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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 김길웅 시인347

있는 그대로 사는 것 있는 그대로 사는 것 김길웅 칼럼니스트 한 생명을 에워싸고 있는 자연적 조건이 환경이다. 생활 주변의 상태로 삶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준다. 사람에 국한됐던 것이 환경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각종 동식물로 확산되고 있다. 그만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원론적으로는 한 생명에게 환경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불리한 경우가 적지 않다. 새로 주어진 환경에 적응이 순탄치 않기 때문이다. 제주의 산과 들에 나가 보면, 기슭이나 빈터 군데군데 대나무(세죽)가 빽빽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다. 옛날 집이 들어섰던 터일 것으로 보인다. 아마 집의 뒤뜰쯤이 아닐까. 대나무숲은 한겨울 모진 바람을 막아주었음 직하다. 대나무는 엄청나게 번식하므로, 더러는 잘라내어 바구니나 소쿠리 같은 그릇을 만.. 2022. 11. 4.
음각(陰刻)인 이유 음각(陰刻)인 이유 김길웅 칼럼니스트 재료 면에 글자나 그림을 오목하게 새겨 넣는 기법이 음각(陰刻), 주변을 파 도드라지게 하는 돋을새김을 양각(陽刻)이라 한다. 도장은 보통 양각하지만 두 가지 기법을 같이 병용하기도 한다. 조각에서는 모티브 부분을 바탕 면보다 깊이 새겨 표현해 심조(沈彫)라고도 하는 수법이고, 판화에서는 윤곽선을 새겨 넣고 백선으로 형태를 표시한다. 비석에 기록하는 비문은 음각한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음각함으로써 비석 돌 자체를 글자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음각하면 돌이 글자를 품는다. 표현하려는 글자 모두가 돌의 품 안으로 들어간다. 비석 전체가 이미 글자가 돼 비문 자체가 돌로 재탄생한다. 그 결과, 놀라운 것은 비석에 새긴 비문이 오래 살아남는다는 사실이다. 비석을 새길.. 2022. 10. 28.
어휘 실종 어휘 실종 김길웅, 칼럼니스트 미당 서정주 시인은 늘그막에 어휘를 제대로 챙겼던 분이다. 시인에게 언어는 생명이니 그랬음 직하나 여간한 작심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하는 일이 세계의 산맥 천 개의 이름을 외웠다 한다. 색다른 취향이란 생각이 든다. 북아메리카에서 남아메리카로 내려 아시아 유럽으로…. 산맥 이름을 자근자근 외웠다는 것. 웬만한 근기로 될 일이 아니다. 그 이름들이 우리나라 산맥도 아닌 외국의 낯선 것들이라 황당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한데 유명 시인께서는 하루도 그냥 건너뛰는 일이 없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이가 들면서 시인의 노역이 그냥 해본 게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무방비 상태로 새어 나가는 기억력을 붙들려 안간힘 쓴 것으로, 범상한 사람으로선.. 2022. 10. 21.
아파트 숲으로 오는 가을 아파트 숲으로 오는 가을 김길웅 칼럼니스트 역시 계절의 순환은 질서이고 절도다. 들볶던 폭염에 늦더위로 위세를 부리더니, 부사리같이 덤벼드는 가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숲이 우거진 아파트다. 산이 아니라도 이곳 숲을 거닐면 철이 오가는 낌새를 너끈히 알아차린다. 염량(炎涼)이 때를 알아 오가는 추이를 불어오는 바람결과 등 뒤로 내리는 햇볕으로도 느낀다. 사람은 시절 변화에 민감한 촉수를 지녔다 웃통 위에 덧옷 하나 걸치고 시월의 아파트 숲으로 들어선다. 스산하다. 숲 새로 건듯 소슬바람이 지나는 기척인가. 그 바람결에 오랜만에 깊이 들이마셨다 내뱉는 들숨 날숨, 숲의 숨결인가. 후우잇. 잦아들 듯 한동안 이어진다. 바람이 숲을 술렁이게 하는 건 이제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 숲의 숨결은 그에 답하는 .. 2022. 10. 14.
<내게 거는 주술> 《내게 거는 주술》 김길웅 칼럼니스트 「제주일보」 ‘사노라면’ 필진 정복언 시인이 두 번째 시집 《내게 거는 주술》을 냈다. 제1집 《사유의 변곡점, 2020》을 낸 지 불과 2년 만의 상재다. 시단에 이름을 올린 게 2016년으로 일천하다. 그새 시집 두 권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2017년 수필가로 등단해 수필집 《살아가라 하네》와 《뜰에서 삶을 캐다》를 냈으니, 그 어간 운문과 산문을 넘나들며 4권의 작품집을 내놓는 경이로운 작업을 완수했다. 가마처럼 타오르는 창작욕에 앞섶을 여미게 한다. 동인으로 문학을 함께하면서 그의 문학에 대한 집념과 치열성을 익히 아는 필자로서 그냥 간과할 수 없어, 독자와 그의 시를 공유하기로 했다. 워낙 시업이 올찬 데다 공감의 결이 묵직해, 시집에 실려있는 68편.. 2022. 10. 7.
