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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 김길웅 시인

울타리

by 동파 2025.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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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김길웅 칼럼니스트

울타리는 우마 등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해 집 주변을 
두른 구조물이다. 
싸리나 수숫대 등을 엮고 세워 간소한 형태로 시작된 것이,
화양목이나 탱자나무 같은 관목을 심는 바자울로 진화했을 것이다. 
조경으로 이중 효과를 내는 이점이 있으니, 벽 쌓고 지붕 이기였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집의 안전에 신경이 쓰이자 견고한 시설물로의
변화를 요구하게 됐을 것이다. 점진적으로 자연석을, 
그것도 키를 넘는 높이로 쌓아올리게 돼간 것은 더욱
필요를 느낀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회가 험해지면서 울타리 위에 거대한 원형 철조망을 치거나, 
심지어 유리병을 깨어 그 조각을 붙이기도 했다. 
밤이든 낮이든 외부의 무단침입이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부를 과시할 의도도 있지 않았을까.
날카로운 유리조각을 빽빽이 박아 놓은 걸 보면 안으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미풍양속의 섬 제주에도 그렇게 무장한 개인 주택이
대로변에 몇 채 있었다. 
참 살풍경이었다. 
보기에 섬뜩하더니 언젠가 슬며시 자취를 감췄다. 
민원이 들어갔을 법도 하다. 
철조망도 그렇게 걷혀갔으리라.
나고 자란 생가엔 어린 시절 내키 만한 울타리를 돌담으로 둘렀다. 
도시에 살다 읍내로 내려가 집짓고 서른 해를 살았다. 
대충 마무리하면서 입주하다 보니, 
미처 울타리를 쌓지 못한 채 한동안 지낸적이 있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꽤불편해했을 테다. 
오가는 사람이나 집주인이나 난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원래 썩 개방적이지 못한 문화 쪽인 것 같다. 
블록을 어깨 높이로 쌓아 사방으로 빙 둘렀다. 
시골이라 정원을 가꾼다고 부지를 좀 넓게 마련해 울타리를 쌓아
놓고 높은 데서 내려다보니, 분에넘치는 것 같아 감격했다. 
생가와 견준 데서 온 자기만족이었을지 모른다.
산쪽으로 난 길을 내리다 긴 울타리를 본 적이 있다. 
적벽돌로 쌓고 큼직한 철조망을 올려 여늬 집과 다른 티가 났다. 
국가의 첩보기관 한라○○사였다. 
특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설 것이다. 
군 생활 마무리 1년을 사복 차림으로 했던 기억에 세월의 
빠름을 실감했다.
일이 있어 청담동에 갔다 어느 대학 총장 집이라는 저택을 본 적이있다. 
전면의 울타리가 하늘에라도 닿을 듯 거대한 담벼락이었다. 
촌놈 겁주려 한 것처럼 황당해 보였다. 
왜 사람들은 자신을 과시하려드는지 씁쓸했다. 
지금 사는 아파트는 여섯 동을 품에 안은 길고 거창
한 울타리가 에워싸고 있다. 
아파트 규모에 걸맞고 벽돌로 쌓아 보기에도 안정감이 있다.
울타리는 공공기관이든 주택이든 구조적으로 필요한 장치다. 
이게 없으면 집과 집의 경계가 애매모호해질 뿐 아니라, 
집 사이에 질서도 무너져 헷갈릴 사소한 우려도 있을 것 아닌가.
내가 다시 집을 짓는다면, 울타리를 좀 별스럽게 하게 될 것 같다. 
높이를 허리 아래로 사뭇 낮추고, 송악을 올려 덩굴이 세월 속으로 
뻗어나가는 풍경 하나를 보태면 어떨까 싶다. 
지금도 시골집 뒤뜰 울담에 잔뿌리를 내려 흔하다. 
기후에 강해 제 깜냥으로 잘 자란다. 
동글동글한 열매가 눈길을 끌 뿐 아니라, 
시간이 쌓이면서 고색창연한 분위기 속에 
나이를 먹으며 함께
늙어가면 좋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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