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보 김길웅 시인346 대나뭇가지 지지대 대나뭇가지 지지대 김길웅 칼럼니스트 후문으로 통하는 동(棟) 사잇길의 널찍한 쉼터는 놀라운 디자인이다. 두 가호가 너끈히 들어겠다. 땅값이 널뛰지 않던 20년 전에 지었다니 가능했을까. 아파트에 쉼을 위한 이만한 공간은 흔치 않다. 건축에 쉼을 접목해 가성비를 높였다면, 건설 쪽도 잇속을 살렸지 손해 본 장사는 아니었을 성싶다. 앉아 쉬게 원통형 돌들을 운치 있게 흩어 놓았고, 남쪽엔 시골집 마당처럼 돌멩이로 올망졸망 쌓아 화단을 만들었다. 수많은 돌의 축적이나 다들 손을 타 시멘트 흔적이 없다. 아파트라는 거대한 구조물에 자연을 불러들인 의중이 엿보여 미소로 번지는 감탄 감이다. 동 사이를 터놓은 넉넉한 쉼의 자리라 마음 끌리기도 하거니와, 화단이 있어 곧잘 와 앉곤 한다. 머리 위로 늙은 왕벚나무 세.. 2022. 5. 27. 여름으로 가는 숲 여름으로 가는 숲 김길웅 칼럼니스트 숲은 천연덕스럽게 계절을 갈아입는다. 겨우내 발가벗거나 남루로 허름한 입성이다가 이내 검소하게 새 단장이다. 얄브스름한 연둣빛 윗옷에 통 깊은 앞섶이 눈을 끈다. 고름 풀어 좋을 봄바람에 실려 내려앉는 실비단 햇살이 다사로와 볕 바른 곳에 앉으면 졸음이 몰려온다. 오월 하오, 아파트 숲으로 들어섰다. 아파트 정문과 후문 사이로 난 연둣빛 오솔길이 눈앞이다. 연동에 이 아파트가 들어선 지 스무 해가 지났다 한다. 그때라 가능했을까. 아파트에 오솔길을 냈으니, 쉽지 않은 기획이다. 동과 동 사이에 두 줄 주차면을 내고도 남아 숲을 만들어 놓았으니 놀랍다. 아파트에 자리 잡은 작은 숲은 인공에 자연을 불러들인 소중한 가치다. 숲 자체로 이 아파트의 존재감이라 하겠으나, 나는.. 2022. 5. 20. “앙증맞은” “앙증맞은” 김길웅 칼럼니스트 이른바 ‘검수완박’이란 생소한 말이 귀에 진이 박이더니 얼마 전 일단락됐다. 합의다, 번복이다, 토론이다 여야가 당기고 밀리고 힘을 겨루다 일단 다수당의 뜻대로 간 것이다. ‘검찰 수사권을 완전 박탈한다.’는 표방부터 너무 공격적·호전적이더니, 처리 과정이 매끄럽지 못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나라 안팎의 이목이 쏠려 빈축을 샀을 법하다.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인데, 정치 후진국이라는 불명예를 씻지 못하니 안타깝고 한편 민망하다. 나는 법을 모른다. 또 법에 별다른 관심을 갖고 있지도 않다. 다만 나라를 잘 다스리게 하는 기본적 장치와 제도를 규제하는 근본이므로 그게 잘 만들어지고 좋지 않은 곳은 잘 고치고 다듬을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데는 크게 공감한다. 사실, 검수완박만 .. 2022. 5. 13. 어린이·어린이날 어린이·어린이날 김길웅 칼럼니스트 ‘어린이’는 소파 방정환 선생이 첫 아동문학잡지(1920) 《어린이》에서 맨 처음 사용해 정착시킨 말이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시오.’라 운을 뗀 그 말이 오늘 큰 울림으로 되살아난다. 형용사 ‘어린’과 명사 ‘이’의 복합어 ‘어린이’. 어린이란 말에는 방정환 선생의 소망이 담겨 있다. 늙은이, 젊은이는 있어도 ‘어린이’란 단어는 국어에 없었다. 애기, 애새끼, 어린 것, 애, 애들, 계집애라는 말이 쓰였을 뿐이다. 그 당시 ‘어린이’란 말이 새롭게 나온 것은 국어 속의 ‘탄생 신화’가 됐다. ‘어린이’는 발달단계의 과정을 거치는 한 시기를 뜻하지 않는다. 단순히 나이가 어린 사람, 자라고 있는 사람, 어른으로 커 가는 사람이란 의미가 아니다... 2022. 5. 6. 바람은 바람은 김길웅 칼럼니스트 바람 좋은 봄날 오후 한때 풍경. 미풍에 나뭇가지가 흔들거리면서 나뭇잎이 파르르 운율을 탄다. 막 내려앉은 햇볕이 잘게 부서져 사방으로 흩어진다. 숲 아래 아이를 품고 앉은 할머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할머니를 바라보며 아이도 맑게 웃는다. 아이는 세상을 아직 모른다. 알 수 없거니와 알지 않아도 된다. 저 땐, 반짝이는 눈매가 곱다. 욕심이 없는 눈이다. 아이가 흥얼거리다 지저귀는 새소리에 또 웃는다. 숲으로 드는 볕과 바람 속 곱디고운 아이의 웃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언어다. 티 묻지 않은 저건 아이만의 범주다. 퇴근하는 엄마에게 달려가는 아이, 엄마! 부르는 소리에 숲이 살짝 돌아눕는다. 서슬에 참새 떼지어 날았다 금세 나뭇가지로 내린다. 곱절로 시끄럽다. 지저귀는.. 2022. 4. 29. 소묘(素描) 넷 소묘(素描) 넷 김길웅 칼럼니스트 아파트 모롱이 평상 가에 앉아 여기저기 바라보는 재미에 빠져 있다. 아파트는 압축된 공간이라 사방으로 열린 단독주택에 비해 풍경이 단조롭다. 