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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스님과 유마경(維摩經)

유마경(維摩經) 제4 보살품~김해 정암사 법상 스님(7월15일)

by 동파 2022.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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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6년 7월 15일 금요일
유마거사와 광엄동자

김해 정암사 법상 스님과 
유마경(維摩經) 제4 보살품 공부하기

降魔是道場。不傾動故。
항마(降魔)가 도량이니, 움직이고 기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김해 정암사 법상 스님 강해]  
마(魔)는 흔히 귀신을 말한다. 또는 마구니라고도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항(降)을 먼저 
설명하고 살펴보고자 한다.
항(降)은 적에게 굴복하다는 의미로 쓰일 때는 항(降)으로 읽고, 내리다. 라는 의미로 쓰일 때는
 강(降)으로 쓰이는데 그 예를 들면 거룩한 사람이 태어나다. 라고 할 때는 강(降)으로 쓰여서 
강탄(降誕)이라고 한다. 또한 신이 내리다. 라는 의미로 쓰일 때는 강신(降神)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항복을 의미하는 항(降)으로 쓰였다.

마(魔)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어의 마라[mara]를 소리 나는 대로 옮긴 표현이며 이를 의역(意譯)하면 
탈명(奪命), 능탈(能奪), 능탈명자(能奪命者), 살자(殺者), 장애(障?) 등이라고 나타낸다.

마(魔)는 마귀, 귀신이라고 주로 말하여 죽은 혼령이 나타나는 것을 말하여 귀신을 봤다. 쫓는다. 등을
 말하지만 이는 토테미즘이나 샤머니즘이 하는 표현이고 불교에서는 그러한 마(魔)가 아니다.

불교에서 마(魔)는 수행에 방해가 되고 저해가 되는 요소를 말한다. 
따라서 죽은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얽히고설킨 존재를 말한다. 
이를 모르면 툭하면 귀신 타령한다. 옛말에 죽은 귀신보다 산 귀신이 더 무섭다고 하였다.

탈명(奪命)
탈명이라는 표현은 불자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가 곧 생명이다. 
그러므로 이를 혜명(慧命)이라고 한다. 부처님 말씀을 모르는 불자는 껍데기 불자요. 
민무늬 불자다. 목불식정(目不識丁)이라는 표현이 있다.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는 표현이다. 
무지하면 말이 안 통하여 머리 아프다. 그러므로 무지한 것이 바로 마(魔)라는 것이다. 
오늘 절에 가야지 그러면 없던 일도 생겨나고 그런다고 하지만 사실 이는 핑계일 뿐이다. 
이런 사람은 한두 번이 아니고 계속 이러한 타령을 하기 때문이다. 고로 공부에 방해가 되어 
법문을 들을 수 있는 지혜를 빼앗아 가기에 마(魔)라고 하는 것이다.

능탈(能奪)
능탈도 같은 표현이다. 능히 나의 지혜를 빼앗아 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살자(殺者)
이는 나를 죽이는 것이 곧 마(魔)라는 표현이다. 살아도 보리의 지혜가 없으면 이미 죽은 영혼이다. 
이런 자들은 재물로 인하여 남들과 원수를 맺고, 또 사람은 모르고 돈만 아는 자린고비를 말한다. 
부디 지혜가 없는 자는 부처님 전으로 이끌어서 사람의 길로 걷게 해야 한다.

장애(障?)
불도로 나아감에 있어서 거치적거리거나 방해가 되는 요소를 말한다. 그러므로 부처님 전으로 
나아감에 있어서 중상모략이 따르고 거짓 선동이 늘 따르는 법이다. 그래서 법화경에서는 인욕의
 옷을 입고 포교하라고 하였음을 늘 기억해야 한다. 

한시외전(韓詩外傳) 권9에 보면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않는다고 하였다.

