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라는 메커니즘
김길웅, 칼럼니스트
아파트는 인간이 개발해 낸 주거 양식의 최상급일 것이다.
땅 위에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고층빌딩이 창출해 낸 가성비는
그 극한에 이를 테다. 손바닥만 한 땅에 50여 층을 올려 땅의
효율을 극대화했다. 과학의 결과물인지 건축술의 성과인지 모르나,
아파트 허리를 지나는 구름을 보며 경탄하게 된다.
흙에 돌멩이를 얹어가며 벽을 쌓아 한 칸짜리 초가집을 짓고
대여섯 가족이 발 막아 살던 우리 선인들이 오늘의 아파트를
봤다면 눈앞이 아뜩해 정신을 가누지 못하리라.
그것도 대처에선 여기저기 단지로 대군락을 이뤘지 않은가.
1, 2층 단독주택과 고층 아파트들이 수직 수평의 교집합을
이룬 도시의 풍경이 경이롭게 다가온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봐도
높고 낮은 건물들의 조화는 산업화 이후 우리의 눈부신 발전상을
그 실체로 대하는 것 같아 감기던 눈을 다시 뜨며 바라보게 된다.
읍내에 살다 시내로 거처를 옮겨 5년째다.
그 어간, 도심에 있는 아파트에 살며, 이런저런 낯선 일들을 겪으면서
살아 유별난 재밋거리도 적지 않다. 빼놓을 수 없는 소소한 일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면서 일어난다.
엘리베이터는 아파트의 대문이면서 통로다. 층층이 가호마다 멈추고
필요할 때 버튼을 누르면 오르고 내린다. 반복하다 보면 눈이 마주쳐
인사를 나누게 되는 게 사람이다. 서로 웃으며 목례를 주고받는
사람이 늘어 간다.
엘리베이터는 아파트의 상하좌우로 난 도로다.
5층 빌라에도 엘리베이터는 필수다. 장바구니를 들고 계단을 오르는
건 형벌이다. 한데 우리 아파트에 뜬금없이 공고가 나붙었다.
각 동별로 기간이 정해져 엘리베이터를 바꾸는 교체 공사를 한단다.
사용 시한이 다 됐다는 얘기다. 긴요한 일이다.
문제는 노인 둘이 사는 우리로선 난처하겠다는 생각이 빛의 속도로
달려든다. 우리는 15층 라인 13층이다. 교체 기간은 40여 일.
긴 시간이다. 아내는 무릎관절로, 나는 지병을 안고 살아 걸음이
불편해 평지도 아슬아슬하다. 특히 계단을 내리는 것은 큰 사고를
자초하는 일이다.
의식주 중 먹는 일이 문제다.
그렇다고 방 한 칸 얻고 나가 있기도 그렇다. 돈도 없지만, 끼니를
해결하려면 도구와 식재료가 따라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한다.
장고 끝에 눌러앉기로 작정했다. 꼼짝없이 안에 갇혀 살자 한 것이다.
나잇값 하느라 이를 깨물어 시간 속으로 진입했다.
15일째다. 흙을 밟아보지 못한 채 베란다 창으로 한라산을 보고,
눈 아래 녹음이 짙어 가는 울창한 숲을 굽어보며 무료함을 달랜다.
살림꾼 아내가 어련했겠는가. 먹거리도 대충 들여 재어놨을 것이다.
갇혀 살아 별안간 입맛이 당겼는지, 오늘 아내가 족발이 생각난다며,
길 건너 단골 마트에 주문배달을 시킨다.
염치 불고, 눈 딱 감기로 작정했겠다.
미안하니 한두 가지 더 얹는 눈치다. 바깥에서 들어온 음식이라 입안에
침부터 끓는다. 팔자에 있는지, 별스러운 체험에 절로 웃음이 난다.
사노라니 이럴 수도 있구나 싶다.
인생 말년에야 과거가 지워져 가는
내 인생 노트에 ‘엘리베이터’란 메커니즘의 무늬 하나 그려 넣는다.
새 엘리베이터가 기다려진다.
동보 김길웅 시인
아파트라는 메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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