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미소
김길웅, 칼럼니스트
기쁠 때 나오는 게 웃음이다.
표정도 퍽 별나다.
기쁨의 감정이 밖으로 새어 나오면, 순간적으로 닫혔던 입꼬리가
올라가고 눈매가 가늘어진다. 화르르 순식간에 기쁨이 번지면서
얼굴이 발그레 해지기도 한다. 설렘 탓일까.
손도 가만있지 못해 허공을 만지작거린다.
실같이 가늘어진 눈언저리로 아침 햇살 한 줄기가 스미면,
뒤로 웃음소리가 나오고, 입가엔 한 모금 이슬 같은 맑은 물이
고인다. 웃는 이의 얼굴은 방금 한 줄금 단비 지나간 뒤 대지같이
촉촉하다. 영락없이 엄마 젖 물고 눈을 빛내는 아기 얼굴이다.
꽃으로 피어난다. 미소다.
웃는 얼굴은 아름답다.
갓 피어난 꽃보다 아름답고, 꽃을 바라보는 동박새의 눈매보다 곱다.
좀체 평소 웃지 않는 사람은 웃는 데 필요한 안면근육이 경직돼 있다.
기쁨이 밀려오면 눈앞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애틋한 우애의 감정이 눈 비비며 기지개를 켠다.
인상이 험악한 사람도 웃을 때는 상당히 부드럽고 살가워 무척
유순해진다. 웃을 채비를 하는 것이다. 잠자던 세포들이 슬며시
깨어나 개울 만한 소리로 재잘거린다. 슬그머니 미소 짓는다.
어제의 근심 걱정도, 간밤에 잠 못 이루던 어두운 고뇌의 그림자도
말끔히 지워지고 없다.
마음이 둥둥 뜨면 몸도 구름을 타고 흐르기 시작한다.
나이 들면서 미소에 인색한 걸 마뜩잖게 여겨온 나는 웃으려고
애쓰는 중이다. 웃음거리가 없어도 웃는다.
원체 웃지 않았기로 웃어지지 않더니 요즘 달라졌다.
닫고 살던 입이 말보다 웃음을 머금으려 오물거린다.
입이 햇살에 작게 감응하고, 날아가는 새의 날갯짓에 호응하는가.
입가에 아주 작은 웃음기가 머문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빙긋이 웃는 내 얼굴이 보인다.
빙긋이 아주 작은 웃음, 미소다.
앞으로는 남은 시간을 미소 속에 에워싸여 살고 싶다.
마음도 몸도 내 미소를 거들어주리라 믿는다.
기쁜 일이 없는데도 웃는 미소가 삶을 신선하게 할지도 모른다.
신명 난다.
인터넷신문에 로마 가톨릭 프란치스코 교황이 클로즈업돼 있었다.
폐렴으로 입원했다가 37일 만에 퇴원하는 길이라 한다.
88세 노령으로 휠체어를 타 있는 모습이 다소 지쳐 보였다.
교황은 아고스티노 제밀리 병원 10층 스위트룸 발코니에
휠체어를 타고 모습을 나타내더니, 엄지손가락을 들어 흔들며
“모두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1분 30초의 짧은 시간이었다.
“저기, 노란 꽃을 든 여인이 보이네요.”라 하자,
병원 마당을 메웠던 인파가 교황을 환영하며 “프란치스코”를 연호했다.
마음이 군중 속으로 들어가선지,
교황의 얼굴에 남아 있던 붓기도 눈 녹듯 사라지고 없다.
교황의 얼굴엔 맑은 미소가 번져 구름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오랜만에 군중을 대하니 사랑의 마음이 봇물 터지듯 쏟아진 걸까.
그걸 ‘노란 꽃’에서 봤을까.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교황은 네 차례 호흡곤란을 겪는 등 몇 번의 고비를 맞았었는데,
병세가 극적인 호전이라 한다.
교황의 미소에 병도 떠났으리라.
교황은 잠시 뒤, 미소 띤 얼굴로 십자성호를 긋고 퇴장해
바티칸시티로 복귀했다.
교황의 웃음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성스러운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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