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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 김길웅 시인351

울타리 울타리 김길웅 칼럼니스트 울타리는 우마 등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해 집 주변을  두른 구조물이다.  싸리나 수숫대 등을 엮고 세워 간소한 형태로 시작된 것이, 화양목이나 탱자나무 같은 관목을 심는 바자울로 진화했을 것이다.  조경으로 이중 효과를 내는 이점이 있으니, 벽 쌓고 지붕 이기였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집의 안전에 신경이 쓰이자 견고한 시설물로의 변화를 요구하게 됐을 것이다. 점진적으로 자연석을,  그것도 키를 넘는 높이로 쌓아올리게 돼간 것은 더욱 필요를 느낀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회가 험해지면서 울타리 위에 거대한 원형 철조망을 치거나,  심지어 유리병을 깨어 그 조각을 붙이기도 했다.  밤이든 낮이든 외부의 무단침입이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부를 과시할 의도도 있지 않았을까. 날카로운 유리.. 2025. 3. 7.
어르신이 안 보인다 어르신이 안 보인다   김길웅, 칼럼니스트 눈이 자주 머물던 곳으로 눈이 간다.  보노라면 집중하는가. 혹한이라 겨우내 움츠렸으니,  바람 잔 날을 보아 흙을 밟자 한다.  몸이 안 좋아 무리하지 말려는 것이지만, 갇혀 있는 삶은 딱하다.  실수로 불행을 자초하는 수가 있다.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건 자식이다. 석회질만 남은 노인의 뼈는 삭은 나뭇가지다.  숲을 스치는 순한 바람에도 부러지는 삭다리. 하지만 너무 조신하면 몸을 사리게 되니,  생활인으로서 취할 자세가 아니다. 이도 한쪽으로 쏠리거나 기울지 말고,  중간지점에 서면 좋지 않을까 싶다. ‘자주 보노라면 관심’이 된다는 담론을 지나칠 뻔했다.  부부가 아파트 13층 베란다 창가에 앉기를 좋아한다.  남향이라 겨울에도 어중간한 초봄 .. 2025. 2. 28.
폭설 속 새벽 진료실의 의사 폭설 속 새벽 진료실의 의사   김길웅, 칼럼니스트 지난 8일, 제주에 폭설이 쏟아졌다.  섬이 흰옷을 갈아입고 원시로 돌아갔다.  산도 들도 길도 집도 흰빛 일색이다. 새벽 4시, 눈빛으로 눈부신 베란다로 다가가 블라인드를 올리고  내다본다. 눈이 내려야 겨울인데 하고 기다려선가.  그만한 원쯤 못 풀어 주겠냐는 듯 폭설이다. 눈은 혼돈 광막하게  세상을 획일화하는 마술사다. 요란한 데를 하얗게 칠하고,  파인 데를 메워 한 모습 한 빛깔로 바꿔놓았다. 눈 내리는 하늘이 새카맣다. 시작이라 듯 그치지 않을 기세다.  야단났다. 지금 백내장 수술 중이잖은가. 이틀 전 왼쪽에 이어  그끄제 오른쪽 눈을 수술받고, 오늘 아침 7시까지 병원에 가야 한다.  너무 이른 시간이다 싶더니, 뜻밖의 폭설이라니. 예삿.. 2025. 2. 21.
귀·이·눈 귀·이·눈  제주일보(2025년2월14일)  김길웅, 칼럼니스트 몸도 지치면 처지고 기계처럼 나날이 닳고 녹슨다.  젊었을 때 싱싱했던 몸이 50~60대를 지나면서 삐거덕거리기 시작한다.  퍽 하면 오작동하거나 힘이 빠져 제 기능을 못하고 조직에서 이탈을  일삼는다. 있는 줄 모르고 고분고분하던 것들이 탈이 생겨 막히고  닫히고 주억거리면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작고 하찮던 것들이  당차게 한 구실 해왔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풀잎에 이슬 구르는 소리도 들리던 귀가 이젠 아득한 천둥소리로  잦아들었다. 밤새 치통으로 몸의 핵을 흔든는 고통을 겪거나,  내 손으로 쓴 글조차 안 보여 다중렌즈를 써도 눈앞이 혼란스러럽다.  돋보기로 바꾸고 확대경을 들이대도 어룽거려 책을 덮던 순간의  허무감이라니. 오랜동안 .. 2025. 2. 14.
내 얼굴 내 얼굴   김길웅, 칼럼니스트 그리 못 생긴 것 같진 않다. 좁은 이마에 두 볼에 골짝이 파인 게 되다 만 분화구 산기슭 자드락이다.  우묵하게 들어가 그늘졌으면서 사유에 골몰할 때는 두 눈이 그윽해  보이기도 한다. 특히 낯선 사물을 대할 때 그런다. 콧구멍이 숨 쉬는 데 알맞게 크긴 하나  빗물이 들어갈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지만, 복코는 아니라 한다.  귀는 쫑긋하게 붙어 있고, 다문 입술의 가장자리는 선명해 보이나  특색이 있어 보이진 않다. 이왕지사 이목구비가 준수하다는 소리를 듣긴 글렀다. 타고난 얼굴인데 나 자신 불만은 표정이 어둡다는 것.  두루춘풍이 아니더라도 환한 얼굴을 내걸고 다녔으면 좋은데 그렇지 못한  것만 같다. 근엄한 데다 때때로 여린 정서가 번져 쓸쓸한 표정이다.  자칫 속 .. 2025. 2. 7.
