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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 김길웅 시인346

신뢰의 표면적 신뢰의 표면적 김길웅 칼럼니스트 타인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믿음이 신뢰다. 믿으므로 의지한다. 사회에서 살려면 신뢰를 얻지 않으면 안된다. 신용과는 다른데도 구분하지 못해 신뢰하는 사람에게 보증을 섰다가 함께 시궁창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에서는 신뢰와 신용을 별개로 보는데, 개인주의와 인정 간의 차이에서 오는 인식에서 보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개념이다. ‘나는 그 사람을 절대 신뢰한다.’ ‘절대’란 부사로 수식할 정도이니, 신뢰 수준이 극한치에 이름을 드러냈다. 하지만 신뢰는 기대와 위험을 동반하는 개념이다. 기대하므로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위험을 달게 받는다는 말이 된다는 얘기다. 신뢰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경영에서는 신뢰가 이뤄지는 요인으로 능.. 2022. 3. 18.
다시 봄 다시 봄 김길웅 칼럼니스트 지난 두 해의 겨울은 힘들고 지루했다. 괴질로 사람들의 관계가 헐거웠다. 께름칙해 아예 만나지 않은 상식 일탈, 그게 일상이 돼 겨우내 우울했다. 너와 나의 단절로 삶의 지형이 축소되고 소통의 언사도 뜸했다. 시간 속에 혼자였다. 사람 사이 드나듦이 없으면 절해고도가 된다. 섬은 단절의 땅이다. 밤낮 파돗소리가 적막을 키울 뿐, 바람결에 귀 기울여도 와 닿는 한 가닥 기별이 없다. 헛헛한 고립무원의 공간, 그동안 다들 섬으로 외로웠다. 물결이 찰랑거려도 하 수상한 시국에 가슴 쓸어내리던 불안의 날들. 코로나19가 오미크론에 이르면서 마침내 변곡점을 찍는 것 같다. 질병에게 염치를 바라랴만 이쯤에서 제풀에 끝날 법도하다. 힘에 겨우면 내려놓는 게 상리(常理)다. 이 녀석이 독감 .. 2022. 3. 11.
큰 별이 지다 큰 별이 지다 김길웅 칼럼니스트 큰 별이 졌다. 지난 2월 26일, 이어령 선생께서 타계하셨다. 문학평론가·소설가·수필가·언론인 그리고 교수로서 한국 최고의 지성, 가장 맑고 밝은 철학으로 우리의 정신을 이끌던 시대의 스승, 이어령 선생이 세상을 달리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뀔 때 또 꽃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비로소 꽃이 보인다. 암 선고를 받고 내일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역설적으로 가장 농밀하게 산다.”던 선생의 목소리가 낙숫물처럼 떨어진다. 88서울올림픽 개막 식전 행사가 떠오른다. 기대와 설렘 속에 온 세계인의 이목이 한껏 쏠리던 그때. 홀연 어린 소년이 등장해 굴렁쇠를 돌리며 넓은 운동장을 돌았다. 적막을 한 켜 키우더니, 마침내 세계가 환호했다. 우리는 하나다. .. 2022. 3. 5.
고경중마방(古鏡重磨方) 《고경중마방(古鏡重磨方)》 김길웅 칼럼니스트 고영천 오현고 전 교장이 선고(先考)께서 영운공(靈雲公) 할아버지의 유고를 국역해 《영운집(靈雲集)》을 낸 지 30년, 다시 찾아낸 자료를 보완하고 국역을 개정 어문 규정에 따라 바로잡으며 《증보 영운집》을 상재한 게 2021년 5월이었다. 종사(宗史)와 ‘제주학’의 맥을 체계 세움에 적잖이 도움이 돼 가문의 영광이라는 자부심에서 증보판을 낸다 한 게 엊그제 같은데, 그새 할아버지의 《고경중마방》 필사본을 펴냈다. 작은 노역인가. 고 교장의 줄기찬 집념에 감탄한다. 《고경중마방》은 ‘옛 거울을 닦는 방법’이란 의미다. 선고께서 출간한 《운곡집》의 〈영재공의 말씀과 추억 중에서〉를 옮겼다. 조부님(斗翊)의 영명함을 일찍 알아 증조부님이 못 배운 한을 아들에게서 .. 2022. 2. 25.
설중매(雪中梅) 설중매(雪中梅) 김길웅 칼럼니스트 매화는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꽃도 다른 나무에 비해 일찍 핀다. 다들 깊은 잠 속인데 매화는 일찌감치 눈을 뜬다. 봄을 기다리는 타고난 감성 탓일 것이다. 눈발 성성한 1월 말에서부터 피어 연중 들머리 짓는다. 이를 일러 꽃의 우두머리라고 ‘화괴(花魁)’란 별명까지 가졌다. 선비들이 좋아하는 사군자, 매란국죽(梅蘭菊竹)에서도 으뜸으로 줄 세웠다. 차가운 눈 속에 피어 ‘설중매’다. 눈 속에 꽃이 어디 쉬운가. 한겨울 혹한의 절정을 무릅쓰고 굳은 기개처럼 피어나는 꽃과 은은하게 배어나는 매향에 말을 잊는다. 옛 선비들은 매화가 지닌 결곡한 절개와 높은 지조를 능히 읽었으리라. 김홍도는 무척이나 매화를 사랑했다 한다. 하루는 한 사람이 매화를 팔겠다 하나, 돈이 없어 살.. 2022. 2. 18.
