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보 김길웅 시인314

길의 시작, 그 탐색(2)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에 머무는 눈 길의 시작, 그 탐색(2)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에 머무는 눈 제주일보 김길웅, 칼럼니스트 로버트 프로스트는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1961)에서 시를 낭송해 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촉발한 시인이자 시 낭송가다. 그는 농장에서 청바지를 바람에 일하다 워커 창이나 사과 궤짝에다 영감을 메모했다 한다. 사과 따기, 돌담, 울타리, 시골길 등 소박한 소재를 명쾌하게 쉬운 평어로 시를 썼다. 그의 시는 단순해 보이면서 심오한 뜻을 지녔다. 그만큼 인유(引喩)‧생략 등 수사를 거의 사용치 않았다. 그의 시는 이해하기 쉽고 엘리엇이나 파운드의 시는 난해하다. ‘그의 시가 이해되지 않으면 프로스트의 잘못, 엘리엇‧파운드 시가 이해되지 않으면 독자의 잘못’이라 할 정도다. 그만큼 프로스트가 독자들을 위한 시인이 .. 2023. 12. 8.
'가려뽑은 순우리말 사전' 나오다 '가려뽑은 순우리말 사전' 나오다 제주일보 승인 김길웅, 칼럼니스트 전 오현고 고영천 교장 선생이 ‘가려 뽑은 순우리말 사전’을 엮기 시작한 게 2017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그때 ‘펴내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작년 5월 어느 날, 큰 손녀가 카톡으로 사진 두 장을 보내왔다. 한 장은 ‘제주어말하기’ 동상을 받은 상장이고, 또 한 장은 제38회 장애인의 날을 맞이해 실시한 교내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한 백일장’에서 금상을 받은 상장이었다. 일전에 ‘개구리’를 제주어로 설명해 주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이후로 제주어에 관심을 가져서인지 ‘제주어말하기대회’에 참가한 사실만으로도 대견스럽고 흐뭇하였다. 따라서 책 읽기를 즐겨하고 글쓰기에도 소질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큰 손녀에게 약속을 하였다... 2023. 12. 1.
길의 시작, 그 탐색 (1)골목에서 고샅으로 나아가다 길의 시작, 그 탐색 (1)골목에서 고샅으로 나아가다 제주일보 김길웅, 칼럼니스트 집 어귀에 어떻게 다가갔을까. 잠의 늪에서 빠져나와 댓 살쯤, 여섯 살 손위 누이 등에 업혔을 것이다. 팽나무 아래는 뜨거운 여름 볕에도 늘 바람이 설렁설렁 서늘했다. 무더위에 그늘처럼 좋은 세상은 없을 것 같았다. 누이가 업고 그늘에서 땀을 들이던 아이가 더우면 시원한 그늘을 찾느라, 해만 뜨면 툇마루에 내려 누이에게 나가자 보챘을 것이다. 이 짐작은 예닐곱 살이 되면서 분명해졌다, 긴긴 여름날의 적막을 더욱 돋우던 매미의 떼창에 귀청이 찢어질 것 같아도, 바람 살랑이는 그 곳 그늘은 딴 세상이었다. 그러면서 모르는 사이 내 눈길이 골목길을 향하게 됐다. 밖으로 한 발짝 내디디면 어떤 길이 열릴까. 호기심에 설레던 나는 .. 2023. 11. 24.
손주가 사들고 온 점심 손주가 사들고 온 점심 제주일보 승인 2023.11.16 김길웅, 칼럼니스트 재수하는 손주가 우리하고 15분 거리에 산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읜 아이다. 혼자 챙겨 먹는 게 얼마나 힘들까 싶어. 밥이 넘어가지 않을 때는 왜 없으랴. 체력이 떨어질세라 간간이 불러 영양 보충을 해주곤 한다. 먹성이 나를 빼닮아서인지, 특히 육식을 좋아한다. 배불리 먹는데도 배가 나오지 않아 나를 ‘도둑배’라 하던 젊은 시절이 생각난다. 녀석이 와 맛있게 먹는 걸 옆에서 보기만 해도 배가 동산만큼 불러온다. 그게 혈육인가. 오늘은 아내가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과 콧바람이나 쐬자며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다. 제 할머니가 집에 없는데 혹여 집에 오면 대접(?)할 손이 없어 녀석이 공치게 된다. 수능시험이 딱 엿새 남았다. 집에 왔다.. 2023. 11. 17.
무턱대고 무턱대고 제주일보 2023.11.09 김길웅의 안경 너머 세상 무슨 일을 다짜고짜로 하는 것, 헤아리지 않고 마구 하는 것을 ‘무턱대고’라 한다. 무작정 한다는 것이니, 그래선 일의 성패는 정해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젊은 시절에 앞만 보고 달려들던 생각이 난다. 용기의 문제가 아니다. 서둘러 덤벙거리는 모습이 불안해 처음부터 믿음이 가지 않음은 말할 것도 없다. 50대에 문학상 하나를 받은 길사에 친지에게서 축하 화분 하나를 받았다. 축복의 메시지, ‘행복이 날아든다’는 호접란이었다. 마흔 송이가 활짝 만개해 왁자지껄했었다. 호접란은 나와는 처음 겪는 서먹한 사이였다. 거실 창가에 두었더니, 흰나비들이 떼지어 날갯짓하는 바람에 그 해 가을 한 철, 눈이 마냥 호사했다. 헌데 그렇게 현란하던 난 꽃들이 .. 2023. 11. 10.
