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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 上經

周易(上經)~天火同人卦(13)~2

by 동파 2023.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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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九는 同人于門이니 无咎리라.
초구(初九)는 사람과 함께 문에서 하니, 허물이 없으리라.
【本義】 同人之初라 未有私主하고 以剛在下하여 上无係應하니
 可以无咎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동인(同人)의 초기라서 사사로이 주장함이 없고 강(剛)으로 
아래에 있어 위에서 계응(係應)이 없으니, 허물이 없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出門同人을 又誰咎也리오.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문을 나가 남과 함께 함을 또 누가 
허물하겠는가.”
【傳】 出門同人于外면 是其所同者廣하여 无所偏私라 人之同也에 
有厚薄親疎之異면 過咎所由生也어늘 旣无所偏黨하니 誰其咎之리오.

문을 나가 밖에서 남과 함께 하면 이는 그 함께 하는 바가 넓어서 
편사(偏私)하는 바가 없는 것이다. 사람이 함께 할 때에 후박(厚薄)과
 친소(親疎)의 차이가 있으면 허물이 이로 말미암아 생기는데, 
이미 편당(偏黨)하는 바가 없으니, 그 누가 허물하겠는가.

六二는 同人于宗이니 吝하도다.
육이(六二)는 남과 함께 하되 종당(宗黨)과 하니, 부끄럽다.
【本義】 宗은 黨也라 六二雖中且正이나 然有應於上하여 
不能大同而係於私하니 吝之道也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종(宗)은 당(黨)이다. 육이(六二)는 비록 중(中)하고 또 정(正)하나, 
위에 응(應)이 있어서 대동(大同)하지 못하고 사(私)에 매이니, 
부끄러운 도(道)이다. 그러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同人于宗이 吝道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남과 함께 하되 종당(宗黨)과 하니, 
부끄러운 도(道)이다.”
【傳】 諸卦以中正相應爲善이나 而在同人則爲可吝이라 
故五不取君義라 蓋私比는 非人君之道니 相同以私는 爲可吝也라.

여러 괘(卦)는 중정(中正)이 서로 응함을 좋은 것으로 여기나,
 동인괘(同人卦)에 있어서는 부끄러울 만함이 된다. 
그러므로 오(五)는 군주의 뜻을 취하지 않았다. 
사사로이 친함은 인군(人君)의 도리가 아니니, 
서로 사사로움으로 함께 함은 부끄러울 만함이 되는 것이다.

九三은 伏戎于莽하고 升其高陵하여 三歲不興이로다.
구삼(九三)은 병사(兵士)를 풀 속에 숨겨두고 높은 구릉에 올라가서 
3년이 되어도 일어나지 못함이로다.
【本義】 剛而不中하고 上无正應하여 欲同於二而非其正이요
 懼九五之見攻이라 故有此象이라.

강(剛)하면서 중(中)하지 못하고, 위에 정응(正應)이 없어 육이(六二)와 
함께 하고자 하나 정응(正應)이 아니며, 구오(九五)에게 공격을 당할까 
두려워하므로 이러한 상(象)이 있는 것이다.

象曰 伏戎于莽은 敵剛也요 三歲不興이어니 安行也리오.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병사(兵士)를 숲 속에 숨겨둠은 적이 강하기 
때문이요, 3년이 되어도 일어나지 못하니, 어떻게 행하겠는가.”
戎:되융.莽:우거질 망.
【本義】 言不能行이라.
능히 행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九四는 乘其墉하되 弗克攻이니 吉하니라.
墉:담 용
구사(九四)는 담에 올라가나 공격하지 못하니, 길(吉)하다.
【本義】 剛不中正하고 又无應與하여 亦欲同於六二로되 
而爲三所隔이라 故爲乘墉以攻之象이라 然以剛居柔라 
故有自反而不克攻之象하니 占者如是면 則是能改過而得吉也라.

강(剛)이 중정(中正)하지 못하고 또 응여(應與)가 없어서 역시 
육이(六二)와 함께 하고자 하나 삼(三)에게 가로막힘을 당하였다. 
그러므로 담에 올라가 공격하는 상(象)이 된 것이다. 
그러나 강(剛)이 유위(柔位)에 거하였으므로 스스로 돌이켜 능히 
공격하지 않는 상(象)이 있으니, 점치는 이가 이와 같이 하면 
잘못을 고쳐서 길(吉)함을 얻을 것이다.

象曰 乘其墉은 義弗克也요 其吉은 則困而反則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담에 올라감은 의리상(義理上)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요, 길(吉)함은 곤(困)하여 법칙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本義】 乘其墉矣면 則非其力之不足也요 特以義之弗克而不攻耳라
 能以義斷하여 困而反於法則이라 故吉也라.

담에 올라갔으면 힘이 부족한 것이 아니요, 다만 의리상(義理上)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공격하지 않는 것뿐이다. 의(義)로써 결단하여 
곤(困)하여 법칙(法則)에 돌아오므로 길(吉)한 것이다.

九五는 同人이 先號咷而後笑니 大師克이라야 相遇로다.
咷:울도.
구오(九五)는 남과 함께 하되 먼저는 울부짖다가 나중에는 웃으니, 
큰 병력으로 이겨야 서로 만난다.
【本義】 五剛中正이어늘 二以柔中正으로 相應於下하여 
同心者也로되 而爲三四所隔하여 不得其同이라 然義理所同에 
物不得而間之라 故有此象이라 然六二柔弱而三四剛强이라 
故必用大師以勝之然後에 得相遇也라.

오(五)는 강중정(剛中正)인데, 이(二)가 유중정(柔中正)으로 서로 
아래에서 응하여 마음을 함께 하는 이이나, 삼효(三爻)와 
사효(四爻)에게 막힌 바가 되어서 그 함께 함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의리가 같음에 남이 이간할 수 없으므로 이러한 
상(象)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육이(六二)가 유약(柔弱)하고 
삼(三)과 사(四)가 강강(剛强)하므로 반드시 큰 병력을 사용하여 
이긴 뒤에야 서로 만남을 얻는 것이다.

象曰 同人之先은 以中直也요 大師相遇는 言相克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동인(同人)이 먼저 울부짖음은 중심(中心)이 
곧기 때문이요, 큰 병력으로 이겨야 서로 만남은 서로 이김을 말한 것이다.”
【本義】 直은 謂理直이라.
직(直)은 이치가 곧음을 이른다.

上九는 同人于郊니 无悔니라.
상구(上九)는 남과 교외(郊外)에서 함께 하니, 뉘우침이 없다.
【本義】 居外无應하여 物莫與同이나 然亦可以无悔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郊는 在野之內하니 未至於曠遠이요 
但荒僻하여 无與同耳라.

밖에 거하고 응(應)이 없어서 남이 함께 하는 이가 없으나, 
역시 뉘우침이 없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교(郊)는 야(野)의 안에 있으니, 광원(曠遠)함에는
 이르지 않고, 다만 황폐하고 궁벽하여 더불어 함께 하는 이가 없을 뿐이다.

象曰 同人于郊는 志未得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남과 교외(郊外)에서 함께함은 뜻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傳】 居遠莫同이라 故終无所悔라 然而在同人之道하여는
 求同之志를 不得遂하니 雖无悔나 非善處也라.

먼 곳에 거하여 함께 하는 이가 없으므로 끝내 뉘우치는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동인(同人)의 도(道)에 있어서는 함께 하려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니, 비록 뉘우침은 없으나 잘 대처하는 이가 아니다.
p102

김재홍박사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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