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보 김길웅 시인346 고구마 고구마 김길웅, 칼럼니스트 ⑴…텃밭에 씨 고구마 심어 두둑 북돋우고, 해 묵힌 오줌 퍼다 뿌려주면 유월엔 한세상으로 우거졌다, 두 마장 걸어 내 눈대중에 가을운동회 날 달리기 50m 길이쯤 돼 보이던 사래 긴 밭을, 쟁기로 갈아엎으면 이랑을 내어 흙에 두엄 고루 섞어 밑거름을 깔았다. 어머니와 누나가 도막 낸 줄기를 등에 지고 날라, 밭에다 담상담상 꽂아가며 흙을 덮씌웠다. 때맞춰 비가 오신다. 대지를 적시는 젖줄 같은 단비다. 한여름 불볕 맞은 호박잎보다 더 늘어졌던 가녀린 것들이 장맛비에 파랗게 살아났다. 우리 어머니 함박웃음 터트렸던 연유를 한참 후에야 알았다. ⑵…문명을 능가하는 것이 있었다. 가난 속에 흙이 키워 내는 놀라운 생명성, 마침 우기라서 한철을 비가 넉넉히 내리면 그 .. 2024. 10. 25. 맹탕 맹탕 김길웅, 칼럼니스트 국처럼 펄펄 끓인 음식을 ‘탕(湯)’이라 한다. 갈비탕, 곰탕 등… 많다. 또 ‘별주부전에는 자라탕이 나온다. 개식용종식과 함께 보신탕은 법이 막아 나섰다. 반려견이 있는데 한쪽에서 음식으로 즐겨 먹는 건 사리에 맞잖다. 극복해야 할 모순이었다. 목엣 가시처럼 걸려 있던 걸 빼내 홀가분하다. 삼키려면 거꾸로 살에 박혀 드는 게 가시 아닌가. 서민들이 즐기는 매운탕이 있고, 손쉽게 식탁에 오르는 감자탕도 있다. 손맛이 뛰어나 팔도에 별미가 넘쳐나는 민족이다. 우리 음식치고 맹물같이 싱거운 국은 없다. 한데 탕에 맹물처럼 아주 싱거운 맹탕이 있다. 내용이 없으니 맹탕이다. 하는 짓이 옹골차지 못하고 싱거운 사람을 빗대어 ‘맹탕’이라 일컫기도 한다. 그런 자가 일을.. 2024. 10. 18. 가장 아름다운 낱말 가장 아름다운 낱말 김길웅, 칼럼니스트 사랑의 손, 사랑의 눈빛, 사랑의 마음. 사람 사이에는 사랑이 강물처럼 흘러야 한다. 박애니 자비니 하는 종교적 키워드도 사랑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들, 어둠과 고통 속에 갇혀 있는 사랑이 모자란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눠주는 손길, 인간 구원의 빛이 종교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 사랑 아닌가. 활활 타오르는 젊은 연인 사이의 사랑만 사랑 아니다. 언 손을 잡아주며 온기를 전하는 것이 사랑이고, 쇳덩이처럼 차고 굳은 가슴을 훈훈히 데워주는 훈김이 사랑에서 나온다. 사랑은 인정이 스미는 따스한 에너지다. 장애인에게 스며드는 마음처럼 애틋하고 인간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저녁놀을 바라보며 눈물짓는 노인은 참 고적하다. 그런 어른에게 건.. 2024. 10. 11. 가라지 가라지 김길웅, 칼럼니스트 조(粟)를 쏙 빼닮다. 하지만 거둬들일 때가 되면 속이 꽉 찬 알곡들은 황금빛으로 고개를 숙이는데, 이것들은 말라빠져 꼿꼿이 머리를 하늘로 쳐든다. 가라지다. 이들은 낫으로 베어 묶여 불살라지고 알곡들만 곳간에 들인다. 최후의 선택이다. 신약 성서 마태복음을 보면 13장 24~30절에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가 나온다. 하나님은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만 천국으로 인도해 들인다. 가라지와 같이 말씀을 듣고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알곡처럼 비슷해 보여도 언젠가는 심판대에 서게 됨을 비유한 것이다. 그러니까 알곡이 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음을 우의적(寓意的)으로 빗대었다. 성서 속의 가라지는 마귀다. 마귀이므로 반드시 안에 숨겼던 무서운 이빨을 드러내고 .. 2024. 10. 4. 가을이 오는 길 가을이 오는 길 김길웅, 칼럼니스트 팔 불뚝거리던 것도 한때, 이제 젊은 날의 혈기를 거두고 앞뒤에 눈을 줄 때다. 여름이 긴 시간이 아닌 걸 실감한다. 기분에 끌리면 길고 지루하지만 끝은 있다. 덥다고 투덜대던 게 엊그제인데 그새 햇볕이 여리고 바람이 산산하다. 언제 와 있던 걸까. 창틈으로 낯선 한기가 스멀거리며 들어온다. 새벽엔, 잠결에 홑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기고 있었다. 가을이다. 가장 민감한 게 낙엽수, 그중에도 감나무다. 그끄제 비가 추적이는데 감나뭇잎 여남은 개가 마당으로 내려앉았다. 소년의 손만 한 것들. 잎이 공중을 한 번 구르더니 낙하한다. 무풍한데 낙엽이라니. 심록의 잎도 계절 앞엔 인연을 놓아야 하는가. 왤까. 정원에 노상 오던 새들의 방문도 뜸하다. 열매 한 톨 없는.. 2024. 9. 27. 