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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 김길웅 시인346

눈물 한 방울 눈물 한 방울 제주일보 2021.01.07 김길웅. 칼럼니스트 김현승의 은 아들을 잃은 슬픔을 견뎌내는 과정을 쓴 시다. 시 속의 화자는 ‘눈물’을 ‘작은 생명’, ‘나의 전체’, ‘나의 가장 나중 지닌 것’이라 빗댔다. 눈물 곧 생명이고 전체이면서 마지막까지 지녀야 할 무엇이라 환기한다. 신의 세계로 이끄는 매개체이면서 생명적인 표상으로 눈물의 층위를 한층 끌어올렸다. 눈물은 슬픔의 산물이지만, 그것으로써 신 앞에 겸손해져야 함을 일깨운다. 노(老)학자 이어령 씨. 어느 날 마루에 쭈그려 앉아 발톱을 깎다 툭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한다. 이제 멍들고 이지러져 형체 없이 지워진 새끼발톱이다. 그 가엾은 발가락을 보고 있자니 와락 회한이 밀려왔다는 것이다. “이 무겁고 미련한 몸뚱이를 짊어지고 80년.. 2021. 1. 8.
1월1일 1월 1일 김길웅. 칼럼니스트 1월 1일, 가는 세월 덧없음에도 가슴 뛰는 날이다. 새해 첫날이기 때문이다. 365일 가운데 처음 맞는 날이란 것만으로 충분히 설렐 수 있다. 첫날은 티 하나 얹지 않아 신선하다. 속되거나 축나지도 않았다. ‘첫’은 새로움과 설렘을 주는 접두사다. 첫돌, 첫달, 첫날밤, 첫길, 첫걸음, 첫딸, 첫사랑…. 하물며 새해 첫날임에랴, 1년의 1번째 날! 이날을 기점으로 1월 7일까지의 모든 요일은, 그 해의 첫 요일이다. 차렷, 앞으로 나란히! 구령에 365일이 새카맣게 달려오는데 ‘기준!’ 하며 외치는 날, 1월 1일이다. 새해 첫날 전야, 어젯밤엔 새해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을 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해 오던, 보신각 ‘제야(除夜)’의 타종 행사가 취소됐다. 코로나19의 폭발.. 2021. 1. 1.
말이 되는가 말이 되는가 김길웅. 칼럼니스트 코로나19가 폭발적으로 번진다. 대재앙이다. 이 엄혹한 시국에 국회의원이란 분이 사이트에 와인 파티 사진을 올려 논란이 거세다. 반발 여론이 일파만파다. 가급적 정치 쪽엔 언급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자신을 규율해 왔다. 그쪽에 초연하려 한 소신이 있었다. 연전, 본란 타이틀을 고민하면서, ‘안경 너머 세상’이라 한 데는 그런 입장이나 관점에서 시종 긍정과 수용의 미덕을 저버리지 말자고 했다. 그러나 도저히 간과할 수 없었다. 분노했다. 윤미향 의원, 그분은 “길원옥 할머니 가슴 새기며 식사”라고 전혀 부끄러움 없이 SNS에 사진을 공유했다가 논란이 일자, “94세 생신 축하 자리”라 했다. 참석자 5명이 모두 노 마스크였는데, 와인 잔을 들어 건배하고 있었다. 이 사태에 .. 2020. 12. 18.
눈이라도 좀 내렸으면 눈이라도 좀 내렸으면 김길웅. 칼럼니스트 눈이 많이 내려서일까. 아잇적 겨울엔 눈만 보면 푸근하고 넉넉했다. 땅을 덮은 하얀 눈이 온통 이팝으로 보였는지 모른다. 겨울 해는 노루 꼬리처럼 짧다고 점심을 찐 감저(찐 고구마) 두어 개로 때워도 배고픈 줄을 몰랐다. 눈 덮인 마당으로 무리 지어 내리던 참새 떼를 바라보며 가슴 설렜다. 정강이가 푹푹 빠지던 긴 골목에 쌓인 눈을 헤쳐 고샅으로 나가는 게 힘겨웠지만 야릇한 쾌감에 걸음걸음 들떴다. 눈 온 날 등굣길은 그렇게 무엇으로 가슴 가득 채워지곤 했다. 하얗게 순일한 눈에서 느끼는 막연한 감동이었을 것이다. 눈 내리는 날 밤이 내리면 차가운 구들장에 이불 하나에 발 막아 눕던 세 남매, 나뭇가지에 걸어도 잔다는 아잇적 꿀잠에 빠졌다. 가난한 사람에게도 많이.. 2020. 12. 12.
겨울나기 겨울나기 김길웅. 칼럼니스트 한 생명 앞에 혹한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몇 날 며칠 몰아닥치는 폭설과 강풍은 자칫 명줄을 놓게도 한다. 더욱이 황량한 들판에 운명처럼 서 있는 초목들에겐 이렇다 할 대책이 없다. 누가 그들에게 이불을 덮어 줄 것이며, 누가 그들을 끌어안아 품을까. 쌓인 눈에 정강이를 묻은 채 냉혹한 삭풍에 휘적휘적 몸을 가누지 못한다. 저 홀랑 벗은 몸의 적나라한 절규, 귀청을 찢는다. 그나마 동물들은 겨울나기에 재간껏 능동적으로 대처한다. 누에처럼 알로 한때를 넘기거나 유충, 성충으로 난다. 번데기로 집 속에 들앉기도 하고, 뱀, 개구리같이 땅속에서 잠에 빠지기도 한다. 난방이 필요 없다. 계절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는 기막힌 월동이다. 오히려 성장과 활동을 일시 멈추는 생리적 상태로 추.. 2020. 12. 9.
