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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파 시 와 글

강화도 고비마을이 내 고향입니다.

by 동파 2006.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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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고비마을이 내 고향입니다 / 동파 강화도 읍내에서 서쪽으로 나루고개를 넘어가면 산골짜기에 조용한 마을이 있습니다. 고비마을(古阜洞)입니다. 뒤로는 연개소문이 무술을 연마 했다는 고려산과 또 한쪽에는 혈구산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또 바다 같은 고려지라는 저수지가 있고 멀리 벌판을 지나면 아름다운 서해 바다가 있습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가 있고, 보문사 가는 외포리의 작은 포구가 있습니다. 여기 천년고찰인 적석사 낙조대에 올라서 고향을 바라보면서 동안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여 봅니다. 뒷집에 봉자와 서울 유학을하여 서울에서 중학교 시절에 5.16혁명을 맞이하고 방학때면 고향에 내려와서 외할아버지로 부터 명심보감,소학을 배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한문실력이 있었고, 붓글씨와 문학을 하던 사춘기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고비마을이라는 시를 여기 소개합니다. 古阜洞 四 業 俱 成 此 里 仁 勤 勞 治 産 未 爲 貧 百 谷 泉 源 終 止 野 二 山 高 茸 別 開 隣 夷 俗 不 通 人 恒 古 地 靈 特 惠 士 常 新 吾 黃 樓 逢 十 餘 世 天 佑 不 壓 續 出 頻 고비마을 사농공상 4업으로 이루어진 이 어진 마을 부지런하고 가업을 잘 가꾸는 그래서 가난을 모르는 고비마을 많은 골짜기마다에 샘 솟고 들판이 끝난 고려산과 혈구산이 높아 솟아 열린 고비마을 오랑케와 통하지 않고 항상 옛 풍습을 지키는 은혜받는 이 땅 항상 선비가 새롭게 글 읽는 고비마을 오황루에서 하 많은 세월을 만나 하늘의 도움으로 항상 어려움이 없었던 마을 고비마을…… 이 시를 읽을 때면 할아버지 생각과 서당(사랑방)에서 글을 배우던 겨울 방학생활이 생각남니다. 앞마당에는 장준(강화도 감)이라는 감나무 세그루가 있었습니다. 큰감나무는 누나의 감나무었고,가운데 멋이 있고 잘 생긴 감나무는 형님의 감나무었고,내 감나무는 볼품 없는 작은 감나무가 내 감나무었습니다. 서해 황혼이 물들때면 멍석을 깔고 할머니 무릎을 베고 별을 헤는 밤이 있었습 니다. 역시 큰별은 누나의 별이고,잘 생긴 별은 형님의 별이면서, 내별은 북두칠성이 있는 곳에 작은 별이 내 별입니다. 뒷동산에는 밤나무가 많았고,이른 새벽에는 밤알을 줍기 위해서 뒷동산에 올라 밤알을 줍던 때가 있었습니다. 봉당에는 이쁜 밤항아리가 세개 있었고,역시 누님,형님,내것을 구분하는 밤항아리었고,밤항아리에 밤을 채우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역시 내 밤항아리에는 늘 가득했지만 하루밤을 자고나면 세항아리는 똑 같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형님이 꺼내서 똑같이 만들고 했던 것을 알지는 못했죠? 이렇게 세개의 별은 열심히 공부도 하고, 결혼하여 자식들을 낳고 각자가 갈길에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내 하나뿐인 형님은 그렇게 잘 생긴 형님은 쉰이라는 나이에 간암이라는 병명으로 별하나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큰별은 미국 마이아미에 살고, 잘생긴 별은 떨어지고,못생긴 별만 융통머리 없게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녀와 충분한 대화를 못해보고 열심히 앞만 보고 걸었습니다. 아들 우철이는 어린시절에 많은 대화를 못하고 내 미국생활에 아버지를 얼마나 그리워하면서 살았을까? 지금 딸아이 우영이는 피아노를 하면서 혼자서 예술의 길을 가고 있는 또 유학의 길을 택하기 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면 모두가 각자의 길에 충실한 삶을 영유하고 있는 것에 감사 할 뿐이다. 오늘은 여기 내고향의 사진을 보면서 할머니 손잡고 오르던 천년고찰 적석사에서 고향마을을 내려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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