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김길웅, 칼럼니스트
금요일이 달라진 지 오래다.
한 주를 마무리한다.
주 5일제 이전의 금요일만 살았던 내게 금요일은 평범한 요일,
토요일 전날이란 영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말을 준비하는
날로 자리를 틀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요즈음의 금요일은 이전의 요일로 자리해 있지 않다.
산을 탄다면, 그사이 가파른 능선을 넘어 내려 마지막 발짝을
내디뎌야 할 임계점에 다다른 그 시점, 그 지점이다.
직장인에게 금요일은 위안과 여백의 자락이다.
뒷날이 토요일, 그 다음 날이 일요일. 노동에서 헤어나 쉴 수 있다는
것의 편안함처럼 즐거운 게 어디 있을까. 지친 몸에 쉼을 주어야 한다.
다 내려놓고 모두 덮어버리며 진득하게 버텨온 힘을 놓아버리고
멈춰야 한다. 심신을 홀가분하게 방임하는 것은 다시 부리기 위한 것,
준비돼 있다. 금요일이 딱이다. 한 달에 네 번 흔쾌한 쉼은 열락이고
평화이고 자유다. 몸속 세포들이 파도로 일어나기 시작한다.
마음은 일상의 소소한 것들에서 떠나 밑으로 밑으로 가라앉아 깊은
강물로 소리 없이 흐르리라.
이제 내겐 하는 일이 없으니, 창가에 기대어 먼 산이나 바라보지만,
칠십의 나이만 같아도 금요일에 바싹 다가앉을 것이다.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가파르게 일을 해왔으니, 금요일을 맞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토요일과 일요일은 협상 테이블에 마주할 테다.
갈 곳이 마뜩잖으면 눌러 앉아 있어도 되고, 특별히 맛난 음식을
마련하지 않아도 된다. 가족이 모여 앉아 살아온 얘기를 되감기해
가며 그때는 “내가 너무 나갔는데 당신이 잘 견뎠어요.”라 하면 좋을
것 같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때 윽박지르는 게 아니었는데 나만
내세웠구나.”라 하면 어떨까. 분위기를 타면서 형제끼리도 사소한
일로 쌜쭉해 핏대를 올렸던 일에 대해 “그럴 일이 아니었는데….”라며
계면쩍어 하면 좋지 않을까. 대화하며 주고받는 눈빛에 고이는 진실은
얼마나 해맑은가. 아침 이슬처럼 영롱하다.
두 아들 내외도 오십 줄이니 깍듯이 어른으로 대해야지.
금요일을 신나게 하기 위해 소주 한잔하면 좋을 것이다.
안주는 걸판지게 굽고 지지고 튀기고 볶지 않아도 된다.
가까운 가게에 가 생선회 두어 접시만 사 오면 된다.
흥이 일면 길 건너 노래방에 가 두세 곡 불러 제끼면 신바람이 날 것이다.
나는 인증받은 음치이니, 탬버린이나 흔들 것이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웃음 끊이지 않는 가족 파티.
내일이 토요일, 뒷날이 일요일. 이런 도타운 후원자는 없다.
소주 한잔의 추임새로 될 일인가. 가까운 주막을 찾아 잡어탕에 두어
순배하면 좋을 테다. 부득이한 일만 없어 한데 어우러질 수 있다면,
먹고 마시는 외연을 좀 넓혀도 되지 않을까. 모여 앉는 게 어렵지
만나면 즐기는 방법은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이다.
아차, 환상이 요즈음 호우처럼 넘치겠다.
나는 여든의 고비를 돌고 있고, 더욱이 포병객 신세다.
은퇴한 지가 언젠가. 내게 금요일은 색다른 요일이 아니다.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도 몰라 막막할 때가 적지 않다.
그렇게 시간의 강물을 타고 흘러간다.
내가 나를 생각해도 한심한 것 같다.
그래도 생각이야 없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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