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보 김길웅 시인

더위가 무섭다

by 동파 2024. 8. 2.
728x90

더위가 무섭다

김길웅, 칼럼니스트

우박이 아니다. 
하늘에서 퍼붓는 작달비가 뺨을 때리는 매질이다. 
7월의 집중호우로 온 나라가 물난리다. 
집이 물에 잠기고 자동차가 떠내려가고 다리가 주저앉았다. 
산사태로 토사가 흘러내려 주택과 도로를 덮쳤다. 
지하 승강기에 갇혀 사람이 죽고 물에 휩쓸려 사람들이 실종됐는가 하면, 
하우스에 물이 차올라 흙탕물을 뒤집어쓴 농작물 앞에서 울상이 돼 있는 
농부들을 TV로 지켜보며 안쓰러워 발을 동동 굴린다. 
1960년 사라호 태풍 이래 처음 보는 물사태 앞에 노호하는 자연의 무서운 
얼굴을 목도했다. 인간이 들고 자행해 온 업보가 만들어낸 자업자득의 재앙 
앞에서 할 말을 잃는다. 빗속의 복구작업을 보며 비가 더 이어질 것이라는 
예보에 망연자실, 질린 얼굴들에 가슴 엔다. 
한동안 큰불에 이은 큰물로 나라가 깊은 시름에 빠져들었다.

제주엔 큰물보다 폭염의 나날이다. 
몇 날 며칠을 두고 34도를 오르내리는 불더위다. 
전국적으로 대구와 같은 지역은 제주뿐이다. 
갑자기 제주가 한여름 무더위로 이름을 떨치는지(?) 얄궂기 짝이 없다. 
덥다 덥다 투덜대듯 이런 여름은 처음이다. 매일 아파트 숲길을 돌던 
걷기운동도 멈춘 지 스무날이다. 매일 빠짐없이 재난안전문자가 오니 무심할 
수가 없다. 밖이 뜨겁다. 장맛비와 한낮의 불볕더위가 만나면 고온다습햐다. 
후텁지근한 날씨 앞엔 절로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일사, 열사, 온열이라는 말이 곧잘 들리는 이즈음이다. 
건강이 안 좋은 데다 잉걸불을 쏟아 붓는 것 같은 볕 아래 섰다 쓰러지면 낭패다. 
초등학생 때 여름철 애국 조회 중에 아이 하나가 쓰러져 업혀 가던 장면이 떠오른다. 
백지장처럼 하얘진 아이가 한참 뒤 고개를 푹 숙이고 교실로 돌아왔다. 
그런 사고가 잦아 겁이 났고, 끔찍했다. 잘 먹지 못 하던 시절이다. 
버틸 힘도 없었을 것이다. 뭉뚱그려 일사병이라 했다.

매일 재난문자도 한몫 거든다. 
13층을 내려야 흙을 밟는다. 
안에 갇혀 살면서 아파트 둘레를 걷자 한 자신과의 굳은 약속을 지킨다고 
현관을 나서다 몇 번 돌아섰다. 며칠 걷지 않으니 몸이 천근만근으로 둔중하다. 
이러다 두 다리 옹송그린 채 방구석 신세를 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는 날이면, 나를 거치할 다음 장소는 정해져 있지 않은가.

올여름 더위는 어지간하지 않다. 흉기가 따로 없다. 
무서워 나갈 엄두를 못 내겠다. 베란다에 기대어 불타는 여름 한낮을 바라보다 
눈을 거둬버린다. 하릴없이 더위가 누그러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글 몇 줄이라도 쓰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으니, 
내 일상의 시간표를 다시 짰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 새벽 세 시경에 깨어나 
찬물을 끼얹고 안두를 꺼당긴다. 정신이 말갛다. 감사해야 할 시간이다. 
세 시간정도로 마련했다. 몸도 순순히 받아들인다. 
시든 수필이든 몇 줄 끄적이고 나면 심신이 홀가분하다. 
새벽에 쓴 글이 꽤 늘어나 마음이 충만하다. 등단 30년에 스물이 넘는 ‘상재(上宰)’를 
이뤘으니, 이제 책엔 별로 욕심이 없지만, 글이 모이면, 그때 형편을 보리라.

무섭다. 
오늘도 푹푹 찌겠다. 
거실바닥이라도 돌아야지.

'동보 김길웅 시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팔의 탁구선수  (0) 2024.08.16
'삐약이' 신유빈 화이팅!  (2) 2024.08.09
베개 타령  (1) 2024.07.26
일상 회복  (0) 2024.07.20
초등학생이 의대 준비라니  (2) 2024.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