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澤雷隨卦~2
六二는 係小子면 失丈夫하리라.
육이(六二)는 소자(小子)에 얽매이면 장부(丈夫)를 잃으리라.
【本義】 初陽은 在下而近하고 五陽은 正應而遠하니 二陰柔로
不能自守以須正應이라 故其象如此하니 凶吝可知니 不假言矣라.
초양(初陽)은 아래에 있어서 가깝고 오양(五陽)은 정응(正應)인데 머니,
이(二)는 음유(陰柔)여서 스스로 지켜 정응(正應)을 기다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상(象)이 이와 같으니, 흉린(凶吝)을 알 수 있으니,
굳이 말할 것이 없다.
象曰 係小子면 弗兼與也리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소자(小子)에 얽매이면 겸하여 친할 수가 없으리라.”
【傳】 人之所隨 得正則遠邪하고 從非則失是하니 无兩從之理라
二苟係初則失五矣리니 弗能兼與也라 所以戒人從正에 當專一也라.
사람의 따르는 바가 바름을 얻으면 사(邪)를 멀리하고 그름을 따르면
옳음을 잃으니, 두 가지를 다 따르는 이치는 없다. 이(二)가 만약 초(初)에
얽매이면 오(五)를 잃을 것이니, 겸하여 친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
바름을 따름에 마땅히 전일(專一)하여야 함을 경계한 것이다.
六三은 係丈夫하고 失小子하니 隨에 有求를 得하나 利居貞하니라.
육삼(六三)은 장부(丈夫)에 얽매이고 소자(小子)를 잃으니, 따름에 구함을 얻으나
정(貞)에 거함이 이롭다.
【本義】 丈夫는 謂九四요 小子는 亦謂初也라 三近係四而失於初하니 其象이
與六二正相反이라 四陽當任而己隨之하니 有求必得이나 然非正應이라
故有不正而爲邪媚之嫌이라 故其占如此하고 而又戒以居貞也라.
장부(丈夫)는 구사(九四)를 이르고, 소자(小子)는 역시 초구(初九)를 이른다.
삼(三)은 가까이 사(四)에 얽매여 초(初)를 잃으니, 그 상(象)이
육이효(六二爻)와 정반대이다. 사양(四陽)이 임무를 담당하였는데 자신이 따르니,
구함을 반드시 얻으나 정응(正應)이 아니기 때문에 바르지 못하여 간사하게
아첨하는 혐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점이 이와 같고 또 정(貞)에
거하라고 경계한 것이다.
象曰 係丈夫는 志舍下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장부(丈夫)에 얽매임은 뜻이 아래를 버리는 것이다.
【傳】 旣隨於上이면 則是其志舍下而不從也니 舍下而從上은
舍卑而從高也니 於隨爲善矣라.
이미 위를 따르면 이는 그 뜻이 아래를 버리고 따르지 않는 것이니,
아래를 버리고 위를 따름은 낮은 것을 버리고 높은 것을 따르니,
따름에 있어서 좋음이 된다.
九四는 隨에 有獲이면 貞이라도 凶하니 有孚하고 在道하고 以明이면 何咎리오.
구사(九四)는 따름에 얻음이 있으면 바르더라도 흉하니, 정성이 있고 도(道)에
있고 밝음을 쓰면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本義】 九四以剛居上之下하여 與五同德이라 故其占이 隨而有獲이나
然勢陵於五라 故雖正而凶하니 惟有孚在道而明이면 則上安而下從之하여
可以无咎也라 占者當時之任이면 宜審此戒니라.
구사(九四)가 강(剛)으로서 상괘(上卦)의 아래에 거하여 오(五)와 덕(德)이 같다.
그러므로 그 점(占)이 따라서 얻음이 있으나 세(勢)가 오(五)를 능멸하기 때문에
비록 올바르더라도 흉하니, 오직 정성이 있고 도(道)에 있고 밝으면 위가 편안하고
아래가 따라서 허물이 없을 수 있다. 점치는 이가 당시의 임무를 맡았으면
마땅히 이 경계를 살펴야 할 것이다.
象曰 隨有獲은 其義凶也요 有孚在道는 明功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따름에 얻음이 있음은 그 의리상(義理上) 흉하고,
정성이 있고 도(道)에 있음은 명철(明哲)한 공(功)이다.”
【傳】 居近君之位而有獲이면 其義固凶이로되 能有孚而在道則无咎하니
蓋明哲之功也라.
군주(君主)와 가까운 자리에 거하여 얻음이 있으면 의리상(義理上) 진실로
흉할 것이나 정성이 있고 도(道)에 있으면 허물이 없으니, 이는 명철(明哲)한
공(功)이다.
九五는 孚于嘉니 吉하니라.
구오(九五)는 선(善)에 정성스러우니, 길하다.
【本義】 陽剛中正으로 下應中正하니 是信于善也라 占者如是면 其吉宜矣라.
양강(陽剛)·중정(中正)으로 아래로 중정(中正)에 응(應)하니, 이는 선(善)에
진실한 것이다. 점치는 이가 이와 같으면 그 길함이 마땅하다.
象曰 孚于嘉吉은 位正中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선(善)에 정성스러워 길함은 자리가 정중(正中)하기
때문이다.”
【傳】 處正中之位하고 由正中之道하여 孚誠所隨者正中也니 所謂嘉也니
其吉可知라 所孚之嘉는 謂六二也니 隨는 以得中爲善이라 隨之所防者過也니
蓋心所說隨면 則不知其過矣니라.
정중(正中)의 자리에 처하고 정중(正中)의 도(道)를 행하여 부성(孚誠)으로
따르는 바가 정중(正中)이니, 이른바 선(善)이란 것이니,
그 길함을 알 만하다. 정성스러운 바의 선(善)은 육이(六二)를 이르니,
따름은 중(中)을 얻음을 선(善)으로 여긴다. 따름에 있어서 막아야 할 것은
지나침이니, 마음에 기뻐하여 따르면 지나침을 알지 못하게 된다.
上六은 拘係之요 乃從維之니 王用亨于西山이로다.
상육(上六)은 붙잡아 묶어놓고 따라서 동여매니, 왕(王)이 서산(西山)에서
형통(亨通)하게 하였다.
【本義】 居隨之極하여 隨之固結而不可解者也니 誠意之極이 可通神明이라
故其占爲王用亨于西山하니 亨은 亦當作祭享之享이라 自周而言하면
岐山在西라 凡筮祭山川者得之하고 其誠意如是하면 則吉也라.
수(隨)의 극(極)에 거하여 따르기를 굳게 맺어 풀 수 없는 것이니,
성의(誠意)의 지극함이 신명(神明)을 통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점괘는
왕(王)이 서산(西山)에서 제향(祭享)함이 되니, 형(亨)은 마땅히 제향(祭享)의
향자(享字)가 되어야 한다. 주(周)나라의 입장에서 말하면 기산(岐山)은
서쪽에 있다. 무릇 산천(山川)에 제사(祭祀)할 것을 점치는 이가 이 효(爻)를
얻고 그 성의(誠意)가 이와 같으면 길하다.
象曰 拘係之는 上窮也라.
拘:잡을 구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붙잡아 묶어놓음은 올라가 궁극한 것이다.”
【本義】 窮은 極也라.
궁(窮)은 궁극함이다.
p123
김재홍 박사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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