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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 김길웅 시인346

어설프지만 어설프지만 김길웅 칼럼니스트 읍내 조그만 집에 숲을 가꾸고 난을 키우며 서른 해를 살았다. 짧지 않은 시간을 그렇게 살았으니 나무와 풀에 빠져들 수밖에. 식물 취향인 데다 시골이란 환경이 인연이 됐을 것이다. 인과 연이 잘 맞아 어우러져 자연 인연과를 얻게 됐다. 푸나무를 심어 물주고 흙을 북돋우고 전지하는 식물 사랑의 장(場)이었다. 오염되지 않은 시골은 푸나무에게 최적의 삶을 선사했다. 햇빛과 이슬과 바람만으로 쑥쑥 자라 내가 손수 심은 것들이 나와 키를 견주더니 몇 년 새 지붕을 넘봤다. 특별한 구상 없이 수많은 그들을 심어 야산의 한 자락을 옮겨 놓은 것처럼 하자 한 취향을 만족시켜 주었다. 뜰에 자연주의를 옮겨 놓고 싶었는데, 웬만큼 성공했다. 다가앉으면 품어 주는 것이 자연이었다. 낙엽수와 상.. 2021. 10. 22.
돈보다 고귀한 사랑 돈보다 고귀한 사랑 김길웅 칼럼니스트 “기도하는 사랑의 손길로 떨리는 그대를 안고 포옹하는 가슴과 가슴이 전하는 사랑의 손길 (후략)” 밤에 들으면 좋다는 조용필의 명곡 〈비련〉의 도입부다. 한데 이 노래에는 얽힌 사연이 있다. 가는귀먹은 데다 워낙 과문이라 나만 모르고 있었는가. 지인이 카톡으로 보내준 사연이 감동적이라 윤문(潤文)해 여기 싣는다. 혹여 나같이 세상사에 소홀한 이가 있다면 공유하고 싶었다. 매니저 최동규 씨가 조용필의 4집 발매 당시 인터뷰 내용 중 발췌한 것이라 밝히고 있었다. 4집 발매 후 무척 바쁜 와중에, 어느 요양병원장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는 것. “저의 병원에 14세 지체 장애 여자아이가 입원해 있는데, 조용필 씨의 〈비련〉을 듣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입원 8년 만.. 2021. 10. 15.
추색 사유(秋色 思惟) 추색 사유(秋色思惟) 김길웅 칼럼니스트 가을을 잘 함축한 말이 있다. 천고마비(天高馬肥), 이 한 단어에 가을이 담겨 충만하다. 구름 한 점 없이 눈 시리게 푸른 가을하늘이 창공(蒼空)이다. 구만리 장공, 높고 푸른 하늘빛이다. 가을하늘을 나는 새를 바라본다. 높은 하늘을 거침없이 날아다니는 저것이 원초의 자유다. 치솟거나 그냥 흐르며 날아간다. 제가 선택한다. 날개만 흔들면 되는 낢의 자유자재한 저 경계, 무애(無碍)다. 맑게 갠 가을 하늘이 무대다. 새를 한낱 미물이라 업신여길 수 있으랴. 사람이 갖지 못한 저 비상과 선회의 날갯짓 앞에 말이 다 부질없고, 과학이 무력하고. 철학이 빛을 잃는다. 초가을이면 불쑥 찾아드는 불청객, 태풍이 제대로 올 모양이다. 바람이 오기도 전에 산엔 몇 백 밀리라며 사.. 2021. 10. 8.
회귀 본능 회귀 본능 김길웅 칼럼니스트 꿀벌이 꿀을 따려고 날아간 다음 집을 옮기면 본래 집이 있던 곳에 떼지어 몰려든다. 집이 아니라 위치를 기억하는 것이다. 연어는 태어난 강에 방류하면 며칠 안에 바다에 나가 연안에서 두석 달 지낸 뒤, 북태평양으로 가 4년 뒤에는 산란을 위해 태어난 강으로 돌아온다. 비둘기도 집을 중심으로 회귀를 학습시키면 그 반지름을 넓히면서 매우 먼 데서 되돌아온다. 이것은 학습과 회귀성이 함께 작용한 것이다. 하물며 사람임에랴. 나는 인간에게 이 회귀성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를 6·25전쟁 때 ‘피란’이란 대이동을 보며 눈 시리게 봐 왔다. 1·4후퇴 직후였을까. 초등학교 1,2학년 무렵, 남북한 일대에서 남으로 남으로 전쟁을 피해 내려왔다. 피란민이라 했다. 민족의 대이동행렬은 국토남.. 2021. 10. 1.
새벽 겸손 새벽 겸손 김길웅 칼럼니스트 새벽 네 시, 동살 틀 무렵 잠을 깼다. 기지개에 몸속의 세포들이 돌기처럼 일어나 눈을 번득인다. 욱신거리던 뼈대들이 어제의 고단에서 몸을 빼고 나와 윗몸일으키기 너댓 번으로 화답한다. 내가 나서기 전에 몸이 먼저 말을 걸어왔을지도 모른다. 새벽에 깨어나면서 몸과 나누는 침묵 속의 교섭 방식이다. 기호 없는 소통이 천연덕스럽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이런 화법에 익숙해 있다. 이 시간, 집어등 환한 바다에선 불끈 걷어붙인 어부들 두 팔의 근육이 팔딱거리는 고기들을 건져 올릴 것이다. 밤을 새워도 그들의 눈에는 졸음기가 없다. 눈두덩일 무겁게 내리덮는 졸음을 쫓으며 기다려 온, 새벽은 싱싱한 날것의 시간이다. 위로 치솟고 싶은 시간, 몇 걸음 앞으로 내디디고 싶은 시간, 드높이 날.. 2021. 9. 24.