‘버럭’ 감독 ‘버럭’ 감독 김길웅 칼럼니스트 배구인 김호철이 기업은행 감독으로 프로리그에 복귀했다. 1981년 이탈리아 리그에 진출해 MVP로 뽑히면서, ‘컴퓨터 세터’. ‘황금의 손’이란 별명만큼이나 명성을 떨쳤던 분이다. 국가대표팀과 남자 프로배구 현대캐피탈 감독도 역임했다. 선수로, 지도자로 국내외에 이름을 떨쳤던 화려한 그의 전성기를 기억한다. 호통치는 불도저형 감독이라 팬들의 기대에 부응할 것이란 분위기다. 세터의 이탈 논란과 관련해 기업은행 구단이 내홍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연패의 늪에 빠진 팀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아야 할 책무를 맡게 됐다. 기대가 크면서도 여자팀을 처음 맡아 그 ‘버럭 감독’이 팀을 추슬러 낼까 하는 우려의 시선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김 감독의 존재감은 대단하다. 그럴 것이, 현역 시절.. 2022. 2. 11.
제사·명절의 현재와 미래 제사·명절의 현재와 미래 김길웅 칼럼니스트 한국은 조선 이래 전통적인 유교의 나라이고, 제사·명절은 유교의 대표적 의례다. 인간에게는 영원히 존재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하지만 유교의 교리는 그에 부응하지 못한다. 기독교나 불교 등은 인간은 육체만 소멸하는 것으로, 영체는 그대로 남아 다른 형태로 삶을 이어간다고 믿는다. 유교에서는 이런 영생법이 없다.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거나 공중으로 흔적 없이 사라져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사람들이 영생이 이뤄지기를 바란 데서 제사가 시작됐다 하고, 결국엔 가족들이 아들을 통해 제사를 지내기를 원했다. 제사를 지냄으로써 부모가 아들의 기억 속에 되살아나게 되므로 자연 제사가 없는 삶은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아들에서 대대손손 이어지며 영원히 존재하는 방법은 제사밖에 .. 2022. 2. 4.
설날에 꺼내는 화소(話素) 설날에 꺼내는 화소(話素) 김길웅 칼럼니스트 설은 해의 첫날을 기리는 명절이다. 시대의 물결을 타고 음·양력을 오가다 구정에 머물렀다. 전통 탓인지 양력보다 구정 쪽이 친근한 건 몸에 밴 정서적 호감일까. 없던 시절에도 설은 추석과 함께 잘 쇠야 하는 양대 명절이었다. 인식 속에 그렇게 뿌리 박혀있다. 이날만은 일손을 멈추고 정갈하게 빚은 명절 제수를 마련해 차례상에 올렸다. 뫼는 고봉밥이고 갖가지 떡과 과일이며 생선을 올려 절하며 흠향하시라고 빌었다. 아잇적 기억이다. 설날이 가까워지면, 집안이 부산하게 돌아갔다. 어머니는 우선 깊숙이 담아뒀던 놋그릇을 꺼내 누나와 같이 닦았다. 퍼렇게 녹슨 그릇들을 산도 쑤세미에 물 머금은 속돌 가루를 찍어 바르며 꾹꾹 눌러 닦았다. 녹물로 수세미가 새까맣게 되면서 .. 2022. 1. 28.
어느 겨울날의 일기 어느 겨울날의 일기 김길웅 칼럼니스트 하루하루를 선물 받은 것처럼 살라 한다. 사물에 닿는 긍정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하루를 선물 받은 것처럼’이란 직유의 보조관념, ‘선물’에 골을 파며 흐르는 유창한 웃음, 대화, 언덕에 올라 먼 산 바라기, 겨울을 나는 낙엽수의 치열한 생존, 머리 위로 내리는 다사로운 겨울 햇살, 오랜만의 완결된 만남, 지난밤 꿈속을 달리던 완주의 기쁨, 누웠던 몸을 일으켜 세우며 나를 읽기, 요즘 세상사 한쪽 톺아보기…. 인생을 단순화하면 별것 아니다. 삶을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찌감치 풍경으로 밀어놓고 보면 비극이다. 우리는 너나없이 배설하며 가리는 것부터 배우고, 인생의 마디마디를 의례로 치르며 거드름도 피우다 한 생을 마감하기 전엔 또 배설이라는 구실이 어려워진다. 누군가.. 2022. 1. 21.
귤, 곧 제주다 귤, 곧 제주다 김길웅 칼럼니스트 아잇적엔 귤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일 년 두세 번 하는 제삿날, 그도 운이 좋아야 한 조각 맛볼 수 있었다. 상에 올렸던 황금색 큼직한 그것은, 알고 보니 당유자였다. 음복 때 껍질을 벗겨놓으면, 집 안에 진동하던 그 특유의 냄새 못잖게 시었던 그 맛. 당유자가 곧 귤이라 생각했다. 하긴 유자가 귤의 원조쯤 될까. 크면서 귤나무가 대학나무란 말을 들어 고개 갸우뚱한 적이 있었다. 귤나무 한 그루면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수익성이 높은 귀한 나무라 빗대던 시절 얘기다. 제주에서 유일하게 귤을 재배하던 서귀포를 신이 내려준 축복의 땅이라고 부러워했었다. 20대 초, 서귀포 위미리 동창생 집에 갔다가 자지러질 뻔했다. 뒤란에 귤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2022.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