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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 김길웅 시인346

눈의 추억 눈의 추억 김길웅 칼럼니스트 ‘창밖에 흰 눈이 내리는 밤엔 멀리 떠나간 동무가 그리워져요. 정답게 손잡고 뛰놀던 그 동무….’ 성탄절 아침, 때마침 눈이 너풀거리는데, 어쩌다 흥얼거리게 됐다. 아득한 옛 시절, 눈 오는 날이면 부르던 노래다. 소박했던 시절이라 노랫말도 마음 따뜻하다. 눈이 내리면 강아지도 꼬리 치며 좋아라한다. 눈이 내려 하얗게 쌓인 날엔 하얀 세상과 그 위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신기할 것이다. 나는 마당 구석에 덫을 놓아 참새를 잡는다고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나뭇가지를 둥그렇게 만들어 그물로 씌우고 그걸 받침목에 대어놓고 양쪽에 큰 돌로 눌러 땅바닥에 세우던 덫. 그 앞엔 입질 감으로 노란 좁쌀을 한 줌 뿌렸다. 참새들이 집 어귀에 떼지어 앉았다. 이틀만 눈이 오면 굶주려 이리.. 2022. 1. 7.
또 한 해가 저문다 또 한 해가 저문다 김길웅 칼럼니스트 이글이글 놀이 탄다. 신축년을 매조지는 찬연한 저 광휘, 장엄하여라. 들머리엔 꿈이 있었다. 묵은 것에서 미완과 실패의 기억을 딛고, 날려는 꿈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에 갇혀 시종 암울했다. 헤어나려 버둥대며, 어느덧 그믐날의 해가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제대로 해낸 건 적고 많이 잃었던 한 해였다. 달력이 달랑 한 장, ‘31’, 마지막 숫자는 아직 유효라 했는데, 마저 지워지고 또 한 해가 저문다. 숱한 날들이 낙엽처럼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가뭇없다. 깔축없이 그 끝, 세밑이다.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은 뒤돌아보지 마라. 하루하루가 모두 인연이었는데, 다 떠나갔다. 익숙해지면서 소중한 줄 몰랐던 시간들,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 가슴 아리다. 만해 한용운은.. 2021. 12. 31.
아픈 세포의 기억 아픈 세포의 기억 김길웅 칼럼니스트 사물이나 사상(事象)에 대한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했다 인출하는 정신 기능이 기억이다. 인간에게 이 능력이 없다면, 지적 성장이나 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중1 때 집에서 주문한 문장 한 짝을 찾으러 목공 집에 갔다 개에게 물린 일이 있다 문짝을 받아들고 나오는데 풀어놓은 검둥이가 쫓아 나와 내 왼쪽 종아리를 문 것이다. 들고 있던 문짝이 큰 것이라 제대로 도망치지 못했던 걸까. 아프기도 했지만 와락 겁이 나 눈앞이 캄캄했다. 이후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개라는 짐승이 제일 무서운 존재로 마음속 깊숙이 똬리를 틀어 앉아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 바닷가에 있던 그 집은 앞이 돌계단이라 그 녀석을 피하기도 쉽지 않았다. 반세기가 더 지난 아득한 옛일인데도 기억에 생생하다.. 2021. 12. 24.
만화경(萬華鏡) 만화경(萬華鏡) 김길웅 칼럼니스트 빛의 반사에 의해 다양한 무늬가 변화하며 많은 상(像)을 나타내는 거울이 만화경이다. 같은 모양은 다시 나타나지 않고 천변만화(千變萬華)한다. 그래서 ‘만화경’이다. 갖가지 아름다움을 나타내나, 세속의 일이라 쌀의 뉘처럼 곱지 않은 것도 섞여 있다. #1_『동심은 나의 힘』 김영기 아동문학가·시조시인이 책을 냈다. 『동심은 나의 힘』. 한곬 현병찬 서예가의 휘호가 묵직해 책의 품격이 느껴지는데, 도리우찌를 눌러쓴 팔순 저자의 다정다감한 얼굴이 온화하다. 그새 건너온 인생의 풍우 성상이 녹아 있는 얼굴인데, 평생 동심 속에 살아온 분이라선지 내 눈엔 연세를 잊은 듯 해맑고 순정하다. 머리글 제목 ‘작은 보람 큰 고마움’, 나는 모두의 첫 두 문장에 긴장했다. “모든 어린이.. 2021. 12. 17.
행운이 오기까지 행운이 오기까지 김길웅 칼럼니스트 누구나 자신에게 행운이 찾아오기를 원한다. 언젠가 찾아오리라 고대한다. 구름을 타고 흐르다 하늘에서 내 앞으로 내릴까, 맑게 갠 날 언덕 너머 어느 들판에 고혹하게 꽃으로 피어 있는 건 아닐까. 행여 길을 잃어 내게로 오다 되돌아가 버린 건 아닐까. 조바심 치다 집을 나선다. 발 동동 구르다 행운이 오리라는 길목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행운은 좋은 운수라 우리의 마음을 빼앗는다. 세네카도 “행운은 준비가 기회를 만났을 때 나타난다.”고 했다. 맞이할 준비가 돼야 한다, 준비한 사람이 기회를 만났을 때라야 행운이 온다는 의미다. 행운을 기다리는 마음을 에둘러 표현했으리라. 동양에선 행운을 운수, 나쁘게는 우연이나 미신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서양은 다르다. 행운을 성공을 위한.. 2021. 12. 10.
