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地澤臨卦
九二는 咸臨이니 吉하여 无不利하리라.
구이(九二)는 ‘함림(咸臨)’이니, 길(吉)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으리라.
【本義】 剛得中而勢上進이라 故其占吉而无不利也라.
강(剛)이 중(中)을 얻고 세(勢)가 위로 나아가기 때문에 그 점(占)이 길(吉)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象曰 咸臨吉无不利는 未順命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함림길무불리(咸臨吉无不利)’는 명령을 순히
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
【本義】 未詳이라.
미상이다.
六三은 甘臨이라 无攸利하니 旣憂之라 无咎리라.
육삼(六三)은 닮으로[기쁨으로] 임(臨)하여 이로운 바가 없으나 이미
근심하므로 허물이 없으리라.
【本義】 陰柔不中正而居下之上하여 爲以甘說臨人之象이니
其占固无所利나 然能憂而改之則无咎也라 勉人遷善하니 爲敎深矣라.
음유(陰柔)로 중정(中正)하지 못하면서 하괘(下卦)의 위에 거하여
감열(甘說)로 사람에게 임(臨)하는 상(象)이 되니, 그 점(占)이 진실로
이로운 바가 없다. 그러나 걱정하여 고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사람에게 개과천선(改過遷善)하기를 권면하였으니, 가르침이 깊다.
象曰 甘臨은 位不當也요 旣憂之하니 咎不長也리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기쁨으로 임(臨)함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요, 이미 걱정하니 허물이 오래가지 않으리라.”
【傳】 陰柔之人이 處不中正而居下之上하고 復乘二陽하니
是處不當位也라 旣能知懼而憂之면 則必强勉自改라 故其過咎不長也라.
음유(陰柔)한 사람이 처함이 중정(中正)하지 못하면서 하괘(下卦)의
위에 거하고 다시 두 양(陽)을 탔으니, 이는 처함이 자리에 마땅하지
않은 것이다. 이미 두려움을 알고 근심하면 반드시 힘써 스스로
고칠 것이다. 그러므로 그 허물이 오래가지 않는 것이다.
六四는 至臨이니 无咎하니라.
육사(六四)는 임(臨)함이 지극함이니, 허물이 없다.
【本義】 處得其位하고 下應初九하여 相臨之至하니 宜无咎者也라.
처함이 제자리를 얻고 아래로 초구(初九)와 응(應)하여 서로 임(臨)함이
지극하니, 마땅히 허물이 없을 자이다.
象曰 至臨无咎는 位當也일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지림무구(至臨无咎)’는 자리가 마땅하기 때문이다.”
【傳】 居近君之位는 爲得其任이요 以陰處四는 爲得其正이요
與初相應은 爲下賢이니 所以无咎니 蓋由位之當也라.
군주(君主)와 가까운 자리에 거함은 임무를 얻음이 되고 음(陰)으로
사(四)에 처함은 정(正)을 얻음이 되며 초(初)와 서로 응(應)함은
현자(賢者)에게 낮춤이 된다. 이 때문에 허물이 없는 것이니,
이는 지위가 마땅하기 때문이다.
六五는 知(智)臨이니 大君之宜니 吉하니라.
육오(六五)는 지혜로 임(臨)함이니, 대군(大君)의 마땅함이니 길(吉)하다.
【本義】 以柔居中하고 下應九二하여 不自用而任人하니 乃知之事而大君之宜니
吉之道也라.
유(柔)로써 중(中)에 거하고 아래로 구이(九二)에 응(應)하여 스스로
지혜를 쓰지 않고 남에게 맡기니, 이는 지혜로운 일로 대군(大君)의
마땅함이니, 길(吉)한 도(道)이다.
象曰 大君之宜는 行中之謂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대군(大君)의 마땅함은 중도(中道)를 행함을 이른다.”
【傳】 君臣道合은 蓋以氣類相求라 五有中德이라 故能倚任剛中之賢하여
得大君之宜하여 成知臨之功하니 蓋由行其中德也라 人君之於賢才에
非道同德合이면 豈能用也리오.
군신(君臣)이 도(道)가 합함은, 기류(氣類)로써 서로 구하는 것이다.
오(五)가 중덕(中德)이 있기 때문에 강중(剛中)한 현자(賢者)에게 의지하고
맡겨서 대군(大君)의 마땅함을 얻어 지혜로 임(臨)하는 공(功)을 이루는
것이니, 중덕(中德)을 행하기 때문이다. 인군(人君)이 현재(賢才)에게
있어서 도(道)가 같고 덕(德)이 합하지 않는다면 어찌 등용(登用)하겠는가.
上六은 敦臨이니 吉하여 无咎하니라.
상육(上六)은 임(臨)함에 돈독함이니, 길(吉)하여 허물이 없다.
【本義】 居卦之上하고 處臨之終하여 敦厚於臨하니 吉而无咎之道也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괘(卦)의 위에 거하고 임(臨)의 마지막에 처하여 임(臨)함에
돈후(敦厚)히 하니, 길(吉)하여 허물이 없는 도(道)이다. 그러므로
그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敦臨之吉은 志在內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돈림(敦臨)의 길(吉)함은 뜻이 안에 있기 때문이다.”
【傳】 志在內는 應乎初與二也니 志順剛陽而敦篤이면 其吉可知也라.
뜻이 안에 있다는 것은 초효(初爻)와 이효(二爻)에 응(應)함이니,
뜻이 강양(剛陽)에게 순종하여 돈독하면 그 길(吉)함을 알 수 있다.
김재홍 박사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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