무미한 일상에서 무늬 한둘 데생해 보고 싶게 됐다. 낱장을 차곡차곡 올려두면 되고, 색을 올리는 것은 나중 일이다. 흑백 영화처럼 색에서 떠나기로 한다. 검정 이상의 색은 없다. 기억의 곳간은 조금 어둠침침해서 좋다. 불타는 꽃_아파트 둘레를 돌다 자지러지게 놀랐다. 숲 오솔길이 끝나는 곳에 꽃이 군락을 이뤄 빨갛게 불타고 있다. 활활 불타는 꽃 사태. 색상환의 스펙트럼에 저런 빛깔이 있을까. 여태 본 적이 없는 진달래 종으로 보인다. 잘 익은 홍시 빛이거나 노을빛으론 묘사가 모자라다. 그것들에 붉은 물을 더 올린 진홍(眞紅)이다... 2022. 4. 22. 돌아보고 내다보고 돌아보고 내다보고 김길웅 칼럼니스트 과거를 나대며 들고나는 의식의 흐름이 뚜렷이 감지된다. 시계가 역회전하는지 지난날을 돌아보는 일이 잦고, 거기 머무르는 시간이 턱없이 길다. 아득한 시공간에 자신을 가둬 머뭇거리다, 번쩍 눈떠 이곳저곳 뒤적인다. 흔들고 풀고 헤치면서 허둥댄다. 아무리 살펴도 명확히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오래 머물수록 시간 위로 무료함만 쌓여 헛헛할 뿐인데도 그런다. 나이 듦의 낌새라 지레짐작이야 했지만, 한쪽으로 쏠린 우심한 증후군이다. 으레 주마등, 파노라마 같은 단어가 내 둘레를 심상찮게 따라다닌다. 이 말들이 유의미하게도 내 안에 뿌리내린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이젠 굽이쳐 흐르려 한다. 두 아들을 분가해 내보냈고, 공·사립학교를 오갔던 굴곡진 교직 44년, 눈.. 2022. 4. 15. 환절기 대응 전략 환절기 대응 전략 김길웅. 칼럼니스트 한국처럼 사철이 명확한 곳에선 춘하추동이 순환하며 다른 절기를 나타낸다. 계절이 바뀌는 것도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인다. 번거로워할 게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단조로운 정서에 변화를 주어 연속되는 삶의 권태에서 벗어나게 한다. 촉매제 구실을 하는 것이다. 열대와 한대에서는 누릴 수 없는 행운이다. 계절은 고정돼 있지 않고 주기적으로 이동한다. 계절 간에 길고 짧음이 있으나 늘 어김없이 바뀌는 것이다. 춘하추동은 계절이 바뀌며 규칙화한 차례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가 있는데, 이를 환절기라 한다. 단지 계절이 다음으로 이동하는 게 아니다. 추위에서 더위로, 더위에서 추위로 달라지니, 이를테면 성격까지 바뀌는 셈이다. 그러니까 겨울에서 봄·여름으로, 다음 가을로 바뀌는 뚜렷.. 2022. 4. 8. 신구(新舊)의 마찰 신구(新舊)의 마찰 제주일보 승인 (2022년4월1일) 김길웅 칼럼니스트 이해나 의견을 달리하는 양쪽이 서로 충돌하는 현상이 마찰이다. 한 물체가 다른 물체와 맞닿은 상태에서 움직이기 시작할 때, 그 접촉면에서 운동을 저지하려는 힘이 막아서면 당연히 부딪쳐 걸리적거리게 마련이다. 이로 인해 동력을 상실하면 밀려오는 파도 같은 힘에 쓸린다. 심하면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돈다. 무모한 일이다. 정지한 상태에 있는 물체를 움직이려 할 때 생기는 저항을 ‘정지마찰’, 움직이고 있는 물체에서 생기는 저항을 ‘운동마찰’이라 한다. 처음 밀어서 시작할 때 가장 많은 힘이 필요하며,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처음보다는 작은 힘으로도 물체를 계속 움직이게 할 수 있다. 마찰은 움직임을 멈추게 한다. 부정적인 면만을 .. 2022. 4. 1. 오늘에 읽는 회고가(懷古歌) 2수 오늘에 읽는 회고가(懷古歌) 2수 김길웅 칼럼니스트 고려 유신의 회고가를 떠올린다. 나라의 패망과 새 왕조 창업이라는 격변의 시대를 살았던 두 문인이 옛 나라에 대한 회고(懷古)의 정회를 담은 시조 2수가 오늘에 새롭다. 야은 길 재와 운곡 원천석의 시조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 왕조가 들어설 무렵. 많은 문신들이 갈등과 고뇌 속에 방황했다. 역성혁명이 사실이 된 현실 앞에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절개를 지켜 고려와 운명을 같이 할 것이냐, 뜻을 새 왕조에 의탁해 부귀를 이어 갈 것이냐. ‘임 향한 일편단심’으로 충절을 지켰던 포은의 ‘단심가’는 세월이 흐른 오늘에도 많은 생각의 단초가 된다. 부질없는 인생을 어떻게 처신해야 현명한 것인가에 대한 답 중 본질을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고려의 신하라면 나라.. 2022. 3. 25. 이전 1 ··· 11 12 13 14 15 16 17 ··· 3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