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보 김길웅 시인346 ‘동인脈’이 비탈에 서다니 ‘동인脈’이 비탈에 서다니 김길웅 칼럼니스트 지역 문단에 반듯한 수필 문학단체 하나 만들자 해 나섰다. 2007년 9인의 수필가가 한자리를 틀었다. 섬 서쪽 외딴 벌판에 있던 식당 ‘오름풍경’이 산실이었다. 제주에 비옥한 수필의 밭을 일궈 보자는 꿈이 있었다. 9명으로 회원을 제한한 것은 ‘10을 채워 완성을 바라는, 미완인 채 정예소수를 지향하자’는 당찬 의도였다. 거기 맞춰 가슴 울렁이는 낯선 표방을 내걸었다. 하나, ‘삶의 진실을 치열하게 탐구한다.’ 다른 하나, ‘脈이여, 뻗어라!’ 회원은 적었으나 우리 행보는 걸음걸음 지축에 닿았고, 양질의 좋은 수필을 쓰자는 창작에의 열망은 이글이글 도요 속처럼 타올랐다. 마주 앉아 이뤄지던 합평은 의례적 만남이 아닌, 수필을 공부하며 열띤 토론을 벌이던 학습.. 2023. 3. 10. 뿌리 생각 뿌리 생각 김길웅 칼럼니스트 나무나 풀에게 뿌리는 생명의 근원이다. 튼튼하고 굵은 줄기, 무성하게 돋아난 잎, 짙고 푸른 빛깔도 외양일 뿐 생명을 버텨내는 힘의 원천은 아니다. 옮겨 심어 보면 안다. 뿌리를 많이 다치면 끝장이다. 약은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지 나무에겐 백약이 무효다. 산을 오르면서 땅을 덮은 나무들의 뿌리에 놀란다. 땅속을 뻗다가 위로 솟아올라 얽히고설키면서 등산길을 험로로 만들어 놓았다. 문득, 송강의 「관동별곡」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송근을 베어 누워 풋잠을 얼른 드니, 꿈에 한 사람이 나에게 이른 말이, ‘바다 밖은 하늘이니 하늘 밖은 무엇인고.” 땅 위에 올라온 굵직한 소나무 뿌리를 베고 누워 산행의 흥취에 겨워하고 있다. 노송의 우람한 뿌리가 눈에 밟힐 듯하다. 저 뿌리가 나.. 2023. 3. 3. 감귤 인심 감귤 인심 김길웅 칼럼니스트 내가 귤을 처음 본 것은 어릴 때, 친족집 제삿날이었다. 부자로 사는 종갓집 제삿날. 제사상에 진설한 노랗고 큼직한, 그때 말로 나쓰미깡이 참 먹음직스러워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갔다. 언제면 파해 저걸 맛보나 했다. 하지만 미깡은 어르신들 떡 쟁반에만 올랐을 뿐, 아이들에겐 한 조각도 오르지 않았다.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알고 보니 이젠 재배도 않는 아주 신 놈이었다. 그렇게 감귤이 귀했다. 얼마 후, 서귀포에서 귤 재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뒤뜰에 심은 한 그루면 자식 대학을 보낸다고 ‘대학나무’란 신조어까지 나왔다. 그렇게 널리 알려진 감귤은 이후, 제주를 상징하는 과일로 부동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름만 행세한 게 아니다. 감귤 재배는 생존산업으로 제주인들의 삶의 .. 2023. 2. 24. 이웃사촌 이웃사촌 김길웅 칼럼니스트 며칠 전, 오랜만의 만남이 있었다. 30년을 이웃사촌으로 지냈던 분과의 해후에 만감이 교차했다. 취락 구조, 읍내 동산에 집을 지어 새 동네를 이룸에 한 축 끼었다. 낯설었지만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다. 버스로 시내와 20분 거리라 교통도 불편하지 않았다. 팍팍한 도시에서 한발 물러나 한적한 시골에서 살자던 내 취향에 딱히 맞아떨어졌다. 그곳서 좋은 인연을 만났다. 동네를 가로지르는 소방도로 하나 건넛집 K. 읍사무소 일용직 공무원인 그는 천성이 온후하고 순직한 사람이었다. 해방둥이로 세 살 연하인 그와 어느새 절친이 돼갔다. 술을 좋아해 간간이 집을 오가며 정을 섞어 도타운 사이로 허물없이 지냈다. 1만 평 감귤을 재배하는 독농이자 부농이었다. 가끔 아이들 교육에 관해 몇 .. 2023. 2. 17. 해토머리 해토머리 김길웅 칼럼니스트 겨우내 얼었던 흙이 풀리는 무렵이 해토머리다. ‘해토(解土)’와 ‘머리’의 합성어다. 봄의 첫머리라는 뜻이다. 흙이 녹으면 질펀하다. 땅이 질다고 ‘따지기’라고도 한다. 해빙기 같은 한자어에 갈음해 쓰면 좋은 순우리말이다. 가슴 두근거린다. 애타게 기다리던 봄이 산 내려 잰걸음으로 오고 있다. 예전엔 발이 한바탕 노고를 치르기도 했다. 따지기에 교실로 들어가려면 질퍽거리는 운동장을 가로질러야 했던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운동장이 엉망진창이었다. 흙이 신발에 묻어 범벅이 됐다. 고무신이 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요즘은 학교마다 잔디운동장이다, 세상이 바뀌었다. 상전벽해,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했다. 해토머리엔 돋아나는 새잎으로 천지에 푸른 기운이 왁자하다. 환절기.. 2023. 2. 10. 행복은 ‘관계’에 있다 행복은 ‘관계’에 있다 김길웅 칼럼니스트 법정의 무소유는 소유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다. 필요한 만큼만 소유함을 의미한다. 턱없이 가지려 욕심내지 말라는 것, 삶의 지침으로 탐심(貪心)하지 말라 함이다. 