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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 김길웅 시인

이발관 풍경

by 동파 2025.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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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관 풍경

김길웅,칼럼니스트

 

아이 땐 이발관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어른들이 이발을 동네에서 하게 했다. ‘머리를 깎는다’ 했다.

동네에 이발하는 사람이 한 분 있었다.

마당에 허술한 의자 하나 내놓고 앉으라 한다.

어깨 아래로 하얀 포대기를 덮어놓고 바리깡(이발기)으로 머리를

밀기 시작하면, 아파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이발기가 머리카락을 물면서 그 자리에 서버린 것이다.

이발기에 무슨 기름을 쳐 간신히 움직이기 시작한 기계는 두 걸음을

떼더니. 다시 머리카락을 물고 늘어진다. 더 단단히 물렸다.

어찌어찌 끝내면 돈 몇 환(?)을 내고, 겁먹은 아이는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발 풍경이었다.

중학생이 돼야 처음으로 이발관엘 간 것 같다.

이발관엔 흰옷을 입은 이발사와 머리 감기는 아이 둘이 일했다.

손님이 둘만 가도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그래도 겨울엔 연탄불을 피워 후끈거렸다.

벽엔 쟁기를 짊어진 농부가 소를 몰고 키 큰 포플러가 늘어선

시내를 끼고 밭으로 가는 풍경화가 두어 점 걸려 있다.

베니아 합판에다 페인트로 칠한 그림이다.

상화를 그리는 화가의 솜씨였다.

퇴색한 데다 먼지까지 부옇게 앉았다.

청소한 지가 오래된 모양이다.

연탄불에 뜨거워진 고데기로 내일 장가 갈 신랑의 머리를 태워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머리 타는 냄새가 좁은 이발관에 진동했다.

아무래도 이발사의 손매가 시원치 않았던 것으로 보였다.

읍내에 살 때는 단골을 정해놓으니 임의롭긴 하나 야속했다.

머리 감기는 군손 없이 이발사 혼자였다.

늘 그대로, 실내가 어수선했으나 도시에서 왔다는 이발사의

솜씨가 야무졌다. 허전했지만 벽에 페인트를 칠한 그림이 없는 것도

시대의 작은 진화로 느껴졌다.

시내로 이사했더니 이발관 간판이 눈에 띄지 않아 놀랐다.

○◯클럽. 헤어 아티스트하는 식이다. 도농의 격차를 실감헸다.

아파트 길 건너에 있는 이발관에 갔더니,

머리만 잘라주고 면도는 안 하는데, 머리도 저대로 감는다.

썩 내키지 않아 하던 참에, 가까이 사는 작은아들이 눈치를 챘는지 같이

이발을 하자 한다. 신나는 일인 데다 아들에게 효도할 기회를

주는 것 같아 대만족이다. 간판이 헤어 아티스트로 여자들 미용을

곁들이고 있다. 집기들이 세련되고 기구들도 빛이 나서 반들거린다.

늘그막에 이런 데는 처음이다.

눈앞으로 아이 때부터 겪어 온 이발관 풍경들이 아스라이 펼쳐져

웃음이 나왔다. 젊은 이용사가 서글서글한 데다 가위질이 현란해 미덥다.

머리를 감기는 도구가 인체공학적 배려로 효율을 앞세워 편하다.

그래선지 머리를 감기는 손의 마사지도 퍽 개운하다.

작은 수족관에서 열대어들이 바지런히 유영하고 있다.

은색 몸통에 꼬리가 빨간 메타카와 등이 푸른 구피.

구피란 녀석은 길이가 2,3㎝가 될까 말까다.

주인 말로는 세상에서 제일 작은 고기라 한다.

보고 있으니 무료하지 않다.

아들 덕분에 딴 세상에 온 기분이다.

부자가 이발을 끝낸 게 30분, 아들 차로 아파트에 도착했다.

작별할 시간이다.

“고맙다. 가서 쉬거라.”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드는 아들, 나도 손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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