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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한라산 백록담 등정(1968년10월22일 일기장)

by 동파 2018.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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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백록담에 오르다.

2018년6월22일 한라산 백록담 등정을했다.

1968년도에

백록담에 오른 기행을 찾는라고 열흘이 되어서 여기 원고지를 찾았다.
서울에서 제주도로 이사를 올 때 내 젊은날 노오트인 원고지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이곳으로 이사를 했다.
대학2학년을 마치고 군에 지원 입대를하고 월남 전쟁에 지원을했고 베트남 전쟁에서 전사를
하더라도 내 젊은날은 원고지에 일기로 남아있기에 이렇게 인생을 고민하고 살았노라는
자국을 남기고있었다.50년이 지났다.귀중한 나의 자료다.

원고지에 쓴 일기장을 다음과같다.


1968년10월22일 화요 맑음


이른 새벽 5시에 제일 먼저 기상을하고 새벽하늘을 바라보니 별들이 총총하고 서귀포의 새벽은
고요했다.
함께 잠자던 일행을 모두 깨우고 만반의 준비를 끝내니 우리 조가 항상 1등이다.
7시35분 서귀포를 출발하여 수림에 쌓인 5.16도로를  지나서 성판악에 도착했다.
8시 35분 우리들을 안내할 가이드로부터 한라산을 오르기에 여러 주의 사항을 들었다.
김진찬 교수님은 고령으로 산행을 함께 할 수가 없다면서 섭섭해하셨다.
우리 인원은 남학생 21명 여학생19명 가이드와 김선생 총인원42명이 출발을했다.
이곳 안내판을 읽어보았다.
"여기는 성판악을 거쳐 한라산 최고봉에 이르는 등산입니다. 이 코스는 최단거리이며 가장
안전합니다.거리 9.84km. 길 넓이 3m. 음료수 없음.등산 시간 약4시간"
이러한 안내문을 노트하고 한라산 정상을 위하여 출발한 시간은 8시50분이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걷기 시작을했다.
이름 모르는 숲속을 지나면서 돌 많은 길을 걸어가고있다.초원이 있는가하면 열대지방에서
자라는숲길을 걸어가고있다.
울창한 수림속으로 또 작은 대나무숲을 지나면서 자연에 숙연하여진다.
시간 반을 걸었을까 물을 찾고 힘들다고 쉬기도하고...나는 여전히 꾸준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계속 걸었다. 내가 선두라고 생각하니 내 앞에 일행이 열심히 걸어가고있다.
제주도를 3다라고 하는 의미를 알겠다.너무나 검은돌이 많다.
인적도 없고 열심히 걸었다.
날씨는 구름한점없는 가을 하늘이다.
같은과에서 공부하는 이윤구와 열심히 붉은 리본을 찾아가면서 걸었다.
정상을 향하여 질주를하고있지만 정상에서 손수건을 흔드는 친구가 있었다.
숨찬 걸음을 좀더 재촉하여 한라산 정상에 섰을 때 친구는 나의 손을 꽉잡아주었다.
1950m에서 포웅을한 친구는 상학과 박인묵이었다.
한라산 백록담에 섰을 때
아!라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아름다운 절경을 표현 할 수가없다.
나의 조국 최남단 한라산1950m
천고의 신비를 간직한 백록담이 아닌가!
정상에 오른 10위까지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1위 11시10분 박인묵(상학과)
2위 11시18분 정동파(경영학과)
3위 11시19분 이윤구(경영학과)
4위 11시35분 김은기(상학과)
5위 11시35분 구광서(상학과)
6위 11시37분 김창옥(상학과)
7위 11시38분 최윤명(상학과)
8위 11시41분 이영구(상학과)
9위 11시42분 정병기(상학과)
10위 11시43분 오영숙(상학과)


1950m인 한라산 백록담에서 다음과 같이 읊죠려보았다.


한라산 백록담에서

내 나라
내 강토
남쪽나라 바다 건너
한라산 백록담에 서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옛 선인들은 어떠했던가...
눈을 감고 그 숨결을 듣는다.
동서남북
사방을 바라보면서
정지용 시인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스물하구 하나인 내 나이에
천년을
태고적의 숨소리를 듣는다.
이곳 정상에 섰을 때
오고 가고
가고 오고했던
선인들의 얼을 생각하여본다.
내 나라 내강토
남쪽나라 바다 건너
한라산 백록담에 서있다.

