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보 김길웅 시인355 대각사 관종스님 대각사 관종스님 김길웅 칼럼니스트 삼성혈 동쪽 길 건너에 대각사라는 조그만 대중 절이 있다. 당초에 불법을 크게 깨닫는다고 염원으로 대각사라 했으리라. 오래된 절이다. 광양에 살아, 지날 때마다 그 이름에 끌려 눈이 가곤 했더니, 오늘에야 내가 그 절문을 드나들게 될 줄이야. 불가사의한 게 사람의 인연인가 한다. 아내가 신심 깊은 불자라 무심할 수 없어 따라나서다 인연이 닿았으니, 부창부수가 따로 없다. 말은 이렇지만 산문을 나들며 경문 하나 머리에 들지 않고 부처님오신날에나 찾으니, 나 자신 거북하고 어중간하다. 딱하고 부끄러운 노릇이다. 어느 날, 대각사 주지스님의 염불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다. 우선 스님의 독경 소리가 낭랑하고 화창해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게 아닌가. 염불에.. 2025. 4. 4. 설왕설래(說往說來) 설왕설래(說往說來) 제주일보 2025.03.27 김길웅, 칼럼니스트 서로 변론을 주고받으며 다툼을 벌이는 것을 설왕설래라 한다, 옥신각신하는 상황이다. 마치 옥상에서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듯 언변이 끊임없이 오고 가곤 한다. 숨 가빠 상당히 가파르다. 어쩌다 나라가 계엄 난국이 되면서, 대통령 탄핵을 두고 여야 간에 가타부타 말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사소한 이슈에도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해 벌이는 말싸움은 이미 논쟁의 수위를 넘어 죽기 아니면 살기 판이다. 어느 대목에서 나온 것인지 분간이 안 된다. “개한테 한 번 물린 것일 뿐, 그에 비하면 새 발의 피.” 기가 막힌 비유 아닌가. 어지간히 저속하다. 여당 원내대표가 야당 대표의 논란이 된 발언들을 담은 ‘망언집’ 초간을 내어 배포했다.. 2025. 3. 28. ‘빨간 명찰’을 획득하다 ‘빨간 명찰’을 획득하다 김 길 웅 칼럼니스트 ‘해병대 신병 1390명, 정예 전사로 거듭나다.’ 지난 14일 자 인터넷신문의 기사 제목이다. 새벽에 무심코 신문을 훑어 나가다 눈이 딱 마주친다. 무얼 잊고 챙겨 나오지 못한 양 멈칫했다. 손자‘지용’의 해병대 입대 소식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저 오늘 훈련마쳤어요. 내일 수료식을 끝내면 부대 배치를 받습니다. 김포가 될것 같아요.” 어제 지용이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대학을 휴학하고 해병대로 입대해 신병 교육을 받은 지 6주 만에 끝난 훈련이다. ‘폭설 속에 입대해 고생한다 했는데, 아, 드디어 그 힘들다는 해병대 신병 훈련을 견뎌냈구나.’ 한데 지용이가 전화를 걸어 놓고 말을 잇지 못하는 게 아닌가. 더듬 거리는 걔의 얘기에서 저간.. 2025. 3. 21. 밥 밥 김길웅, 칼럼니스트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요,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 세종 임금의 말씀이다. 먹을 게 없어 물로 배를 채우던 적빈의 시절에 가장 절실한 것이 ‘밥’이었다. 먼저 보리밥, 조밥이 떠오른다. 고구마에 좁쌀을 섞던 밥도 먹었다. 고구마를 몇 도막으로 썰어 넣고 좁쌀은 눈 밝은 닭이나 먹음직이 섞었다. 제주에선 산도쌀로 지은 밥을 ’곤밥‘이라 했다. 제삿날 아니면 명절날에나 먹을 수 있던 제주의 귀한 쌀밥이었다. 1970년 산업화 이후 경제 사정이 나아지면서 한국인의 밥상에 오른 흰쌀밥이 밥이란 말 위로 떠오른다. 아, 어머니가 내 생일날 조밥 짓는 솥에 양은 그릇에 산도쌀 두어 줌 넣고 짓던 반지기밥이 생각난다. 산도쌀에 좁쌀을 반반 섞었다고 반지기라 했을 것이다. 목으.. 2025. 3. 14. 울타리 울타리 김길웅 칼럼니스트 울타리는 우마 등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해 집 주변을 두른 구조물이다. 싸리나 수숫대 등을 엮고 세워 간소한 형태로 시작된 것이, 화양목이나 탱자나무 같은 관목을 심는 바자울로 진화했을 것이다. 조경으로 이중 효과를 내는 이점이 있으니, 벽 쌓고 지붕 이기였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집의 안전에 신경이 쓰이자 견고한 시설물로의 변화를 요구하게 됐을 것이다. 점진적으로 자연석을, 그것도 키를 넘는 높이로 쌓아올리게 돼간 것은 더욱 필요를 느낀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회가 험해지면서 울타리 위에 거대한 원형 철조망을 치거나, 심지어 유리병을 깨어 그 조각을 붙이기도 했다. 