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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 김길웅 시인346

칼럼을 쓰면서 칼럼을 쓰면서 김길웅 칼럼니스트 ‘해연풍’으로 발붙여 ‘안경 너머 세상’에 이르기까지 근 25년, 사반세기를 건너왔다. 「제주일보」와의 인연이 그렇게 깊다. 더욱이 집필 중인 ‘안경 너머~’는 제목 그대로 사회, 문화, 시사, 풍속을 아우르며 ‘세상’을 소재로 망라한다는 야멸친 뜻이 있었다. 주 1회가 쌓여 370회를 넘어섰으니 감회 유별하다. 진작의 포부를 얼마만큼 챙겼는지는 필자 자신도 눈앞이 물안개로 어둑새벽이다. 가물거려 안 보이고 엉거주춤 수그러들어 등마저 구부정하다. 실토하거니와, 시작하던 때나 지금이나 독자가 두렵다. 구상에서 퇴고까지 시종 머리에 이고 등에 진 짐에 부대낀다. 좋은 글의 절반이 퇴고의 몫이라 해 오는 터라 몇 차례 끙끙 대다 담당 기자에게 보낸 뒤에도 낙숫물처럼 눈앞으로 떨.. 2023. 5. 26.
‘영웅’에 전율하다 ‘영웅’에 전율하다 김길웅 칼럼니스트 2020년 6월 5일 본란에 를 썼었다. 3년 전 일이다. 시간은 흘렀지만 ‘영웅’은 그대로다. 나이는 들어가도 열아홉 청년 같다. 눈빛마저 해맑고 앳되다.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지지 않았으니 하릴없이 불변이다. 노래 이전에 이타적 성정이 남을 배려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아픈 자를 노래로 어루만지고 신음하는 이를 가슴에 품는다. 세상 다 변해도 임영웅의 항상심은 불변이다. 어제가 오늘로, 오늘이 내일로 여여할 뿐이다. 편의점에 아르바이트하던 시절, 흥얼거리는 노래를 들으며 졸지에 관객이 돼버렸다는 어느 손님. 무아지경에 빠져 야단칠 것도 잊고 박수를 쳤다지 않은가. 이건 진정한 실화이고 임영웅의 민낯이다. 장차 임영웅이 자서전을 쓴다면 제1과 제1장에 나올 이.. 2023. 5. 19.
5월에 생각나는 숫자, 98 5월에 생각나는 숫자, 98 김길웅 칼럼니스트 숫자를 기억하는 습관이 있다. 학생 때 수학 과목을 싫어했던 푼수로 이가 맞지 않는 얘긴데, 모를 일이다. 전화번호에 집중했는데 이젠 느슨해졌다. 핸드폰이 있잖은가. 최근 기록을 보고 누르면 된다. 머리에 넣어 뇌까지 수고를 끼칠 일이 아니다. 숫자 따위에 집착해 버둥거릴 것 없이 편하고 한가롭게 사는 게 보편적 방식이 된 세상이다. 한데도 그쪽에 익숙해선지 나는 숫자에 꽤 민감한 편이다. 습관은 달라붙으면 떼어지지 않아 제2의 천성이 돼 버린곤 한다. 특히 조상의 기일을 암기해 두면 먼 데 나가 있을 때도 좋다. 젊었을 때는 이런 자그만 일이 아내에게 신뢰를 얻게 유효했다. 무슨 소소한 일에도 딴은 연유가 있는 거라 뒤적이다 보면 생각이 닿는다. 70년대 .. 2023. 5. 14.
화두(話頭) 화두(話頭) 김길웅 칼럼니스트 한때, 시골 하늘 아래서 자란 새는 불만으로 투덜거렸다. 실은 막연한 헛바람 같은 것이었지만, 새는 몹시 부대꼈다. 무엇에 씌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만년설로 뒤덮인 세상을 굽어보려 더 높이 날고 싶고, 기름진 먹이를 얻기 위해 또 더 호화로운 옷으로 감싸려 큰 숲을 찾아 더 멀리 날고 싶었다. 호의호식에 눈이 어두웠다. 하지만 그런 호사는 쉽사리 이뤄지지 않았다. 채워지지 않은 욕망은 우심한 방황을 불렀고, 갈수록 가파른 갈등의 시간에 목이 탔디. 주변과의 관계까지 엉성해지면서 늘 혼자 외로웠다. 날로 헛 날갯짓이 쌓이면서 견고해 가는 고독의 울안에 갇혀 삶의 의미마저 흔들려 갔다. 그렇게 욕망의 노예가 된 한 마리의 새 앞으로 나부끼며 오는 깃발이 있었다. 화두(話頭)였다.. 2023. 4. 28.
