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마음을 다스리는 종교이다. 대승불교의 최상의 경전인 『법화경』제 16장 ‘여래의 수명’편에 보면 진리의 절대적인 측면에 대한 내용이 자세하게 설해져 있는데 이와 같이 부처님은 열반을 하신지 무려 2천 5백 여 년이 지났지만, 우리 곁에 여전히 머무르며 병든 이와 어리석은 중생들을 교화하고 그 마음을 치유하고 계신다.
“모든 천신과 사람들 아수라들은 여래가 석가족의 궁전에서 나와 멀지 않은 도량에서 6년이란 고행 끝에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지만 비유컨대, 참으로 내가 성불을 이룬 것은 한량없고 그지없는 백 천만 억겁 나유타겁 (셀 수 없는 시간) 이전이다”
부처님은 이미 숫자로도 알 수 없고 생각으로 미칠 수 없는 세계 이전에 성불을 하셨으며 그 인연으로 인해 또 다시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우리는 이 경전에서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하나의 큰 진리를 발견 할 수 있는데 부처님의 존재는 생사를 뛰어 넘어 과거와 현재 미래에도 항상 머물러 계신다는 것이다.
“여래는 여래가 해야 할 일을 잠시도 쉬지 않았다. 성불을 한지도 헤아릴 수 없이 오래 되었으며 수명은 한량없는 아승지겁 동안에 머물러 멸하지 않는다. 다만, 여래가 열반을 하지 않고 산다면 박덕한 사람들이 선근(善根)을 심지 않아 가난하고 미천하여 오욕(五慾)락을 탐하고 허황한 소견에 빠질 것이다. 그러므로 박덕한 사람들은 한량없는 백 천만 억겁이 지나도 여래를 보기도 하고 혹 보지 못하기도 한다.”
부처님은 비록 열반하셨으나 이는 생사의 어리석음을 가르쳐 주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부분이다. 만약, 부처님이 열반을 하지 않고 살아계신다면, 생사를 모르는 박덕한 사람들은 선근(善根)을 심기는커녕, 오직 자신만의 부귀영화를 위해 온갖 나쁜 짓을 하게 되고 마침내는 여래의 진리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강조하셨다. 그럼, 누가 이 여래의 진리를 제대로 보고 그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남을 돕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삶, 항상 선근을 심는 사람만이 그 여래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깊고 아득한 진리의 말씀인가. 부처님은 끝으로 이 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래를 만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중생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사모하는 마음들을 품어 여래를 갈망하고 선근을 심게 되므로 실제로는 열반하는 것이 아니지만 열반한다고 말한다. 모든 여래의 법도 모두 이와 같아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므로 진실하여 허황하지 않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듯이 착한 마음이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결코 여래를 만날 수 없다. 하지만 누구든지 끊임없이 신심을 내고 선근을 심는 다면 여래를 만날 수가 있다. 천만 다행스럽게도, 우리 ‘108산사 순례’ 회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불교성지 순례를 통해 여래를 만나고 있다. 또한 소년 소녀가장을 돕고 농촌을 사랑하고 병든 이를 도와주고 있다.
이것이 곧 『법화경』에 실린 부처님의 진리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모든 사람들이 남을 돕고 포용하는 보살의 삶을 산다면 누구나 부처가 되고 불보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법화경』의 위대한 진리이다.
불교는 앞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 병든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오늘날 중생들의 꿈이다. 병은 의사에게 치료하면 낫지만 병든 마음은 약으로 듣지 않는다. 오직 남을 위하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참회로써 선근(善根)을 실천하여야만 한다. 이 계기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108 산사순례’이다. 즉,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나서는 길인 것이다.
지난여름, 나는 대상포진 때문에 몸이 아파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그 때 병든 이의 고통을 알게 되었다. 108산사순례기도회 창립 4주년을 계기로 병마로 고통 받는 이들을 돕기 위해 약사여래 보시금을 신설하기로 했다. 이 또한 부처님의 뜻이 아니겠는가!
선묵 혜자 스님 108산사순례기도회 회주·도선사 주지
1067호 [2010년 10월 13일 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