불자는 나뭇잎이 흔들릴지라도 뿌리가 흔들리면 안 된다.
마(魔)는 수행에 방해되는 모든 요소를 말한다. 법화경(法華經) 보문품에 보면 삼천대천세계에 
도적이 가득 찼는데 어떤 장사하는 물주가 귀중한 보물을 가진 장사꾼들을 데리고 험난한 길을 
지나갈 적에 그중에 한사람이 무서워하지 말고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일컬으면 
그 난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도적들은 다름이 아닌 나의 수행을 방해하는 자들을 말한다. 
옛말에 여우 피하면 독사 만난다고 하였다. 이를 피한다고 이 절 저 절 아무리 옮겨도 인간사는 
늘 장애가 따르는 법이다. 그러므로 대천세계에 도적이 가득 찼다고 하였는데 이를 곧 마(魔)라고 한다.
장사하는 물주는 곧 우리를 말한다. 장사꾼이 물건을 팔면서 늘 흥정해야 하기에 갖은 생각을
 다 하므로 이를 중생에 비유한 것이다. 고로 분별심이 있는 중생은 모두 장사꾼으로 비유한 것이다.
귀중한 보물을 가진 장사꾼들도 곧 우리다. 여기서 귀중한 보물이란? 불성(佛性)을 말함이요. 
불심(佛心)을 말함이요. 불종(佛種)을 말함이다. 

험난한 길이란? 으슥하거나 가파르고 구불구불한 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를 찾으러 가는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그중에 한사람이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믿음이 튼실하면 번뇌와 망상이 없기에 흔들리는
 마음이 없다는 표현이다. 소인은 알면 병이지만 성인은 알면 부동심(不動心)이 생기는 법이다.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라고 한 것은 실은 관세음보살을 부르라는 것이 아니라. 
이는 이승. 삼승의 무리에게 하는 말씀이지 일승을 아는 자는 곧 석가모니 부처님을 일심으로 찾으라는 
것이다.

관음보살은 사실은 없는 보살이므로 이를 권교(權敎)라고 하여 진실이 아니고 방편으로 설정된 것이다. 
이를 모르면 불교가 아니고 보살교가 되면 부처님 아들이 아니고 보살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보면 항마시도량 불경동고(降魔是道場 不傾動故)라고 하여 항마(降魔)가 도량이니, 
움직이고 기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였으니 이는 수행에 방해는 악마(惡魔)들로 인하여 이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하여야 하고 움직이면 기울기 마련이므로 기울지 아니하여야 한다고 하셨음이다. 

공부에는 늘 장애가 따르는 법이다. 그러기에 반야 지혜가 필요하며 마(魔)로써 스승을 삼아 한 걸음 한 
걸음 정진하라고 하셨음이다. 

수행자 싯다르타도 보리수 아래서 수행하셨을 때 곧 정각을 이루려고 하자 마왕은 자기 딸 3명을 보내어 
이를 갖은 유혹으로 방해하였다.
 그 딸들의 이름이 첫째인 타나(Tanha:갈애)와 둘째인 아리티(Arati:불쾌) 막내는 라가(Raga:탐욕)이다. 
따라서 이는 탐(貪). 진(嗔). 치(癡) 삼독에 비유한 것이다. 수행자 싯다르타는 삼독의 마군(魔軍)을 
물리치고 부처가 되셨다.

네가 초등학교 다닐 때 마을 창고 벽에 보면 커다란 표어가 있었다.

때려잡자 김일성
쳐부수자 공산당
이룩하자 유신사업

이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보면

때려잡자 삼독심
쳐부수자 마군들
이룩하자 부처님

※ 북방불교에서는 새벽녘에 밝은 별을 보고 깨달았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또한 설산에서 수도를 하였다는 설산수도(雪山修道)도 사실이 아니다. 


경남 김해시 한림면 시산리 270
정암사 법상 합장 

※ 제가 힘들여 보내는 법문을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전하시길 바랍니다. 
법문을 받아 보시고 여러분들의 지혜가 날로 늘어나야지 그렇지 아니하면 알음알이를 일으키는 
도구로 전락될 뿐입니다. 오늘도 10명 이상에게 이 법문이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나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