모천회귀 모천회귀 김길웅 칼럼니스트 1. 은빛 연어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강을 향해 폭포와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오른다. 역주행이다. 힘든 여정을 겪은 연어일수록 강하고 튼튼한 알을 낳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동물은 환경에 따라 진화하기 때문이다. 모천 회귀하는 물고기, 눈부신 은빛 연어. 바다에서 자란 연어가 알을 낳기 위해 태어난 강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은 하도 멀고 험난한 역정이다. 회귀율이 0.4%, 100마리 중 거의 다 죽고 네 마리만 살아돌아온다. 길목에 서서 연어가 당도하기를 기다리는 포획자가 있다. 굶주린 곰들. 일격에 낚아채 팔딱이는 날것을 무자비하게 먹어 삼킨다. 모천 회귀하려던 연어의 꿈이 참담하게 무너지는 것은 그야말로 삽시다. 알에서 부화한 뒤 일 년을 탯줄을 끊은 강에서 살다가 바다로 갔.. 2023. 4. 21.
4월, 아파트 뜰에서 4월, 아파트 뜰에서 김길웅 칼럼니스트 대엿새 비와 미세먼지 나쁨으로 갇혀 있었다. 코로나가 방구석을 지키는 데 내성을 키운 꼴이다. 마스크가 해제됐는데도 외려 써야 한다는 의식이 고개를 쳐드니 모를 일이다. 딴엔 쓰고 나서는 게 편하게끔 된 것이라, 이상한 증후군이다. 이런저런 구실을 달다 며칠 만에 4월의 아파트 뜰에 내렸다. 발을 놓는 순간,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요 며칠 어간, 바깥세상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눈부시게 숲으로 덮어 하늘을 가렸던 벚꽃들이 가뭇없다. 다들 어디로 간 걸까. 감쪽같은 변화에 혀를 찬다. 꽃의 자리로 어느새 연둣빛 잎들이 돋아나 실바람에 하늘거리고 있지 않은가. 눈이 이르는 곳마다 연둣빛 고운 이파리들. 벚나무, 백목련, 단풍나무, 팽나무, 때죽나무, 산수국…. 겨우내.. 2023. 4. 14.
삼금수(三禁樹) 삼금수(三禁樹) 제주일보 승인 2023.04.06 김길웅 칼럼니스트 조선 시대에 제주도(濟州島)는 육지와 격리된 절해고도로 최적의 유배지였다. 해로 900리다. 그러니 중죄를 저지르거나 큰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면 유배되지 않았다. 수월하지 않은 뱃길. 풍파만리 파도 때문에 조야(朝野)가 다 두려워했다. 유배객이 탄 배가 전라도 해남·강진·영암 등지에서 출발해 보길도나 소안도 또는 진도를 거쳐 제주목 가까이 화북포나 조천포에 도착해 인계됐다. 조선 시대에 300명에 이르는 고관 대작이 제주도에 유배돼 한 많은 세월을 보냈다. 인조반정으로 폐위당한 광해군과 비운의 죽임을 당한 소현세자의 세 아들과 손자가 그들이다. 보우 스님, 정 온, 송시열, 김정희, 최익현 그리고 한말의 거물 정객 김윤식과 박영효.. 2023. 4. 7.
미당(未堂) 미당(未堂) 제주일보 승인 2023.03.30 김길웅 칼럼니스트 한국 현대시의 계보 하면, 으레 소월에 이어 목월과 미당을 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한 시대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시대를 풍미했던 시인들이다. 목월의 2023. 3. 31.
감귤 두 알 감귤 두 알 제주일보 승인 2023.03.23 김길웅 칼럼니스트 낙엽은 초록을 그리워하는가. 가을의 뜰에 서면 봄과 여름이 그립다. 어느새 그 시절로 침몰해 간다. 시작하던 날의 희망의 노래가 생각나 가슴이 울렁거리고, 그때 펼치던 꿈 하나에도 가슴 부풀며 사유가 과거로 흐른다. 사유의 역주행이다. 먼 데로 흐르는 구름을 타고 흐르며 과거를 오늘에 불러낸다. 낙엽이 분분한 날, 아내와 함께 아파트 뜰을 거닐디 벚나무숲 아래 앉았다. 쏴아. 계절의 숨소리가 소스리바람을 부르는가. 숲 전체가 너울치더니 이내 중심을 잡았는지 갑자기 멈춘다. 자그만 동요도 없다. 바람에 흔들리다 균형을 되찾는 절묘한 수습이 놀랍다. 벚나무 광장이라 명명한 이 자리는 이곳 교통의 요충이다. 입구로 진입한 차량이 두 줄로 늘어선 .. 2023. 3. 24.
웃음에 대해 웃음에 대해 제주일보 승인 2023.03.16 김길웅 칼럼니스트 웃음에 대한 첫 기억은 초등학교 5학년 가을운동회 날이었던 것 같다. ‘물건찾기’가 진행됐는데, 내가 손에 집은 카드가 ‘고무신’이었다. 그땐 남녀 어른들이 대부분 신던 신발이다. “고무신” 하고 외쳤더니, 빙 둘러섰던 어른 한 분이 검정 고무신 한쪽을 벗어 앞으로 던져주는 게 아닌가. 나는 그것을 들고 젖 먹은 기운을 다해 뛰어 2등을 했다. ‘賞’ 자 붉은 도장이 찍혀진 학습장 두 권을 받았다. 얼마나 받고 싶던 상인가. 달리기를 못하던 나는 운동회 때마다 3등 안에 들지 못해 상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하도 기뻐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부끄러워 웃지 못해 참았다가 운동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서 몸을 흔들며 소리 내 웃었.. 2023.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