빈 자리 빈 자리 제주일보 김길웅의 안경 너머 세상 연전연패, 낯을 들 수 없는 패배의 연속이었다. 참사다. 국내에 중계하지 않았으니 배구 팬들이 얼마나 실망했을 것인가. 올림픽에서 주최국 일본을 8강에서 당당히 물리쳤던 기억이 생생한데, 차라리 안 보는 편이 나았을지 모른다. 사실 올림픽을 끝으로 월드 클래스 김연경 선수가 국가 대표를 내려놓으면서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아 우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추락할 줄 누가 알았으랴. 얼마 뒤 이어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우리 팀의 나약한 실상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끝내 무명의 베트남에 깨어지고 북한에마저 쫓기다 세트를 내주고 가까스로 굴욕을 면하면서 네팔에 이어 2승째를 챙겼던가. 그 이상은 앞으로 한 발도 떼어놓지 못한 채 주저앉지 않았잖은가. .. 2023. 10. 27.
초심(初心) 초심(初心) 제주일보 승인 2023.10.19 김길웅, 칼럼니스트 처음 먹은 마음을 초심이라고 한다. 반드시 지키겠다는 결지(決志)가 결의를 넘어 숭고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대개는 그렇다. 처음엔 부지런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해이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나중 삼가시기를 항상 처음처럼 하십시오.” 명재상 한명회가 죽기 전에 성종 대왕에게 남긴 말이다. 초심을 잃어선 안된다는 마지막 충언이었다. 부연하거니와, 어떤 일을 시작하면서 애초에 지니고 있던 마음, 처음에 간직했던 순수한 의도와 품었던 마음가짐이 초심이다. 그러나 실제로 실행엔 만만찮은 어려움을 만난다. 현실의 벽과 난관에 마주치면서 달라진다. 그 달라짐이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인 방향으로 기울 때 ‘그 사람, 초심을 잃었다.’.. 2023. 10. 20.
극본이 없었다 극본이 없었다 김길웅, 칼럼니스트 인생을 한 편의 드라마라 한다. 은유다. 산다는 게 호락호락한가. 적절한 빗댐이다. 오늘 당장 눈앞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으니 하는 말일 테다. 내 인생을 보다 극적으로 전개시키기 위해, 혹은 변환시키기 위해 사건을 끌어들이고 유효적절한 화소를 엮어 넣고, 군데군데 반전의 고비를 배치해가며 짜 맞춘다 해도 드라마라 하긴 쉽잖다. 그건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보려는 한낱 꿈같은 욕망일 뿐, 삶 가운데 부대끼는 현실은 말 그대로 폭풍의 바다다. 두 다리로 발 디뎌 세우고 선 육지가 몇 십 억 인구를 버텨낼 정도로 튼실한 대지의 기반이라 하나, 집 더미 같은 파도보다 더 높은 게 이곳 세상의 파도, 세파다. 그것을 넘으며 짊어져야 하는 게 우리가 겪고 있는 인생이라는 과.. 2023. 10. 18.
연동 동장님께 아룁니다 연동 동장님께 아룁니다 김길웅, 칼럼니스트 「출구도 퇴로도 없다. 애초 선택되지 않았다. 선 자리에 버텨 있을 뿐, 지(地)의 이(利)가 있을 턱이 없다. 바람도 지레 저를 위한 마련이 없는 걸 앎인지 그냥 지나간다. 자동차 소음에 새의 내왕도 뜸한 자락. 연동으로 이사와 이곳 사정에 어둡고 낯선 공기가 서먹해 산책에 나섰다. 한화가 아파트를 짓는다고 판을 벌인 길모퉁이를 돌아나온다. 순박한 섬사람들은 큰손이 벌인 건설 현장에서 날품팔이로 하루를 걷어내는가. 자재를 들어 올리다 우뚝 공중에 멈춘 대형 철탑이 흉물스럽다. 서른 해를 눌러산 읍내에선 본 적이 없는 풍경이다. 맥 풀린 다리가 작은 숲 난간에 몸을 기대 세우는데, 눈앞 한 그루 소나무에 움찔 놀란다. 오싹하게 주위를 압도하는 저 위의(威儀). .. 2023. 10. 6.
아, 창간 78주년! 아, 창간 78주년! 김길웅, 칼럼니스트 ‘제주일보, 본명이다.’ 뺏겼던 그 이름을 되찾았다. 축하한다. 들꽃에도 이름이 있다. 신문도 이름이 있다. 이름 곧 존재다. 존재의 또 다른 얼굴이 이름이다. 이름이 있어 생명으로 존귀하다.(2020년 7월 15일. 제주일보 재발행에 즈음하여, ‘뺏겼던 그 이름 되찾다’ 중-김길웅) 3년 전 제주일보 스크랩을 꺼내 보게 된다. 얽히고설켜 얼마나 갈등했던가. 제주언론사에 남을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濟州新聞→제주일보→제주新보→제주일보’. 제주일보가 거쳐 온 이름들이다. 외딴 벌판의 들풀에도 이름이 있는데, 제주일보는 이름을 뗐다 붙였다 했다. 심지어는 한글에 한자 ‘新’ 자가 섞인 야릇한 이름도 있었다. 이 나라에 없는 국한문혼용체 ‘제주新보. 그냥 이름들이 아니.. 2023. 9.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