밤이든 낮이든 외부의 무단침입이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부를 과시할 의도도 있지 않았을까. 날카로운 유리.. 2025. 3. 7. 어르신이 안 보인다 어르신이 안 보인다 김길웅, 칼럼니스트 눈이 자주 머물던 곳으로 눈이 간다. 보노라면 집중하는가. 혹한이라 겨우내 움츠렸으니, 바람 잔 날을 보아 흙을 밟자 한다. 몸이 안 좋아 무리하지 말려는 것이지만, 갇혀 있는 삶은 딱하다. 실수로 불행을 자초하는 수가 있다.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건 자식이다. 석회질만 남은 노인의 뼈는 삭은 나뭇가지다. 숲을 스치는 순한 바람에도 부러지는 삭다리. 하지만 너무 조신하면 몸을 사리게 되니, 생활인으로서 취할 자세가 아니다. 이도 한쪽으로 쏠리거나 기울지 말고, 중간지점에 서면 좋지 않을까 싶다. ‘자주 보노라면 관심’이 된다는 담론을 지나칠 뻔했다. 부부가 아파트 13층 베란다 창가에 앉기를 좋아한다. 남향이라 겨울에도 어중간한 초봄 .. 2025. 2. 28. 폭설 속 새벽 진료실의 의사 폭설 속 새벽 진료실의 의사 김길웅, 칼럼니스트 지난 8일, 제주에 폭설이 쏟아졌다. 섬이 흰옷을 갈아입고 원시로 돌아갔다. 산도 들도 길도 집도 흰빛 일색이다. 새벽 4시, 눈빛으로 눈부신 베란다로 다가가 블라인드를 올리고 내다본다. 눈이 내려야 겨울인데 하고 기다려선가. 그만한 원쯤 못 풀어 주겠냐는 듯 폭설이다. 눈은 혼돈 광막하게 세상을 획일화하는 마술사다. 요란한 데를 하얗게 칠하고, 파인 데를 메워 한 모습 한 빛깔로 바꿔놓았다. 눈 내리는 하늘이 새카맣다. 시작이라 듯 그치지 않을 기세다. 야단났다. 지금 백내장 수술 중이잖은가. 이틀 전 왼쪽에 이어 그끄제 오른쪽 눈을 수술받고, 오늘 아침 7시까지 병원에 가야 한다. 너무 이른 시간이다 싶더니, 뜻밖의 폭설이라니. 예삿.. 2025. 2. 21. 귀·이·눈 귀·이·눈 제주일보(2025년2월14일) 김길웅, 칼럼니스트 몸도 지치면 처지고 기계처럼 나날이 닳고 녹슨다. 젊었을 때 싱싱했던 몸이 50~60대를 지나면서 삐거덕거리기 시작한다. 퍽 하면 오작동하거나 힘이 빠져 제 기능을 못하고 조직에서 이탈을 일삼는다. 있는 줄 모르고 고분고분하던 것들이 탈이 생겨 막히고 닫히고 주억거리면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작고 하찮던 것들이 당차게 한 구실 해왔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풀잎에 이슬 구르는 소리도 들리던 귀가 이젠 아득한 천둥소리로 잦아들었다. 밤새 치통으로 몸의 핵을 흔든는 고통을 겪거나, 내 손으로 쓴 글조차 안 보여 다중렌즈를 써도 눈앞이 혼란스러럽다. 돋보기로 바꾸고 확대경을 들이대도 어룽거려 책을 덮던 순간의 허무감이라니. 오랜동안 .. 2025. 2. 14. 내 얼굴 내 얼굴 김길웅, 칼럼니스트 그리 못 생긴 것 같진 않다. 좁은 이마에 두 볼에 골짝이 파인 게 되다 만 분화구 산기슭 자드락이다. 우묵하게 들어가 그늘졌으면서 사유에 골몰할 때는 두 눈이 그윽해 보이기도 한다. 특히 낯선 사물을 대할 때 그런다. 콧구멍이 숨 쉬는 데 알맞게 크긴 하나 빗물이 들어갈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지만, 복코는 아니라 한다. 귀는 쫑긋하게 붙어 있고, 다문 입술의 가장자리는 선명해 보이나 특색이 있어 보이진 않다. 이왕지사 이목구비가 준수하다는 소리를 듣긴 글렀다. 타고난 얼굴인데 나 자신 불만은 표정이 어둡다는 것. 두루춘풍이 아니더라도 환한 얼굴을 내걸고 다녔으면 좋은데 그렇지 못한 것만 같다. 근엄한 데다 때때로 여린 정서가 번져 쓸쓸한 표정이다. 자칫 속 .. 2025. 2. 7. 어느 겨울날의 고요 어느 겨울날의 고요 김길웅, 칼럼니스트 살고 있는 이 동네가 썩 마음에 든다. 읍내로 교통도 좋거니와 무엇보다 이웃이 수더분하고 순박해서 좋다. 더욱이 자기 일에 성실해 실답고 미덥다. 다들 감귤농장으로 바빠 일 년을 두고 한두 마디 말을 주고받는 정도이니, 이게 다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려니 한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자수성가한 사람들이라선지 몸에 밴 부지런에 심성들이 곱다. 엊그제 강풍이 휩쓸고 지나더니 바람도 나뭇가지 끝을 하늘거리게 스쳐 미풍인 데다, 아침부터 일찌감치 와선 저 혼자 재잘거리는 멧새 울음이 한층 고즈넉한 정원의 적막을 돋운다, 그 행간으로 내리는 시골 와옥(蝸屋)의 이 고요. 고요가 깊어 숨을 죽인다. 어지간하면 실없는 얘기라도 엮으련만 다들 집을 비운 건가. .. 2025. 1. 31. 이전 1 2 3 4 ··· 3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