는다.. 2024. 5. 17.
해 뜰 날 해 뜰 날   김길웅, 칼럼니스트 큰아들에게도, 서울서 회사에 다니며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실직으로 안정이 흔들리더니, 신수가 그래서인지 원상으로  돌아가기가 어렵다. 근 30년 살던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내려와  이것저것 뒤적여봐도, 무엇 하나 잡히는 게 없다.  서울에서 대학 다닐 때였다.  그때, 어떻게든 전문직 하날 꿰차지 못한 게 한이 될 것이다.  후회한들 무슨 소용인가. 다 흘러간 과거지사다.  이제 나이가 회갑으로 치닫고 있으니, 암담한 노릇이다. 도로공사하는 서울 친구네에게서 제주지사를 가져다 뛰어들었으나  안되자, 몇 년 동안 초등학생 대상으로 영어학원을 운영했다.  힘을 기울였지만 끝내 문을 닫아야 했다.  수강생이 불어나므로, ‘옳지, 이러면 되겠지.’ 했는데, 안간힘을 썼음에.. 2024. 5. 10.
고치다 고치다   김길웅, 칼럼니스트 바람인가 보다 했다. 나를 휘청하게, 붕 뜨게 한 게 바람인가 보다 했다. 간간이 흔들어 깨우거나 잠들게 한 것이 바람인가 보다 했다. 밖으로 나가게 현관문의 손잡이를 잡아당긴 것도,  돌아오는 길 그 문을 열어준 것도 분명 바람인가 보다 했다. 여태 내가 바람에 온전히 지배됐거나 그것이 장악하는 한정된  둘레에만 머무르며 고분고분 순종해 온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바람은 길을 지나갈 뿐 방향이 아니었다.  뒤늦게 바람이 내게 어떤 영향도 끼친 적이 없다는 사실 앞에 경악했다.  어느 가을날 바람에게 한 장의 편지를 쓰고 있었다.  오랜만의 손편지였다. “나를 흐르게 한 그대, 나를 나고 들게 한 그대가 있어 나는 존재로 틀고  앉았거든. 흐르고 수시로 나고 들어야 삶이란 .. 2024. 5. 3.
'영웅'은 연습벌레 '영웅'은 연습벌레   김길웅, 칼럼니스트 영웅 얘기를 거푸 하게 된 연유가 있다. 미스터트롯 ‘眞’으로 탄생하던 순간, 임영웅이 울먹이며  상금 1억원을 어머니에게 드리겠다고 하던 게 떠올랐다.  감격의 순간, 어머니와 전화하며 느꺼워 눈물을 흘리던 장면이다.  그후 읍내에서 어머니가 운영하는 미장원으로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다는데, 아들을 만나지 못하는 걸 안쓰러워 해 미장원 앞에  ‘방명록’을 비치했다 한다. 먼 길 왔다 그냥 가는 노고를 생각해  아들에게 이름이라도 알리기 위해서였다. 쉽잖은 배려다. 어머니의 회상 한 토막. “한 어머님이 내 손을 잡으시더니,  말없이 한참을 우십니다. 몇 년을 병상에서 햇빛도 못 봤는데,  그때 ‘바램’을 듣고 일어났습니다. 예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영웅이가 .. 2024. 4. 26.
역시 '임영웅' 역시 '임영웅' 김길웅, 칼럼니스트 「한 편의점에 들어갔는데 도대체 이상하다. 손님 온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흥얼흥얼 눈을 반쯤 감은 채로 노래에 빠져 있었다. 무아지경이다. ‘무슨 일인가?’ 손님이 졸지에 관객이 됐다. “아저씨, 지금 뭐하는 거예요?” 한데 나와야 할 말이 나오질 않았다. 흥얼거리듯 스미는 노래가 예사 노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속삭이듯 노래가 흘러들었다. ‘잠깐 내 얘기 좀 할게/ 잠깐 내 얼굴 좀 봐 줄래? ’(임세준, ‘오늘은 가지 마’ 중). 그날, 그 노래에 사로잡힌 손님은 편의점 구석에 슬쩍 숨어 숨죽이며 끝까지 청년의 노래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그러곤 야단 아닌 박수를 보냈다.」 박수받은 그 청년은 그리 오래 지 나지 않아 ‘영웅’이 됐다. 얘기 속 청년은 궁핍 속에 진.. 2024. 4. 19.
슬럼프 슬럼프 김길웅, 칼럼니스트 일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두 번쯤 슬럼프를 겪는다. 잘 나가던 운동선수가 어느 수준에서 주춤했을 때, 이를 흔히 ‘슬럼프에 빠졌다’라고 말한다. 슬럼프가 온다는 것은 뭔가 한계에 부딪쳤다는 적신호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슬럼프가 나타난다는 것은 그동안 자기 분야에서 유능하게 잘 해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아무런 성과도 없이 늘 지지부진했던 자에겐 슬럼프라는 게 찾아올 리 없다. 뚜렷이 이룩한 성과를 넘어 더 이상의 진전 없이 정체돼 있는 상황, 그게 바로 슬럼프다. 연습을 반복하는 데도 기대하는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 아무리 애써도 더 나아감 없이 부진하거나 기존의 성과보다 나아지기는커녕 더 밑돈다고 판단되는 경우, 대개 좌절하거나 의욕 상실에 이르기도 한다. 그냥 지.. 2024. 4. 5.
