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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 上經

周易(上經)~重火離卦(30)~2

by 동파 2023.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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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上經)~重火離卦(30)~2

(30)重火離卦~2
初九는 履錯然하니 敬之면 无咎리라.
초구(初九)는 발자국이 착연(錯然)하니, 공경하면 허물이 없으리라.
【本義】 以剛居下而處明體하여 志欲上進이라 
故有履錯然之象이니 敬之則无咎矣리라 戒占者宜如是也라.

강(剛)으로서 아래에 거하고 명체(明體)에 처하여, 
뜻이 위로 나아가고자 하므로 ‘이착연(履錯然)’의 상(象)이 있으니, 
공경하면 허물이 없다. 점치는 이에게 마땅히 이와 같이 하라고 
경계한 것이다.


象曰 履錯之敬은 以피(避)咎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이착지경(履錯之敬)’은 허물을 
피하려고 해서이다.”
【傳】 履錯然欲動而知敬愼不敢進은 所以求피免過咎也라
 居明而剛이라 故知而能피하니 不剛明則妄動矣리라.

발자국이 교착하여 동하고자 하나 공경하고 삼갈 줄을 알아 
감히 나아가지 않음은 과구(過咎)를 피하고 면하기를 구하는 것이다. 
밝음에 거하고 강(剛)이므로 알아서 피할 수 있는 것이니, 
강명(剛明)하지 않다면 망동(妄動)할 것이다.

六二는 黃離니 元吉하니라.
육이(六二)는 황색(黃色)에 붙음이니, 크게 선(善)하고 길(吉)하다.

【本義】 黃은 中色이니 柔麗乎中而得其正이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황(黃)은 중앙의 색이니, 유(柔)가 중(中)에 붙어 있고 정(正)을 
얻었으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黃離元吉은 得中道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황리원길(黃離元吉)’은 중도(中道)를 
얻었기 때문이다.”
【傳】 所以元吉者는 以其得中道也니 不云正者는 離以中爲重일새라
 所以成文明은 由中也니 正은 在其中矣라.

크게 선(善)하고 길(吉)한 까닭은 중도(中道)를 얻었기 때문이니, 
정(正)을 말하지 않은 것은 이(離)는 중(中)을 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문명(文明)을 이룬 까닭은 중(中) 때문이니, 정(正)은 그 가운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九三은 日축之離니 不鼓缶而歌면 則大질之嗟라 凶하리라.
 기울 측.늙은이질
구삼(九三)은 기운 해가 걸려 있음이니, 질장구를 두드려 노래하지
 않으면 대질(大질)[크게 기욺]을 서글퍼 함이다. 흉하리라.
【本義】 重離之間은 前明將盡이라 故有日?之象이라 
不安常以自樂이면 則不能自處而凶矣니 戒占者宜如是也라.

중리(重離)의 사이는 앞의 밝음이 장차 다하려 하므로 해가 기우는
 상(象)이 있는 것이다. 떳떳함을 편안히 여겨 스스로 즐거워하지 
않으면 스스로 편안히 처하지 못하여 흉하니, 점치는 이에게 마땅히
 이와 같이 하라고 경계한 것이다.

象曰 日축之離 何可久也리오.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해가 기울어 걸려 있는 것이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傳】 日旣傾측하니 明能久乎아 明者는 知其然也라 
故求人以繼其事하고 退處以休其身하여 安常處順하니 
何足以爲凶也리오.

해가 이미 기울었으니, 밝음이 오래갈 수 있겠는가. 
현명한 이는 이러한 이치를 안다. 그러므로 인물을 구하여 일을 
계속하게 하고, 물러나 처하여 그 몸을 쉬어서 떳떳함을 편안히 여기고 
순리에 처하니, 어찌 흉함이 되겠는가.