여유롭지 못한 생활에서 이곳을 올 수가 있었기에 행복했다.
수천 수만년전에 불덩이가 치솟고 대분화구였던 것을 생각하여본다.
자연에 다시 숙연하여진다.
그 어느 옛날 밤마다 선녀가 내려와서 목욕을하고 꽃사슴과 이 못에서
놀았다는 생각을하니 유토피아가 아니었던가...
우리나라의 전설은 낭만이 있고 희망이있고 그래서 자연을 동경하게되는가보다.
한라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살아가는 인간들이 한심하다.
저 아래에서 싸우고 시기하고 고집을 앞세우면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불상하다.
자연에 신뢰하고 왜곡된 삶을 살아가지 아니 했으면 좋겠다.
나라는 존재는 너무나 미약하다.
제행무아(諸行無我)라는 불가의 언어에 잠시 생각을하게된다.
백록담 물에 손을 담가보기위하여 내려가려고하니 회양목같은 노가리,시러미,
백엽나무---안내자의 말---
자라지 못하는 고산식물로 자라고있다.
백록담 못에 손을 담가보았다.너무나 차자.맛도 보기도했다.
신비스럽다.
돌틈사이로는 얼음이 있다.
춥다.
백록담의 넓이는 30정보라고한다.
못 밑에서 위로 보이는 높이는 40m,수심은 최고가 2m50cm,둘래는 5십여분이면
돌아볼수가있다고한다.이렇게 좋은 날씨는 한달에 한두번이란다.
여러분들은 축복받은 대학생들이라고 강조하시는 분은 김대옥(金大玉)님이시다.
제주도 한라산 할망은 변덕스러운 할머니라 좋은 날씨가 없다고한다.
백록담에 우리들은 둘러 앉아서 가져온 점심을 하면서 백록담에 대한
신비한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선두와 후미의 시간 차이는 2시간 간격이다.
오후1시50분 백록담을 출발하여 관음사길을 택했다.
험준한 절벽길을 서로가 손을 잡고 하산하길 40여분 왕관릉(王冠陵)이라는 곳에서 잠시
쉬면서 주위의 경관에 취해본다.왕관처럼 생긴 바위를 바라보고 푸른 계곡을 내려다보고...
졸졸흐르는 샘물로 목을 축이기도하면서 하산은 계속되었다.
삼각봉을 바라보면서 용진각을 지나 개미등에 도착하니 3시다.
울창한 숲으로 첩첩 산중과 절벽이다.개미등을 출발하여 3시40분에 탐라계곡에 도착했다.
안내자에 의하면
금년 여름 고등학생이 등산을하다가 갈증이 심하여 할아버지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는
마침 할아버지도 물이 없어서 물을 구하기위하여 계곡을 타고 내려가다가 할아버지는
발을 헛디디고 말았습니다.할아버지는 죽고 고등학생은 나무가지를 휘어잡아서
살았다고하면서 안내자는 계곡으로 무심히 시선을 보낸다.
그래서 여기가 죽음의 계곡이라고하면서 모두가 조심하면서 걷도록 당부 당부를 한다.
가을 단풍이 아름답다.
이름 모르는 나무 숲사이를 지니면서 가을을 만끽하고있다.
죽음의 계곡을 지나서 얼마쯤 하산을했을까 방목을하는 목장도 보이고,특히 가을 바람에
물결치는 억새풀은 이 가을에 최고의 선물이다.
나는 이러한 곳에서 살것이다.
해가 지는 가을 저녁 억새풀이 물결치는 들을 지나서 관음사(觀音寺)로 가는 길목 커다란
소나무 아래에서 손을 흔들어 반겨 맞아주시는 김교수님의 모습...
뛰어가서 마주했을 때 첫말씀"사고는 없었느냐..."
함께 한라산을 등반 못하시고 관음사에서 우리들을 기다리면서 얼마나 걱정이 많았으면
"사고없었느냐..."는 물음이였을까?김교수님의 표정은 잊힐리야 잊을수가 없다.
일진이 관음사에 도착하니 4시50분이다.3시간이 소요되었다.
일진으로 함께 도착한 6명은 다음과 같다. 이하림.정달수.구광서.김영애.오영숙.정동파...
한편 나는 정달수와 함께 관음사에 참배하고 관음사 정자에서 억새풀이 저녁 노을에
물결치는 아름다움에 취했다.고등학교때 정달수씨는 이 정자에서 잠을 자기도했다면서
지난 이야기를 하기도했다.
우리 일행은 5시30분에 관음사를 출발하여 탐라여관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