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보 김길웅 시인347 동면기(冬眠期) 동면기(冬眠期) 김길웅 칼럼니스트 하는 일을 지속 가능케 하려면 쉼이 필요하다. 오래 삶을 누리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쉬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싫증으로 효율이 오르지 않을 뿐 아니라 몸에도 빨간불이 켜진다. 이걸 조금 확대해석하면 장수를 누리기 위해서는 몸을 혹사하지 말아야 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일과 신체의 조화로운 질서와 관계 유지를 위해 의당 해야 할 것이 쉼의 실행이다. 여기엔 과감한 결단이 따라야 한다. 크고 작은 사정에 휩쓸려 미적거리거나, 미루어 안되는 것이 쉼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한데 놀라운 것은 사람이 해내지 못하는 이 쉼을 동식물이 해낸다는 극명한 사실이다. 도긴개긴 하지 않고 또 미적지근하게 질질 끌거나 하지 않고 명확히 이행하는 것이 우선 몇몇 동물의 겨울잠이라.. 2023. 1. 6. 연말연시와 수미상관 연말연시와 수미상관 김길웅 칼럼니스트 나이 들면서 전에 무심하던 것에 생각이 머무는 버릇이 생겼다. 별것 아닌 것에 사유의 빌미를 대는 식으로 영역을 넓히고 경계를 확장해 가는 그런 모양새다. 단조한 삶에 문양 하나 새기려는가. 결과가 반드시 있다. 그러면서 미소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눈을 번득이게 된다. 이제 저무는 인생길에 웬 일일신(日日新)을 꾀하랴만, 내가 정체되지 않으려 매진하는 것 같아 몸도 마음도 뼈대를 세워 응원에 나선다. 어려워도 멈추면 안되겠다는 심지(心志)를 돋우면 눈앞에 침침했던 기운마저 온데간데 가뭇없다. 모를 일이다. 12월, 마지막 달력 한 장 달랑 남겨놓고는 ‘그래도 한 달 서른 날, 아니 이달은 큰 달이니 31일이네.’ 했는데 주전부리로 땅콩 까먹듯 하다 보니, 이럴.. 2022. 12. 30. 추슬러야지 추슬러야지 김길웅 칼럼니스트 ‘추스르다’는 추어올려 다스린다는 말이다. 처진 상태에 흥을 불어넣으면, 전후를 갈라놓는 전환점이 된다. 이를테면 몸을 가누거나 일 생각 따위를 수습해 처리한다는 뜻이다. 지난 것에 매몰되지 않고 앞을 내다보는 미래지향적 에너지가 느껴지는 생기 띤 말이다. 겨울의 뜰은 생각지 못할 만큼 내실 있다. 매몰찬 바람 앞에 서성이는 나를 적잖이 놀라게 했다. 조금만 실눈을 하고 들여다보면 초목 군생이 겨울나기에 얼마나 매진하고 있는지, 그들의 마음자리를 짚을 수 있을 것이다. ‘추운 겨울에도 저것들은 원래 잘 견뎌내잖아.’ 그저 그럭저럭하겠지 하고 지나치는 건 생명에 대한 참 무성의한 관찰의 눈이다. 조금만 애정을 기울여 다가가면, 그들에게서 삶의 원초적인 몸짓과 진정 어린 표정을 .. 2022. 12. 23. 노년의 그림자 노년의 그림자 김길웅 칼럼니스트 2023년이 등단 30년째, 작가라는 이름을 달고 글을 쓰면서 한 세대의 능선을 넘어 온 셈이다. 수필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은 결핍 때문에 시까지 내 문학의 둘레로 끌어들였다. 냇물을 건너다 목이 말라 두 손으로 물 한 움큼 떠 벌컥벌컥 들이켜 마신 격이다. 그렇다고 갈증이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내게 적잖은 위안이 됐다. 문학의 영지(領地)를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도했다는 의미다. 산문과 운문을 등가(等價)의 자리에 놓고 그사이 작품집도 똑같이 8권씩 상재했다. 솔직히 얘기해 평가받으려는 것은 아니나, 개인적으로는 쉽지 않은 노역의 결실이었다. 수필에 다소의 파격을 입혀 산문집 1권도 곁들였고, 수필 작법의 저술도 하나 얹었다. 어찌 6,70권·100권의 작품집을 낸 .. 2022. 12. 16. 착한 민들레의 약속 착한 민들레의 약속 김길웅 칼럼니스트 민들레는 흔히 볼 수 있는 풀이다.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꽃대 몇 개를 쑥 올린다. 푸르죽죽한 톱니 모양의 잎새와 눈에 확 들어오는 샛노란 황금색 꽃이 인상적이다. 꽃이 지고 나면 솜털 같은 씨앗들이 바람 타고 날아 널리 퍼진다. 향기가 있다. 꽤 구수하지만 꼬릿꼬릿해 탐할 정도는 아니다. 민들레에서 놀라운 것은 강인한 번식력과 질긴 생명력이다. 강인하다, 질기다는 형용사론 표현이 모자라게 어마어마하다. 몸체는 튼튼하고 땅속으로 깊이 뿌리 박아 뽑기가 어렵다. 파고 보면 굵직한 뿌리가 개체의 삶을 온전히 감당해 내고 있음을 실감한다. 제초제에도 잘 죽지 않은 맹렬한 종이다. 오가는 행인의 발길에 밟히는 정도로는 끄떡도 없다. 뿌리를 몇 동강 내어도 싹이 트는 풀이니,.. 2022. 12. 9. 배구 코트에 몰고 온 태풍 배구 코트에 몰고 온 태풍 김길웅 칼럼니스트 프로배구는 2022~2023시즌 V리그가 한창이다. 도쿄올림픽의 영웅이자 세계적 슈퍼스타 김연경이 코트에 태풍을 몰고 왔다. 