九四는 突如其來如라 焚如니 死如며 棄如니라.
구사(九四)는 급하게 오는지라 불타는 듯하니, 죽으며 버림을 받는다.
【本義】 後明將繼之時而九四以剛迫之라 故其象如此하니라.
뒤의 밝음이 장차 계승하는 때인데 구사(九四)가 강(剛)으로 핍박하기
 때문에 그 상(象)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突如其來如는 无所容也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돌여기래여(突如其來如)’는 
용납할 곳이 없는 것이다.”
【本義】 无所容은 言焚死棄也라.
용납할 곳이 없다는 것은 불타며 죽고 버림받음을 말한 것이다.

六五는 出涕타若하며 戚嗟若(척차)이니 吉하리라.

육오(六五)는 줄줄 눈물을 흘리며 슬퍼함이니, 길(吉)하리라.
【本義】 以陰居尊하고 柔麗乎中이라 然不得其正하고 
而迫於上下之陽이라 故憂懼如此然後得吉이니 戒占者宜如是也라.

음(陰)으로서 존위(尊位)에 거하고 유(柔)가 중(中)에 붙어 있다. 
그러나 바름을 얻지 못하고 위아래의 양(陽)에게 핍박당하므로 
근심하고 두려워하기를 이와 같이 한 뒤에야 길(吉)함을 얻는 것이니, 
점치는 이에게 마땅히 이와 같이 하라고 경계한 것이다.

象曰 六五之吉은 離王公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육오(六五)의 길(吉)함은 왕공(王公)에게 
붙어 있기 때문이다.”
【傳】 六五之吉者는 所麗得王公之正位也일새라 
據在上之勢而明察事理하여 畏懼憂虞以持之하니 所以能吉也라
 不然이면 豈能安乎아.

육오(六五)가 길(吉)한 것은 붙어 있는 곳이 왕공(王公)의 바른 자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위에 있는 형세를 점거하여 사리(事理)를 밝게 살펴서
 두려워하고 근심하여 유지하니, 이 때문에 길(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 편안하겠는가.

上九는 王用出征이면 有嘉니,
상구(上九)는 왕(王)이 출정(出征)하면 아름다움이 있으리니,

【傳】 九以陽居上하여 在離之終하니 剛明之極者也라
 明則能照하고 剛則能斷이니 能照면 足以察邪惡이요 
能斷이면 足以行威刑이라 故王者宜用如是剛明하여 
以辨天下之邪惡而行其征伐이면 則有嘉美之功也라 
征伐은 用刑之大者라.

구(九)가 양(陽)으로 상(上)에 거하여 이(離)의 종(終)에 있으니, 
강명(剛明)함이 지극한 것이다. 밝으면 비추고 강하면 결단할 수 있으니, 
비추면 사악(邪惡)함을 살필 수 있고, 결단하면 위엄과 형벌을 행할 수 있다. 
그러므로 왕자(王者)가 마땅히 이와 같은 강함과 밝음을 써서 천하(天下)의 
사악(邪惡)함을 구별하여 정벌을 행한다면 아름다운 공이 있는 것이다. 
정벌은 형벌을 씀이 큰 것이다.


折首하고 獲匪其醜면 无咎리라.
괴수(魁首)만 잡고 잡은 것이 일반 무리가 아니면 허물이 없으리라.
【本義】 剛明及遠하고 威震而刑不濫하니 无咎之道也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강명(剛明)함이 먼 곳에까지 미치고 위엄이 진동하되 형벌이 지나치지 않으니, 
무구(无咎)한 도(道)이다. 그러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王用出征은 以正邦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왕용출정(王用出征)’은 나라를 바로잡는 것이다.”
【傳】 王者用此上九之德하여 明照而剛斷하여 以察除天下之惡은
 所以正治其邦國이니 剛明은 居上之道也라.

왕자(王者)가 이 상구(上九)의 덕(德)을 써서 밝게 비추고 강하게 결단하여 
천하(天下)의 악(惡)을 살펴 제거함은 나라를 바로잡아 다스리는 것이니, 
강하고 밝음은 위에 거하는 도(道)이다.

김재홍 박사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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