끝 김길웅. 칼럼니스트 끝은 시·공간의 마지막이다. 순간순간 끝이 있고, 하루 한 달 한 해에도 끝이 있다. 시계를 보는 것은 정해진 시간의 끝을 보려는 것이고, 흐름 속에서 제자리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끝을 엄중히 하는 것은 규제면서 절도다. 걷는 길에도 끝이 있다. 이를테면 버스가 가 닿고 배가 접안해야 할 곳엔 터미널이 있고, 비행기가 착륙해야 할 끝에 공항이 있다. 모두 종착지다. 봄이 여름으로, 여름이 그 끝에 잇대어 가을이, 가을이 마지막으로 내려앉은 지점에 겨울이 입성한다. 생명에게 계절의 끝은 그 한때의 마지막 공간이면서, 끝의 뒤로 이어지는 생장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잎 진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마지막 잎이 삭풍에 사그락대는 정경처럼 을씨년스러운 것이 없다. 왜 견뎌야 하는가. 꽃단풍이나.. 2020. 11. 30.
쉼팡 쉼팡 김길웅. 칼럼니스트 서른 해를 살던 읍내 동산 집을 떠나왔다. 조그만 단층집이 아담했다. 아파트는 몇 평형으로 등급을 매기지만 시골집은 그런 통념에서 자유로웠다. 정원을 가졌으면 하는 꿈을 실현한 집이었다. 수종이 꽤 된데다 밀식으로 빽빽했지만, 돌과 나무가 어우러져 작은 숲을 이뤄 내 분인가 했다. 상록수와 낙엽수의 조합이 사계의 변화를 이끌어 갔다. 나무 한 그루, 돌 한 덩이, 계절을 알아 피던 꽃 한 송이가 소중했다. 아파트에 와 보니 조경이 수준급이라는 데도 시큰둥했다. 나무, 돌, 꽃 어느 하나 내 것이 아니다. 아끼던 정원이라 몸이 멀어졌는데도 마음은 그곳에 가 있다. 문뜩 그 집 정원 남쪽에 있는 돌 탁자가 그립다. 제주 현무암을 연마해 판을 깔고 돌의자를 마주 놓아 넷이 앉아 담소하.. 2020. 11. 24.
손금 손금 김길웅. 칼럼니스트 작은 상처는 손금의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 새로운 세포가 자라면서 이전과 똑같은 무늬를 만든다. 말끔한 재생(再生)이다. 애초 무엇으로 그려 넣었을까. 심하게 화상을 입었거나 조직이 크게 파괴됐을 때는 원상회복이 힘들 것이지만, 웬만해선 지워지지 않는 게 손금이다. 손금은 사람마다 다르다. 손가락 끝마디 안쪽에 있는 살갗 무늬, 그게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게 신기하다. 용처가 있어 그랬을 것이다. 무늬가 다르고 그 모양이 평생 변하지 않으므로 개인의 식별, 범죄 수사의 단서, 인장 대용으로도 사용된다. 손가락 끝부분에 있는 섬세한 곡선 무늬, 손가락의 끝마디 바닥 면에서 땀구멍 부위가 주변보다 올라가 있고, 서로 연결돼 밭고랑 모양의 곡선을 만들고 있다. 정교한 선들이 출렁거리며.. 2020. 11. 13.
단풍 톺아보기 단풍 톺아보기 김길웅. 칼럼니스트 산을 내리기 시작한 단풍이 절정을 치고 빠질 즈음이다. 활활 불붙는 듯 온 산이 화염 덩이 불길에 휩싸였다. 저 경이로운 스펙트럼을 매개할 사실주의 언어는 뭘까. 꽃보다 아름다운 단풍으로 사태 났다. 어찌 땅에 발붙인 나무의 손매라 말하랴. 저 조화(造化)를 일러 요술이라 하겠다. 하지만 단풍은 나무가 만들어 놓은 실체다. 다리를 꼬집어 봐도 생시니, 곱게 채색 올린 나무의 걸작임이 틀림없다. 연년이 저렇게 자신을 기록해 놓는 개인사의 한 페이지다. 나무는 단풍으로 한 해를 마감한다. 유종의 미다. 그것은 유독 저녁놀이 아름다운 연유와 똑같다. 실은 나무가 단풍으로 곱게 치장하는 까닭이 있다. 가을이 되면 낙엽수의 잎자루에 이층(離層)이 생겨 줄기와 단절되는 게 단풍으로.. 2020. 11. 6.
바보 본질론 바보 본질론 김길웅. 칼럼니스트 바보는 어리석고 멍청한 사람을 가리킨다. 하지만 실제는 어디까지인지 기준이 모호하다. “그것도 못해, 이 바보야.” 하면 욕인데, “그이는 딸바보예요.” 하면 욕도 속된 낱말도 아니다. 딸 앞에서 바보가 될 정도로 딸을 사랑하는 엄마나 아빠다. 아들이 누이를 편애한다고 불만을 터뜨릴지 모른다. 사실 바보는 멋대로 써선 안되는 말이다. 비슷하게 쓰이는 말들을 보면 바보란 말이 자극적으로 예민한 말임을 재인식하게 될 것이다. 등신, 병신, 팔푼이, 칠푼이, 노망, 멍청이, 멍텅구리, 귓것, 쪼다…. 어리석어 구실을 못하거나, 뭐라 해도 반응이 무뎌 어리벙벙하다든지, 정신이 흐릿해 일을 제대로 판단, 처리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바보다. 마구 써선 안될 말이다. 어지간하면 수더분.. 2020. 1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