그것도 몇 년 만의, 친정팀 흥국생명으로의 복귀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그가 돌아와 선 배구 경기장마다 연일 관중들로 북적대고 있다. 흥국생명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좌석이 만원인 것은 물론, TV 시청률까지 치고 오른다. 프로리그의 흥행지표인 관중과 시청률에서 엄청난 존재를 입증하고 있는 김연경. 김 선수를 배구의 여제라 부른다. 황제, 갓이라고도 한다. 게다가 식빵 언니라고도 한다. 그냥 편안해 동네 언니 같아 푸근한 얼굴에다 친밀감까지 주는 선수다. 그는 배구 선수로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량을 갖춘 완성형 공격수다. 공격만이 아니.. 2022. 12. 2. 교언영색(巧言令色) 교언영색(巧言令色) 김길웅 칼럼니스트 논어 학이편과 소학의 해로운 벗 셋 중 하나로 언급했다.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낯빛’이란 뜻이다. 논어는 동양의 고전 중 가장 많이 읽혀 왔고 지금도 많이 읽히고 있다. 그러나 공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언행을 정리했지만, 우아하게 잘 정돈된 책이 아니다. 스승이 농담 삼거나 실수한 것까지 실렸는가 하면, 혼잣말이나 제자들끼리 주고받던 얘기도 섞여 있다. 사실, 논어를 절대 진리인 양 달달 외워 봤자 시대와 괴리된 부분이 적지 않다. 말도 잘할 필요가 있거니와 겉모습 또한 비즈니스 관계상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므로 소홀히 해선 안된다. 이 말을 입에 올리며 분명히 할 것은, 말하고 꾸미는 자의 마음자리를 제대로 짚는 일이다. 쉽지 않을 것이나, 이 부분이 핵심이므.. 2022. 11. 25. 참 아름답습니다 참 아름답습니다 김길웅 칼럼니스트 아파트 뜰로 낙엽이 흩날리다 구른다. 벚나무 광장이 낙엽으로 덮인데다, 바람에 날리는 잎으로 난장이다. 가을 분위기가 절정을 치고 있다. 언젠 어떤가. 철이 오면 소스리바람이 제 차례라는 듯 몫을 한다고 기세등등이니. 이쯤에서, 청소 아줌마들이 밤새 쌓인 낙엽을 쓸다 손을 놓아 버린 모양이다. 툭툭 낙엽이 진다. 늙은 벚나무 숲에서 지는 낙엽이다. 쓸어 봤자 말짱 도로다. 돌아서면 쓴 자리로 또 지는 낙엽을 감당할 재간이 있겠는가. 아파트 뜰에 며칠쯤 낙엽이 쌓여 있으면 어떤가. 자체로 가을의 정취인 것을. 그대로 놔두면 주민들이 가을의 뜰을 거니는 빌미가 될 것인데. ‘낙화도 꽃인데 쓸어 무엇하리오.’라 한 옛 시처럼, 낙엽은 잎이 아니랴 쓸어 무엇 할 것인가. 가을 .. 2022. 11. 18. 김길웅 작가 제2회 문학秀문학상 대상 수상 김길웅 작가 제2회 문학秀문학상 대상 수상 김형미 기자 제8수필집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력’으로 김길웅 작가의 제8수필집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력’이 최근 제2회 문학秀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김 작가는 수상 소감에서 “영예의 상을 받아 가슴이 쿵쾅거리고, 아이가 된 것 같다”며, “시와 수필, 그리고 문학 평론 등 여러 장르를 한 몸에 짊어지고 독자 여러분과 자주 만나기 위해 더욱 열심히 글을 써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종 시인은 작품평에서 “산문 문장이 시적인 수사학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작품 전체의 의미로 나아가고 있으며, 문학으로서의 가치와 풍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차리게 하는 문장”이라고 극찬했다. 김 수필가는 1993년 시, 수필로 등단했고, 문학평론가이자 본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 2022. 11. 11. 은수저 은수저 김길웅 칼럼니스트 갑자기 식탁에 은수저가 놓였다. 아내가 친구에게서 결혼 선물로 받은 것인데, 사연이 있다. 초등학교 동창생으로 중학교 1학년 때 전학하면서 헤어진 친구 이름이 숟가락에 뚜렷이 새겨 있다. 각별하게 다가오는 이름, ‘규운’. 한국전쟁 직후 가족이 월남해 제주까지 내려오면서 맺게 된 인연이다. 어릴 때지만, 당시 부모가 대학을 나온 지식인들이었다고 아내가 기억하고 있다. 피란민으로 남의 집에 살면서도 친구네 가족은 뭔가 달랐다 한다. 외양만으로도 지적인 언행이며 풍모였을 테다. 아내와는 절친이었는데, 다른 애들과는 불편했던 모양이다. 토박이가 아닌데다 더욱이 북한에서 피란 온 아이라 말까지 달라 섞이기 힘들었을 것이고, 더욱이 이곳 분위기에 익숙지 못해 나무람을 받았을 법하다. 아내.. 2022. 11. 11.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3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