어느 겨울날의 고요 어느 겨울날의 고요   김길웅, 칼럼니스트 살고 있는 이 동네가 썩 마음에 든다.  읍내로 교통도 좋거니와 무엇보다 이웃이 수더분하고 순박해서 좋다.  더욱이 자기 일에 성실해 실답고 미덥다. 다들 감귤농장으로 바빠  일 년을 두고 한두 마디 말을 주고받는 정도이니, 이게 다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려니 한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자수성가한 사람들이라선지 몸에 밴 부지런에  심성들이 곱다. 엊그제 강풍이 휩쓸고 지나더니 바람도 나뭇가지 끝을 하늘거리게  스쳐 미풍인 데다, 아침부터 일찌감치 와선 저 혼자 재잘거리는  멧새 울음이 한층 고즈넉한 정원의 적막을 돋운다,  그 행간으로 내리는 시골 와옥(蝸屋)의 이 고요. 고요가 깊어 숨을 죽인다.  어지간하면 실없는 얘기라도 엮으련만 다들 집을 비운 건가. .. 2025. 1. 31.
'설'이 변하고 있다. '설'이 변하고 있다.   김길웅, 칼럼니스트 세상을 바꿔놓는 것이 시류, 시대의 물결이다.  이 물결이 물폭탄이라도 맞은 듯 순식간에 급류로 흐른다.  의식주와 풍속의 변화가 놀랍다. 가파르고 변화무쌍하다.  소중히 여기던 가치가 별안간 몰가치로 영락하는 경우도 있다.  불의 심판으로 빚어낸 고려청자의 비색이 천년 세월에도  불변임에 감탄한다. 닷새 후면 설이다.  살아가는 시름을 놓고 현실의 고통도 잠시 저버리고 아들딸이  부모에게 절하고 형제끼리 함박웃음을 터트리며 끌어 안는 날이다.  추석보다 앞세우는 것은 한 살을 더 먹는 기쁨에 가슴 설레서일까.  더욱이 하던 일상의 일을 잠시 접고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달려가  어머니 품에 와락 안기는 감격을 무엇에다 견줄까. 한데 요즘 2030 세대들의 취.. 2025. 1. 24.
가방의 무게 가방의 무게   김길웅, 칼럼니스트 시대를 공유하는 일이지만 내게도 가방의 유래는 유별하다.  가방이 흔치 않던 시대, 내 아잇적 책가방은 학생이라는 의미였다.  한데 초등학생 때, 내겐 책가방이 없었다.  보자기를 허리에 묶고 다녔다. 책보라 했지 책가방이라고 하지  않았다. 교과서도 얄팍하고 공책도 몇 장짜리였으니 가능했지,  지금 같았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묶은 보자기를 돌려 어깨에 메는 개구쟁이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너도나도 허리에 불룩하게 책보를 업고 있는  아이들 등하굣길은 진풍경이었을 테다. 중학생이 되면서는 교복에 책가방이 생겼다.  가슴 뛰고 신이 났다. 양쪽 2개의 방에 책을 겹겹이 세우고 손잡이  둘을 한데 맞대어 들고 나서면 어깨도 으쓱해 세상을 다 넣고  다니는 기분.. 2025. 1. 17.
경계(璟界) 경계(璟界)   김길웅, 칼럼니스트 어둠과 밝음의 경계, 밤과 낮의 경계, 나라와 나라의 경계,  남과 북의 경계, 아이와 어른의 경계, 불교와 기독교의 경계,  유정과 무정의 경계,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  도시와 시골의 경계…. 경계는 자연현상과 시간,  혹은 문명이나 문화의 편차가 빚어내겠지만 사유와 철학,  정서나 환경 혹은 심미적 탐구의 산출물이기도 하다. 사람은 평생 앞에 놓인 무수한 경계를 넘으면서 살아간다.  그러기 위해 연마하고 도전하고 고뇌하는 과정이 인생일지도  모른다. 탁월한 수월성으로 단숨에 뛰어넘기도 하나,  성채처럼 버티고 선 경계 앞에 시도 뒤, 수없는 시행착오로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광막한 사막은 횡단하려는 자에게  특별한 가시적 경계가 없다. 뒤덮인 모래 위를 몰아치.. 2025. 1. 10.
개연성(蓋然性) 개연성(蓋然性) 김길웅, 칼럼니스트 취직 시험의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은 얼마나 초조할 것이며,  군대 간 아들의 첫 휴가를 손꼽아 가며 갓 쉰에 이른 젊은 엄마의  기다림은 얼마나 애탈까. 호사스러운 기다림도 적잖다. 가을 타는 소녀는 바람에 잎이  구르기를 기다리고, 멋진 코트를 꺼내 입고 가까운 사람에게 보이고  싶어 눈 펑펑 쏟아지는 겨울을 기다리는 중년도 있을 것이다.  오래 고향을 등진 사람은 환향의 그날을 학수고대할 것이고,  아담한 집 한 채 이고 살아봤으면 하는 사람은 우연만 해 읍내에  조그만 마당이 있는 집 지을 날을 ‘바를 正 자’를 채우며  기다리고 기다릴 것이다. 사랑하는 혈육이 실직으로 방황할 때,  직장 하나 생겼으면 하는 기다림은 이거야 죽을 맛이다. 지난해 봄부터 여름, 가.. 2025. 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