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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 김길웅 시인346

연동 동장님께 아룁니다 연동 동장님께 아룁니다 김길웅, 칼럼니스트 「출구도 퇴로도 없다. 애초 선택되지 않았다. 선 자리에 버텨 있을 뿐, 지(地)의 이(利)가 있을 턱이 없다. 바람도 지레 저를 위한 마련이 없는 걸 앎인지 그냥 지나간다. 자동차 소음에 새의 내왕도 뜸한 자락. 연동으로 이사와 이곳 사정에 어둡고 낯선 공기가 서먹해 산책에 나섰다. 한화가 아파트를 짓는다고 판을 벌인 길모퉁이를 돌아나온다. 순박한 섬사람들은 큰손이 벌인 건설 현장에서 날품팔이로 하루를 걷어내는가. 자재를 들어 올리다 우뚝 공중에 멈춘 대형 철탑이 흉물스럽다. 서른 해를 눌러산 읍내에선 본 적이 없는 풍경이다. 맥 풀린 다리가 작은 숲 난간에 몸을 기대 세우는데, 눈앞 한 그루 소나무에 움찔 놀란다. 오싹하게 주위를 압도하는 저 위의(威儀). .. 2023. 10. 6.
아, 창간 78주년! 아, 창간 78주년! 김길웅, 칼럼니스트 ‘제주일보, 본명이다.’ 뺏겼던 그 이름을 되찾았다. 축하한다. 들꽃에도 이름이 있다. 신문도 이름이 있다. 이름 곧 존재다. 존재의 또 다른 얼굴이 이름이다. 이름이 있어 생명으로 존귀하다.(2020년 7월 15일. 제주일보 재발행에 즈음하여, ‘뺏겼던 그 이름 되찾다’ 중-김길웅) 3년 전 제주일보 스크랩을 꺼내 보게 된다. 얽히고설켜 얼마나 갈등했던가. 제주언론사에 남을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濟州新聞→제주일보→제주新보→제주일보’. 제주일보가 거쳐 온 이름들이다. 외딴 벌판의 들풀에도 이름이 있는데, 제주일보는 이름을 뗐다 붙였다 했다. 심지어는 한글에 한자 ‘新’ 자가 섞인 야릇한 이름도 있었다. 이 나라에 없는 국한문혼용체 ‘제주新보. 그냥 이름들이 아니.. 2023. 9. 27.
옛 것, 곧 전통이 아니지만 옛 것, 곧 전통이 아니지만 김길웅, 칼럼니스트 해마다 꼬박꼬박 전통적 방식으로 제사 명절을 지내왔다. 지금까지 그래 왔다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럴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것, 상당히 달라질 것이라는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실인즉,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어느 집의 경우, 어머니가 “이제 더 이상 못하겠다.”고 선언한 뒤, 가족회의를 열어 안하기로 결정됐다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집안 여성 구성원(특히 며느리)들이 차례상을 준비하느라 불필요하게 고생해 왔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왔었다는 얘기다. 대신, 추석 명절 전후로 가족들이 한데 모여 가볍게 외식할 것으로 대체했다 한다. 무엇보다 가족끼리 모이는 일이 중요한 만큼 명절이 갖는 의미가 그쪽으로 더 기우는 것 같다. 그들 가족 언저리에서 흘러나온 .. 2023. 9. 22.
소갔져(수고했다) 소갔져(수고했다) 김길웅, 칼럼니스트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현상한 사진처럼 기억 속에 되살아나는 어른이 있다. 처조모님. 장인 장모의 자리를 대신해 온 그 연(緣) 때문일까. 들었던 얘긴데도 또 귀를 세우게 되는 사연으로 첩첩하다. 3·1운동이 일어나던 1919년생인 어른은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대의 거센 물결에 일엽편주로 휩쓸렸다. 어른이 겪은 슬픔, 아픔, 고통 어느 하나 당신이 태어난 해의 3·1운동 그 역사적 사건의 격렬함과 같은 맥락 아닌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그렇게 태어난 운명이기라도 한 것처럼. 네 살 난 손녀를 남겨두고 도일한 아들네에게서 어른의 애끊는 서사의 단초는 시작됐다. 39세에 혼자가 된 어른은 덮쳐오는 산 더미 같은 세파를 당신 몸으로 안았다. 손녀를 금쪽같이 키워 60년.. 2023. 9. 15.
한라산/동보 김길웅 시인 한라산/동보 김길웅 한라산김길웅 시인몇번 올랐다 재지마라전날 발 담갔다 떠나간 사람에게도보여주지 않은 얼굴인데산이 듣는다,아는 체 마라산엔 아직 열지 않은 것혼자 품은 말, 혼자 꿔온 꿈,혼자 추는 춤,산정에서 혼자 외우던 대사가 있다.아직 들려주지 못한 노래가 있다.아는 체하면 돌아앉는다네 앞으로 드러난 어깨와 등을 바라보아라산은 푸르지만 천하 강골이다, 힘있다좀체 입을 열지 않는다천년 침묵 속에속울음인들 어찌 없었겠느냐고작 몇 번 올랐다 아는 체 마라언제, 산이 네게무슨 말 한마디 걸더냐 2023. 9. 8.