두 얼굴의 민들레 두 얼굴의 민들레 김길웅, 칼럼니스트 민들레는 흔한 꽃이다. 4월에 핀다. 시골의 길섶, 물결소리가 들리는 앞동산이며 골목 울담 아래. 집 어귀며 봄이 오는 길목 아지랑이 일렁이는 언덕에도 바닥에 바짝 붙어 앉아 노랗게 피어 눈길을 끌었다. 작지만 가을 서릿발에 피는 국화에 뒤질라 핀 샛노란 색깔이 인상적이었다. 여기저기 지천으로 널려 있는 꽃인데도 어린 가슴을 설레게 했던 것은, 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 자리해 마냥 봄을 즐기는 그 낙천성에도 끌렸을 터이다. 국화과의 한 붙이라고 민들레에게 흙 한 삽 떠 북돋아 준 적 없고, 봄가물에 목 축이고 물 한번 뿌려 준 사람이라곤 없다. 그런다고 입 비죽 내밀며 투덜대거나 누구에게 눈 한번 흘기거나 낯 한번 찡그리는 걸 본 적이 없다. 봄이 한창 흐드러진 .. 2024. 3. 29.
길의 시작, 그 탐색⑹ 이 길을 아끼고 싶다 길의 시작, 그 탐색⑹ 이 길을 아끼고 싶다 김길웅, 칼럼니스트 서울서 돌아오며 시내에서 동쪽으로 20분쯤 가다 병목현상의 길을 만났다. 돌연 오가는 차들이 뜸해지는 게 호기심을 불렀다. 길이 읍내로 찾아든 것임을 알았다. 내가 30년을 살아온 마을, 5분 거리에 비탈진 오르막길이 좋았다. 달리던 차가 속력을 줄이며 숨을 고르면 이내 긴장이 풀린다. 지형이 긴장을 이완시키는 게 놀라워 비탈이 다하는 지점에 작은 집을 짓고 100평짜리 정원을 가꿨다. 나무와 돌들의 교집합으로 야산 끝자락을 잘라낸 것 같았다. 정원이 자연미로 충만해 시간 가는 줄을 잊고 살았다. 이 곳에 정착하게 한 병목현상의 길은 인생에 성찰의 의미를 안겨주었다. 나는 단지 집을 짓고 정원에 나무를 키운 게 아니었다. 일 뒤로 오는 쉼의.. 2024. 3. 22.
아우라(AURA)가 없다 아우라(AURA)가 없다 김길웅, 칼럼니스트 요즘 정치 쪽을 보노라면 말이 안 나온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간 오가는 깜도 안되는 말들로 난장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금도(襟度)가 실종된 것은 물론, 말이 머금어야 할 최소의 품위조차 없다. 상대를 곤경에 몰아넣는 게 최선이고, 저가 사는 길이라고 작심한 사람들 같다. 선거가 밥그릇 싸움으로 전락해 눈앞의 먹잇감을 놓칠라 덤벼드는 형국이다. 정글의 하이에나 떼를 연상케 한다. 시국을 보며 횡설수설한다. 말 중에 가장 치졸한 게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것. 본질에서 이탈해 감정 싸움으로 비화할 수 있어서다. 집권당이라 눈이 먼저 여 쪽으로 간다. “후보 공천이 시스템에 의해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아 사천하고 있다. 그러니 공천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불만.. 2024. 3. 15.
이웃사촌 이웃사촌 김길웅, 칼럼니스트 가까이 있는 집이나 사람을 이웃 또는 이웃사촌이라 한다. 한자어로 선린(善隣) 또는 근린(近隣)도 같은 의미로 곧잘 쓰는 말이다. 사회적 거리의 가까움을 나타내는 다정다감한 말로 다가온다. 이웃, 선린, 근린 참 훈훈하고 따스한 말들이다. 다 덜어내고 ‘옆집 사람’이라 말하면, 더 거리가 좁혀진다. 얼마나 가깝고 임의로운가. 이사를 오게 되면, 이웃집에 시루떡을 나눠주는 문화가 있었다. ‘가까운 이웃이 먼 사촌보다 낫다’, ‘이웃끼리는 황소 가지고도 다투지 않는다.’고 한다. 과거엔 그만큼 이웃의 비중이 높았었다. 한데 오늘의 이웃은 좋은 관계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적대시 대상이다. 사람 사이가 소원해졌다는 안타까운 얘기다. 특히 도시 아파트에서는 층간소음 등으로 갈등하는.. 2024. 3.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