초가을 초가을 김길웅 칼럼니스트 초가을을 한자어로 맹추라 한다. 음력 7,8,9월을 맹추(孟秋)·중추(仲秋)·계추(季秋)라 한 데서 온 말이다. ‘맹추’란 말에 장난기가 발동한다. 철없이 구는 순진한 녀석에게 대놓고, 어깨 치며 “야, 요 맹추야.” 하는 스스럼없는 장면이 떠오른다. 반어적 표현이긴 하나 가을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연년이 초가을을 대할 때마다 아직 익숙지 못해 두리번거리는 좀 의뭉하고 어리숙한 사람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백로 이틀 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베란다 창을 열다 깜짝 놀랐다. 북쪽 창으로 경주마처럼 달려드는 쌀쌀한 갈바람에 민소매를 놀라게 하더니. 맞은편 남쪽 창을 마저 열었더니, 그새 거실을 스쳐 지나는 바람이 빠져 나가며 집 안에 너울 같은 파장을 일으켜 놓는다. 엊그제.. 2021. 9. 17.
끌림 끌림 김길웅 칼럼니스트 종일 지적이며 비 내리는 날이다. 한데도 나무만 보고 있으면 안에 고인 우울이 말갛게 갠다. 며칠 두고 하늘을 덮었던 음울한 구름 걷히듯 마음 둘레가 환하다. 나무의 무엇이 나를 밝게 하는가. 아파트 숲 그늘 평상에 앉아 고단한 일상을 잠시 주무른다고 숨 길게 내쉬었다 깊숙이 들이켠다. 어느새 엉덩이를 들이밀어 나무의 굵직한 줄기에 다가앉아 있다. 구실잣밤나무가 거목으로 드리운 그늘이 깊고 짙다. 20년 전, 아파트가 선호하는 주거 형태로 자리매김할 무렵 지은 곳이라, 그때 삽질한 아주 작은 나무가 그새 성목으로 숲을 장악하고 있을 테다. 그만그만한 것들이 여기저기 흩어 있는데도 졸들을 거느린 장수처럼 눈에 확 띄는 압도적 존재감이다. 나무의 생장이 탁월했다지만, 20년이란 짦지 .. 2021. 9. 10.
백로 전 미발(白露前未發) 백로 전 미발(白露前未發) 김길웅 칼럼니스트 백로는 24절기의 하나, 15번째로 처서와 추분 사이다. 농작물에 이슬이 맺힌다는 뜻이다. 가을 초입으로 추색이 완연하다 하나 아직 낙엽은 없다. 무더위를 몰아내는 계절의 첨병이라 나처럼 여름내 헉헉대 온 사람에겐 선선하니 자애롭다. 갈바람을 데리고 온다 꾸짖으랴. 나무들도 단풍 준비에 부산할 것이라. 어느새 벌겋게 불타는 가을 산을 기다려 가슴 설렌다. 양력 9월 7,8일경이니 계절의 완충지대, 아직 덧옷을 꺼내기엔 철 이른데, 아침저녁으로 옷깃을 스치는 바람 끝날의 냉기가 별안간 낯설다. 하지만 입던 입성대로 지낸다고 고뿔 걸릴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는, 조금 만만한 절기다. 놓쳐선 안될 게 바로 이것이다. 이 틈새를 비비고 들어가 마주하고 선다면 팍팍한 .. 2021. 9. 3.
때리고 가로막고 받고 때리고 가로막고 받고 김길웅 칼럼니스트 질병 난리 통에 집콕하며 여자배구대표팀에 쏠렸다. 잊히지 않는 도쿄올림픽, 한일전 그 장면. 그새 굴곡이 있었기로 긴장됐다. 이탈리아에서 열린 발리볼 네이션스 리그(VNL)에서 한국은 참가국 16팀 중 15위였다, 세계의 벽은 높았다. 장신들 앞에 때리고 막지 못했다. 기도 쓰지 못한 채 연속 무릎을 꿇었다. 응원하다가도 멋쩍었다. 심지어는 중국·일본에게도 3:0 완패해, 동네북이 됐다. 딱했다. 한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기사회생한 것이다. 잠재적 기대감 때문일까. 한 달여 만에 도쿄 올림픽이 열려, 경기를 시청하게 됐다. ‘혹시’ 했던 게 ‘역시’였다. 그것은 놀라운 파장이었다. 예선 1차전에서 강호 브라질을 만나 셧아웃 되면서, 이젠 절망의 늪에 빠지는구나 .. 2021. 8. 27.
상상력 실험~제주일보(2021년8월20일) 상상력 실험 김길웅 칼럼니스트 칸트는 상상력을, “직관 속에서 표상하는 능력”이라 했다. ‘직관’과 ‘표상’ 두 낱말을 조금만 연합해 보면 상상력이 문학 창작의 원천이라는 말이 될 것이다. 시인 안도현은 어느 글에서 ‘낯설게 하기’를 말하면서, “삼겹살을 뒤집어라.”고 했다. 글이 글다우려면, 그 나물에 그 밥, 라면 먹고 이빨 쑤시는 식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로 들린다. 시인 작가에게 문학은 자신의 생애를 상상력과 감수성에 의탁함으로써 잃어버린 ‘나’를 되찾고자 고군분투함일 것이다. 자신과의 처절한 사투다. 의식을 따르다 보면 관념에 갇혀 의식 자체가 남루에 덮이고 만다. 상상력의 기력이 탄력을 잃어 낡아 버리는 것은 정한 이치다. 근원에 닿으려는 간절한 열망을 지니고 있은 한, 사람의 심성은 안팎으로.. 2021. 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