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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 上經

周易(上經)~地雷復卦(24)~2

by 동파 2023.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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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地雷復卦~2

初九는 不遠復이라 无祗悔니 元吉하니라.
초구(初九)는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오는지라 뉘우침에 
이름이 없으니, 크게 선(善)하여 길(吉)하다.
【本義】 一陽復生於下하니 復之主也라 祗는 抵也라 
又居事初하여 失之未遠에 能復於善하여 不抵於悔하니 
大善而吉之道也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하나의 양(陽)이 다시 아래에서 생기니, 복(復)의 주체이다. 
지(祗)는 이름이다. 또 일의 초기에 있어 잃기를 멀리하기 
전에 다시 선(善)으로 돌아와서 뉘우침에 이르지 않으니, 
크게 선(善)하여 길(吉)한 방도이다. 그러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不遠之復은 以修身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옴은 이로써 
몸을 닦는 것이다.”
【傳】 不遠而復者는 君子所以修其身之道也라
 學問[一无問字]之道는 无他也라 唯其知不善이면 
則速改以從善而已니라.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옴은 군자(君子)가 몸을 닦는 도(道)이다. 
학문(學問)하는 방도는 다른 것이 없다. 오직 불선(不善)임을
 알면 빨리 고쳐 선(善)을 따를 뿐이다.

六二는 休復이니 吉하니라.
육이(六二)는 아름다운 돌아옴이니, 길(吉)하다.
【本義】 柔順中正하고 近於初九而能下之하니 復之休美니 
吉之道也라.

유순중정(柔順中正)하고 초구(初九)에 가까이 있으면서 
낮추니, 돌아옴의 아름다움이니, 길(吉)한 방도이다.

象曰 休復之吉은 以下仁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휴복(休復)의 길(吉)함은 
인자(仁者)에게 낮추기 때문이다.”
【傳】 爲復之休美而吉者는 以其能下仁也니 仁者는
 天下之公이요 善之本也라 初復於仁이어늘 二能親而下之라
 是以吉也라.

돌아옴이 아름다워 길(吉)함이 되는 것은 능히 인자(仁者)에게
 낮추기 때문이니, 인(仁)은 천하(天下)의 공(公)이요 
선(善)의 근본(根本)이다. 초(初)가 인(仁)에 돌아왔는데 
이(二)가 가까이 하여 낮추기 때문에 길(吉)한 것이다.

六三은 頻復이니 려하나 无咎리라.
육삼(六三)은 돌아오기를 자주함이니,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으리라.
【本義】 以陰居陽하여 不中不正하고 又處動極하여 
復而不固하니 屢失屢復之象이라 屢失故危요 復則无咎라 
故其占又如此하니라.

음(陰)으로서 양위(陽位)에 거하여 중정(中正)하지 못하고 
또 동(動)의 극(極)에 처하여 돌아오나 견고하지 못하니,
 자주 잃고 자주 돌아오는 상(象)이다. 자주 잃으므로 
위태롭고 돌아오면 허물이 없으므로 그 점(占)이 또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頻復之려는 義无咎也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빈복(頻復)의 위태로움은 의(義)에 
허물이 없다.”
【傳】 頻復頻失이 雖爲危?나 然復善之義는 則无咎也라.
자주 돌아오고 자주 잃음은 비록 위태로움이 되나 선(善)에 
돌아오는 의(義)에는 허물이 없다.

六四는 中行하되 獨復이로다.
육사(六四)는 음(陰) 가운데를 행하나 홀로 돌아오도다.
【本義】 四處群陰之中而獨與初應하니
 爲與衆俱行而獨能從善之象이라 當此之時하여 
陽氣甚微하여 未足以有爲라 故不言吉이라 
然理所當然이니 吉凶은 非所論也라 
董子曰 仁人者는 正其義하고 不謀其利하며 
明其道하고 不計其功이라 하니 於剝之六三及此爻에 見之라.

사(四)가 군음(群陰)의 가운데에 처하여 홀로 초(初)와 
응(應)하니, 무리와 함께 가나 홀로 선(善)을 따르는
 상(象)이 된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양기(陽氣)가 매우 
미약하여 무슨 일을 할 수가 없으므로 길(吉)함을 말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도리에 당연한 것이니, 
길흉(吉凶)은 논할 바가 아니다. 동중서(董仲舒)가 
말하기를 “인인(仁人)은 의(義)를 바루고 이익을 도모하지
 않으며, 도(道)를 밝히고 공(功)을 따지지 않는다.” 하였으니,
박괘(剝卦)의 육삼효(六三爻)와 이 효(爻)에서 이것을 볼 수 있다.

象曰 中行獨復은 以從道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중행독복(中行獨復)’은 도(道)를 따르기
 때문이다.”
【傳】 稱其獨復者는 以其從陽剛君子之善道也라.
홀로 돌아옴을 칭찬한 것은 양강군자(陽剛君子)의 선(善)한 
도(道)를 따르기 때문이다.

六五는 敦復이니 无悔하니라.
육오(六五)는 돌아옴에 도타움이니, 뉘우침이 없다.

【本義】 以中順居尊而當復之時하여 敦復之象이니 无悔之道也라.
중순(中順)으로 존위(尊位)에 거하고 복(復)의 때를 당하여 
돌아오기를 도타히 하는 상(象)이니, 뉘우침이 없는 도(道)이다.

象曰 敦復无悔는 中以自考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돈복무회(敦復无悔)’는 중도(中道)로써 
스스로 이룸이다.”
【本義】 考는 成也라.
고(考)는 이룸이다.

上六은 迷復이라 凶하니 有災?하여 用行師면 終有大敗하고 
以其國이면 君이 凶하여 至于十年히 不克征하리라.

상육(上六)은 돌아옴에 혼미하므로 흉하니, 재생(災?)이 있어서 
군(軍)을 동원하는 데에 쓰면 끝내 대패(大敗)하고,
 나라를 다스림에 쓰면 군주(君主)가 흉하여 10년에 
이르도록 능히 가지 못하리라.
【本義】 以陰柔居復終하여 終迷不復之象이니 凶之道也라
 故其占如此하니라 以는 猶及也라.

음유(陰柔)로 복(復)의 마지막에 거해서 끝내 혼미하여
 돌아오지 못하는 상(象)이니, 흉한 도(道)이다. 
그러므로 그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이(以)는 급(及)과 같다.

象曰 迷復之凶은 反君道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미복(迷復)의 흉함은 군주(君主)의 
도(道)에 위반되기 때문이다.
【傳】 復則合道어늘 旣迷於復이면 與道相反也니 
其凶可知라 以其國君凶은 謂其反君道也라 
人君이 居上而治衆에 當從天下之善이어늘 乃迷於復하니
 反君之道也라 非止人君이요 凡人迷於復者는 皆反道而凶也니라.

돌아오면 도(道)에 합하는데 이미 돌아옴에 혼미하면 도(道)와 
상반(相反)되니, 그 흉함을 알 수 있다. ‘이기국군흉(以其國君凶)’은
 군주(君主)의 도(道)에 위반됨을 이른다. 인군(人君)이 위에 
거하여 무리를 다스림에 마땅히 천하(天下)의 선(善)을 따라야 
하는데, 돌아옴에 혼미하니 군주(君主)의 도(道)에 위반되는 것이다.
 이는 다만 인군(人君)만이 그러한 것이 아니요, 돌아옴에 혼미한 
이는 모두 도(道)에 위반되어 흉하다.
p159

김재홍 박사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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