욕심은 맑은 정신을 흐리게 해 도업(道業)을 엇나가게 하는 근본이라는 진정한 목소리다. 울림이 크다. 하우스에서 쌈 채소를 재배하는 어느 귀농인은 채소의 맛을 시험하느라 갖가지 채소 잎들을 손으로 뜯어 우걱우걱 씹더니 맛있다면서 이런 행복이 없다 했다. 설설 침이 끓었다. 어느 부부는 너울 치는 바다 위에 배를 띄워 놓고 갓 잡아 올린 생선회를 초간장에 찍어 먹으며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바닷물이 배 위로 흩날리고 멀미로 주체하지 못할 것 같은데도 그들의 얼굴에 그늘이라곤 없다. 그런 삶 속에 시나브로 행복.. 2023. 2. 3. 제사상·차례상 제사상·차례상 김길웅 칼럼니스트 설 연휴에 해외여행 규모가 지난해보다 13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제례에서 탈주하려는 흐름이 점차 세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상전벽해라더니, 15년간 말없이 제사를 지내 온 아내에게 이젠 그 부담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다며, 제사를 그만하겠다고 나선 사람도 있다고 들리는 시절이다. 하지만 우리 생활에 뿌리 깊이 내린 전통적 풍속인데 하루아침에 그만둘 수 있느냐, 제사 의례가 사라지면 인적 관계망이 한꺼번에 무너지게 된다는 우려를 들어 반대하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친족이라는 혈연관계의 급격한 해체를 불러와 사회적 기반에 큰 균열이 올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찬반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그 중간에서 어정쩡하게 흔들리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논란의 원인이 제.. 2023. 1. 27. 번지다 번지다 김길웅 칼럼니스트 TV에서 효자가 등장하는 프로를 보았다. 사흘을 추적이는 겨울비에 스산하던 참이었다. ‘계룡산에 울려 퍼지는 효심, 치매 노모를 보살피는 백발 아들’, 화소가 마음을 붙잡아 속으로 침몰했다. ‘저런 효자도 있구나.’ 황당한 허구보다 가슴 치는 사실에 끌려들었다. 머리 허연 63세 아들이 처자를 서울에 두고 계룡산에 내려와 어머니 집에서 노모를 모시며 효도하는 사연. 어머니를 섬기는 언행이 하도 절실해 정신줄을 끌어당기는 게 아닌가. 그의 효행은 상상을 넘는 것이었다. 거동은커녕 혼자 앉지도 못하는 어른을 안고 업고 온갖 짓과 말로 어르며 치매를 치유하려 안간힘을 쓴다. 어머니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이마를 맞대, 잃어버린 옛 기억을 되찾게 하려 애쓰는 모습이 애처롭다. 처음부터.. 2023. 1. 20. 책 한 권 보냈는데 책 한 권 보냈는데 김길웅 칼럼니스트 사노라면 뜻밖에 가슴 뛰는 일을 만나는 수가 적지 않다. 사람의 일이란 것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실마리들로 엮여 있다는 얘기가 되는가. 따라서 알락달락하고 크고 작은 문양을 아로새기기도 하니, 그래 저래 인간사는 아름다운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디지털시대로 급진하면서 인간적인 교감이 조금씩 파괴돼 가고 있는 것은 쓸쓸함을 너머 커다란 손실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아쉬운 대목이라 시시때때 그런 경우를 만나면 가시처럼 마음에 걸리기도 한다. 일례로, 해가 바뀔 무렵이면, 성탄절서부터 새해에 이르는 ‘축하’의 메시지가 넘쳐났다.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가 바로 그것이다. 축하의 대상이 성탄과 새해다. 사람들은 종교를 초월해 축하의.. 2023. 1. 13. 동면기(冬眠期) 동면기(冬眠期) 김길웅 칼럼니스트 하는 일을 지속 가능케 하려면 쉼이 필요하다. 오래 삶을 누리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쉬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싫증으로 효율이 오르지 않을 뿐 아니라 몸에도 빨간불이 켜진다. 이걸 조금 확대해석하면 장수를 누리기 위해서는 몸을 혹사하지 말아야 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일과 신체의 조화로운 질서와 관계 유지를 위해 의당 해야 할 것이 쉼의 실행이다. 여기엔 과감한 결단이 따라야 한다. 크고 작은 사정에 휩쓸려 미적거리거나, 미루어 안되는 것이 쉼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한데 놀라운 것은 사람이 해내지 못하는 이 쉼을 동식물이 해낸다는 극명한 사실이다. 도긴개긴 하지 않고 또 미적지근하게 질질 끌거나 하지 않고 명확히 이행하는 것이 우선 몇몇 동물의 겨울잠이라.. 2023. 1. 6. 이전 1 ··· 7 8 9 10 11 12 13 ··· 3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