구지뽕 조청 구지뽕 조청 김길웅, 칼럼니스트 요즘처럼 박정한 세상에 그런 인연도 있구나 할 테다. 남에게 피해가 되는 일을 삼가고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 만나기 어려운 시절이다. 내게 그런 연이 있으니 행운이 아닌가. 이름 밝히기를 주저하지 않겠다. 수필로 만난 깊은 인연이다. 제주시 조천에 사는 동생 같은 양재봉 작가. 나는 그를 아낀다. 심성이 곱고 곧아 거짓부리가 없어 나와 의기투합해 마음 나눠 도탑다. 내가 삼촌뻘이어도 우리 사이엔 벽이 되지 않는다. 제주일보 ‘사노라면’의 필진이기도 한 그는 다재다능해 ‘家’ 자가 여럿 붙는다. 환경운동가, 미생물연구가, 서예가, 서각가, 수필가. 장르마다 기예의 손매가 섬세하고 식견이 깊다. 자신을 최상의 층위에 올려놓기 위해 집중한다. ‘家’ 자가 그.. 2024. 9. 20. 영웅이 영웅을 뛰어넘다 영웅이 영웅을 뛰어넘다 김길웅, 칼럼니스트 기적은 없다. 그러나 만드는 사람이 있으면 나타난다. 그 기적을 일러 ‘기적 같다.’고 말한다. 기적의 중심에 서 있어 이름을 부르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가 엮고 있는 서사가 대견하고 옹골차서다. 가수 임영웅, 나라 안에 모르는 사람이 없게 회자되는 이름이다. 하도 유명해 이젠 세계를 향해 날기 시작한 이름이다. 그가 미스터 트롯을 거머쥐었을 때, 모자간이 눈물로 나누던 감격의 전화가 이 나라의 한때를 지배했었잖은가. 그때, 눈물 그렁그렁하던 임영웅의 순진한 눈망울을 나는 잊지 못 한다. 아이 같은 얼굴이었다. 어머니 무릎 아래 컸으면서도 티 하나 없는 맑고 밝은 얼굴이었다. 그래서 30대 청년의 민낯은 충격이었다. ‘아, 저 친구의 노래는 .. 2024. 9. 13. 아내는 무명의 셰프 아내는 무명의 셰프 김길웅, 칼럼니스트 늘 군소리 않고 먹는 버릇이 배어 있다. 등짝에 붙은 배를 채우는 게 우선이었지 맛은 버금이었다. 빈배를 달랬던 시절 얘기다. 소년에게 남는 건 내성(耐性)이었다. 초년 고생은 돈을 줘도 못 산단다. 배고픔을 참거나 조악한 허드렛 것을 먹어 때우는 것은 지금도 어지간한 수준을 넘어선다. 몇 날 며칠을 두고 무슨 생각에 몰두하는 눈치더니 종재기에 새로 만든 반찬을 떠놓고선 먹어보란다. 늙어 오그라든 마당에 아내가 일 하나를 저질렀다. 먹어본 적이 없는 반찬을 떠놓는 게 아닌가. 가만 나를 살피더니. 설명을 늘어 놓기 시작이다. “별다른 레시피는 아니고요. 가짓수가 조금 많아요. 당근, 양파, 단호박, 버섯, 파프리카, 닭다리살, 감자, 토마토, 가.. 2024. 8. 30. 금요일 금요일 김길웅, 칼럼니스트 금요일이 달라진 지 오래다. 한 주를 마무리한다. 주 5일제 이전의 금요일만 살았던 내게 금요일은 평범한 요일, 토요일 전날이란 영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말을 준비하는 날로 자리를 틀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요즈음의 금요일은 이전의 요일로 자리해 있지 않다. 산을 탄다면, 그사이 가파른 능선을 넘어 내려 마지막 발짝을 내디뎌야 할 임계점에 다다른 그 시점, 그 지점이다. 직장인에게 금요일은 위안과 여백의 자락이다. 뒷날이 토요일, 그 다음 날이 일요일. 노동에서 헤어나 쉴 수 있다는 것의 편안함처럼 즐거운 게 어디 있을까. 지친 몸에 쉼을 주어야 한다. 다 내려놓고 모두 덮어버리며 진득하게 버텨온 힘을 놓아버리고 멈춰야 한다. 심신을 홀가분하게 방임하.. 2024. 8. 23. 한 팔의 탁구선수 한 팔의 탁구선수 김길웅, 칼럼니스트 파리 올림픽이 끝났다. 목표를 초과 달성한 대회였다.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 올림픽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그만큼 우리 선수들의 활약은 놀라운 것이었다. 우리 선수들의 피나는 노력에 대해 온 국민이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냈음은 물론이다. 무슨 일이든 인과(因果) 아닌 것이 없다. 루소의 말은 이 경우에도 금언이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찜통더위로 집 안에 갇혀 지내며 많은 사람들이 올림픽 중계를 시청했을 것이다. 폭염 속에 누렸던 호사였다. 선수들은 땀을 쏟는데, 한쪽에선 시청을 즐기면서 겸연쩍기도 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놀라운 장면 하나를 목도했다. 우리 여자 탁구가 브라질과 단체전 16강전을 치를 때다. 브라질.. 2024. 8. 16. 이전 1 2 3 4 5 ··· 3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