선풍기야 고맙다 선풍기야 고맙다 김길웅, 칼럼니스트 여름날 내겐, 시골 어르신들이 늙은 팽나무 그늘에 앉아 더위를 식히는 풍경이 익숙하다. 불볕더위엔 베적삼으로 스며드는 바람으론 턱없어 한 손에 부채를 쥐어 흔들었다. 자연 바람에 인공 바람의 합작이었다. 우리네 여름의 시골 풍경으로 운치 있어 보이긴 하나, 땡볕에 올라오는 복사열로 부채를 흔들어도 실은 별무소용이었다. 덥다, 덥다 하며 부채를 몹시 흔들어대면 땀이 더 흐른다. 그나마 어찌어찌 낮잠을 청할 수 있으면 더없이 좋은 일진이다. 문명이 산들바람을 일으키는 선풍기를 만들어 냈다. 흐르는 땀을 들여주니 실용적으로 놀라운 발명이었다. 뜻 그대로 갑자기 시원하고 서늘한 바람을 불어오게 했으니, 선풍기다. 하지만 1960년대까지는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 순탄치도 못해,.. 2023. 9. 8.
스트레스는 변화다 스트레스는 변화다 김길웅, 칼럼니스트 우리는 매일 혹은 순간순간 감당하기 힘든 불안과 위협의 감정 속에 산다. 스트레스다. 웬만해서 벗어날 수 없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 할 정도다. 모든 영역에 존재해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맞서 싸우거나 도피하려 해도 쉬이 놓아주지 않는다. 불안, 우울, 초조, 심리적 반응이 밥맛을 앗아가기도 한다. 멀쩡하던 사람이 먹지 않게 되든 건 심각한 일이다. 신체적으로 삶을 제대로 수용하지 않는다는 적신호가 아닌가. 시간 압박, 건강 문제, 친구와의 불화, 대인관계, 금전관계 등 우리 주변엔 골칫거리가 쌓여 있다. 그것들에 둘러싸여 휩쓸리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새 좌절해 기진맥진하게 된다. 심리적 탈진이다. 강도 높은 대인관계나 서비스를 요구하는 간호사, 교사,.. 2023. 9. 1.
반바지 반바지 김길웅, 칼럼니스트 반바지는 무릎까지 내려가는 바지다. 여름철 가볍게 입는다. 오래전 초등학교 교과서에 철수가 반바지 책가방 메고 학교 가는 삽화가 실렸었다. 낯선 복장이 어른들이 한참 뒤에 입어 시차가 있을 뿐이다. 윗옷에 온 소매 반소매가 있으니, 아래옷에 온 바지 반바지가 게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반바지 무엇이 그게 등장하며 눈치께나 살핀건 사실인 것 같다. 한동안 망설이다 반바지를 입기 시작한 것이 15년쯤, 그리 오랜 것 같지 않다. 간결한 걸 선호하는 시대의 흐름에 보조를 맞춘 셈인데, 입다 보니 이내 됐으니 적응 속도가 빨랐다. 7부에서 8,9부까지 다양하게 입어, 제한적인 아이템이 없다. 요즘은 20~40대들이 상당히 짧은 쪽으로 대중화하는 경향이다. 그런다고 도를 이탈.. 2023. 8. 25.
연동 도심에 쉼팡이… 연동 도심에 쉼팡이… 김길웅, 칼럼니스트 얼마 만인가. 부부가 카푸치노 한 잔씩 받아 앉아 시간을 보냈다. 나는 퍽 하면 글 쓴답시고 입 닫고 지내기 일쑤라,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됐다. 아내의 얼굴이 가을 하늘처럼 청명해 눈만 맞추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다. 길에 나와 산책하다 기분이 처졌다. 연동과 노형동 접경, 번화가에서 조금 벗어난 곳. 곧게 뻗은 길을 걷는데 허리에 압박감이 오고 다리가 뻐근하다. 살펴도 앉을 만한 마땅한 데가 없다. ‘벤치가 있었으면…. 어디 쉼팡 같은 것도 없나.’ 잠시 앉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쉴 만한 구조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돌 몇 덩이 깎아 놓으면 될 걸. 암만 생각해도 이상한 도시 디자인이다. 시내버스 정류장은 다리가 휘청거릴 즈음.. 2023. 8. 19.
여든두 번째 계단에 서다~東甫 김길웅 지음 東甫 김길웅 선생 책 표지 제주일보 2023년8월2일자 신문 보도 東甫와 東坡 오랜만에 해후하여 어우늘(전복요리전문)에서 점심을함께하면서 그 동안의 소식을 대화하면서 즐거운 점심시간이 되었다. 김길웅 선생님은 묘심행 보살을 소개한 부부의 인연을 맺어준 월하노인(月下老人)인 샘이다. 김길웅 선생님 감사합니다. 2023. 8.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