겨울 생각 겨울 생각 김길웅 칼럼니스트 낙엽수가 많아선가. 소소리바람 한차례 지나더니 뜰 안이 고자누룩해졌다. 지지 않고 사각거리는 단풍나무 마른 잎 소리에 아파트 겨울 한낮이 스산하다. 겨우내 저렇게 가지에 달라붙을 것이다. 잎으로 생을 다하면 낙엽이 돼야 하는 이치를 저버린 것일까. 해마다 저러고 겨울을 난다. 질 때를 알아야 하거늘 늘 저러고 있으니 보기에 민망하다. 겨울이 깊어 가면 더 청승맞겠다. 겨울은 생명이 견뎌내야 하는 고난의 계절이다. 새파랗던 것들이 사그라들고 무성하던 것들은 전성기를 지나 헐벗는다. 눈에 보이는 것 없이 천방지축 활개 치던 기운을 소진해 이젠 맥을 못 춘다. 다 내려놓아 있는 듯 없는 듯 은둔의 두꺼운 벽 속에 갇혀 버린다. 잠들어 늘어지게 긴긴 시간을 칩거하는 것들도 있지만, .. 2021. 12. 3.
마음을 담은 선물 마음을 담은 선물 김길웅 칼럼니스트 선물은 정을 베푸는 것, 안에 따듯한 감사의 마음이 녹아든다. 생일 선물이나 크리스마스 선물이 대표적인 예지만, 실제 갖가지로, 주고받는 경우도 단순치 않다. 연인끼리 발렌타인·화이트·빼빼로 데이라 하면서 초콜릿 등을 주고받곤 하는데, 요즘 좀 시들해졌는지 전 같지 않다. 선물의 상징성이 실종된 걸까. 11월 11일의 빼빼로데이는 ‘1’이 네 번 겹치는 날이라는데 그게 연인들에게 무슨 의미인가. 선물용품을 팔아 매상을 올리려는 상업주의 책략인 게 들통난 걸까. 꾀임은 오래 가지 않는다. 결혼 때 신랑 신부가 선물로 예물을 주고받는다. 딸자식을 데려간 것에 대한 답례인데, 이 예물로 인해 양가에 분란이 일기도 하는 모양이다. 심각하면 파혼으로 가기도 한다잖는가. 시어머니.. 2021. 11. 26.
김수환 추기경님 김수환 추기경님 김길웅 칼럼니스트 생존해 계셨으면 올해 연세 상수(上壽)에 이르는 해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 곁에 산으로 앉아 계신 당신을 떠올립니다. 당신의 맑은 사상과 종교와 철학, 누리를 지폈던 사랑과 가난한 이웃을 품던 베풂의 삶을 되뇌다 보니, 가톨릭 신자가 아닌 문외(門外)의 무명(無名)임도 깜빡 잊었습니다. 망설임 끝에 다가앉게 됐음을 살펴 주시리라 믿습니다. 추기경님은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스쳐 지난 종교인이 아니었습니다. 결론으로 말해 추기경님은 이 나라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커다란 자취를 남기셨습니다. 당신의 삶은 산업화·민주화라는 시대의 격동기를 헤치면서 우리 현대사와 교회성장사를 고스란히 몸으로 떠안으셨습니다. 시대의 양심이자 큰 어른이었지요. 양심의 소리를 일깨우는 시대의 예언.. 2021. 11. 19.
유효한 파장 유효한 파장 김길웅 칼럼니스트 화선지는 먹을 잘 빨아들이고 또 잘 번져야 한다. 예민한 종이다. 먹물이 번지는 정도를 고려해서 먹의 농담(濃淡)과의 관계를 잘 살펴 고르는 데 경험칙이 따라야 할 것이 화선지다. 스며들고 번지는 선염법(渲染法)을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 흡수력을 고려해 화조도는 흡수가 적은 것이, 산수화는 흡수가 잘되는 게 좋다고 한다. 바탕재에 물을 먼저 칠하고 마르기 전에 붓으로 번지듯 칠하는 게 선염법(渲染法)이다. 농담과 번짐 효과를 극대화해내는 기법이다. 색채의 농담과 깊이, 입체감이나 공간감을 표현하는 데 적합하다고 한다. 구름, 안개, 배, 번지는 달빛 등 자욱하고 물기를 머금은 듯한 풍경이나 몽롱한 환상적인 느낌을 나타낼 때 쓰는 기법을 두고 하는 말이다. 화선지는 먹물을 빨.. 2021. 11. 5.
눈물을 바라보는 눈 눈물을 바라보는 눈 제주일보 승인 2021.10.28기사공유하기 김길웅 칼럼니스트 눈물은 사람만 흘리는 전유물이 아닌 것 같다. 동물도 슬프거나 괴로울 때면 뜨겁게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눈 안에 가득 고였다가 주루룩 흘리고 있으니 정녕 눈물이라 할밖에 없잖은가. 어느 날 갑자기 우시장으로 팔려가는 송아지나 어미 소, 억지로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가 눈물을 흘리거나 TV 동물농장에서 눈물 흘리는 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뿐 아니다. 경주마가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패배를 당한 후 분통을 터뜨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단다. 참지 못하겠다는 격한 감정의 표현이다. 물론 안구 건조 방지를 위한 생리일 뿐, 슬픔이나 분노를 표출하는 눈물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한데 야생.. 2021. 10.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