면벽(面壁) 면벽(面壁) 김길웅 칼럼니스트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 벽을 마주하고 수련하는 것을 면벽이라 한다. 다른 말로 좌선(坐禪)이다. 유래가 있다. 달마존자가 양 무제를 만나 문답하던 끝에 소견이 어긋나 양자강을 건너 위나라 승산 소림사에 숨어 있었다. 경론을 설하지 않고, 불상에 절하지도 않으며 종일토록 석벽을 향해 좌선해 9년을 지냈다 한다. ‘면벽 9년’, 그 뒤로 선승들이 선원에서 좌선하려면 반드시 벽을 향하게 된 소이다. 달마는 소림사 뒷산 동굴에서 수련 중, 누구와 말도 하지 않고 만나지도 않고 오직 벽만을 바라보았다 한다. 밖으로 향하는 모든 둘레를 절벽처럼 굳게 차단함으로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를 통해 일체의 번뇌에 휩쓸리지 않는 청정한 마음을 지니기 위함이었다. 생명을 유지해야 하므로 3,4일에 .. 2022. 9. 30.
《그 바다의 아침》 발문(跋文) 《그 바다의 아침》 발문(跋文) 김길웅 칼럼니스트 ‘사노라면’의 필진 박영희 작가가 수필집 《그 바다의 아침》을 냈다. ‘칼럼의 수필화’를 지향해 온 그의 글이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어 왔음을 아는 필자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공유할 작은 지면을 내기로 했다. 여러 해를 동인으로 문학을 함께한 감회 무량하다. 표제작의 한 부분에 불과해 아쉽지만 일독했으면 한다.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눅눅한 갯바람으로 목덜미에 솜털이 곧추 선다. 해무가 얄브스름하게 수면 위로 내려앉은 새벽, 아직 바다는 깨어나지 못한다. 밤새 어선들이 은밀한 속살을 헤집어 놓았다. 품에서 키운 것들을 떠나보내려 고단했던 바다도 신열로 열꽃을 피웠을까. 밤을 밝혔던 어선들이 포구로 돌아가고, 몸살을 앓는 그도 혼곤한 늦잠에 빠졌는.. 2022. 9. 23.
재경이 엄마 재경이 엄마 김길웅 칼럼니스트 김춘수 시인은 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다. ‘몸짓→꽃’의 이행은 심대한 변화다. 내 이름을 불러줬을 때 어떤 ‘관계’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 관계란 연인일 수도 있고, 구경적 정신의 경계, 이르고자 하는 형이상적 도달점, 예술가에겐 닿으려는 가장 아름다운 미학의 경지일 수도 있다. 그래서 ‘너는 나에게 나는 너애게 잊혀지지 않을 눈짓이 되고 싶다’고 했다. ‘눈짓’은 이상의 실현을 함축하는 상징적 함의다. 이름을 불러줘야 한다. 사람뿐이랴. 동식물은 물론 무정물도 고유의 이름을 갖고 있다. 잡풀·잡목이라 싸잡아 부르는 한낱 푸나무에게도 이름이 있는 것이 이상할.. 2022. 9. 16.
이 가을에 이 가을에 김길웅. 칼럼니스트 지난여름은 무척 더웠다. 긴긴 여름 하루종일 비 내린 날이 없었던 것 같다. 하늘에서 가마솥을 걸고 불을 때기라도 하는 듯 연일 한증막 같았다. 폭염주의보로 기상도엔 섬이 산딸기처럼 빨갰다. 작은 섬이 불타는 것 같았다. 낮엔 노상 34도를 오르내려 대구를 웃도는 땡볕더위, 밤엔 푹푹 찌는 열대야에 뒤척이며 밤잠을 설쳐야 했다. 육지는 기록적 폭우로 물난리였는데 이럴 수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무덥고 목마른 여름이었다. 지난 6월, 7월엔 참 비가 그리웠다. 덥다, 덥다만 입에 발리다 보니, 활기찬 여름의 왕성한 생명감마저 그만 눈에 나 버렸다. 그런 바람에 시종 투덜거리며 한철을 나고 말았잖은가. 하늘을 우러러 바라던 비는 끝내 흐지부지하고 지나갔다. 자연은 매정했다.. 2022. 9. 2.
건강과 글쓰기 건강과 글쓰기 김길웅 칼럼니스트 모든 것을 다 잃는다는 ‘건강을’ 그만 잃었다. 결정적이지는 않지만 그런 쪽으로 상당히 기울어 있어, ‘잃었다’는 완료시제를 쓰게 된다. 이태 전 초여름, 나갔다 들어오는데 갑자기 몸이 한쪽으로 쏠려 주체하기 힘들지 않은가. 아파트 경내에 들어온 때라 정원의 나무에 기대어 한참 몸의 균형이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전에 없던 일이라 당혹했다. 기분이 찝찝해 바로 신경과를 찾았더니, 뜻밖의 진단이 나왔지 않은가. 자기공명영상(MRI)을 촬영하더니, 의사가 ‘뇌경색’이라 했다. 뇌로 가는 혈관의 일부가 막혀 산소 공급이 차단돼 부분적으로 기관이 괴사하면서 기능이 떨어져 간다는 것. 심하면 반신마비나 뇌출혈이 올 수도 있다며, 의사는 바로 입원하라는 것이다. 골든아워를 놓치지.. 2022. 8.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