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天水訟卦
p58~
訟은 有孚나 窒하여 척하니 中은 吉하고 終은 凶하니,
송(訟)은 성실함이 있으나 막혀서 두려우니 중도(中道)에 맞으면
길(吉)하고 끝까지 함은 흉하니,
窒:막힐질 ?척:두려워 할 척
【傳】 訟之道는 必有其孚實이니 中无其實이면 乃是誣妄이니
凶之道也라 卦之中實은 爲有孚之象이라 訟者는
與人爭辯(辨)而待決於人이니 雖有孚나 亦須窒塞未通이라
不窒則已明하여 无訟矣리라 事旣未辯이면 吉凶을
未可必也라 故有畏?이라 中吉은 得中則吉也요 終凶은
終極其事則凶也라.
송(訟)의 도(道)는 반드시 성실이 있어야 하니,
심중에 성실함이 없으면 이는 속이고 망령됨이니, 흉한 도(道)이다.
괘(卦)의 가운데가 꽉 찬 것은 유부(有孚)의 상(象)이 된다.
송(訟)은 남과 더불어 쟁변(爭辯)하면서 남에게 결단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니, 비록 성실함이 있으나 또한 모름지기 막혀서
통하지 못한다. 막히지 않았다면 이미 밝아서 다툼이 없을 것이다.
일이 이미 분별되지 않았다면 길흉(吉凶)을 기필할 수 없다.
그러므로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중길(中吉)’은 중도(中道)를
얻으면 길(吉)한 것이요, ‘종흉(終凶)’은 그 일을 끝까지 하면
흉한 것이다.
利見大人이요 不利涉大川하니라.
대인(大人)을 봄이 이롭고 대천(大川)을 건넘은 이롭지 않다.
【本義】 訟은 爭辯也라 上乾下坎하니 乾剛坎險이라
上剛以制其下하고 下險以伺其上하며 又爲內險而外健하고
又爲己險而彼健하니 皆訟之道也라 九二中實호되 上无應與하고
又爲加憂라 且於卦變에 自遯而來하니
爲剛來居二而當下卦之中하니 有有孚而見窒, 能懼而得中之象이라
上九過剛하여 居訟之極하니 有終極其訟之象이요
九五剛健中正하여 以居尊位하니 有大人之象이요
以剛乘險하고 以實履陷하니 有不利涉大川之象이라
故戒占者 必有爭辯之事而隨其所處하여 爲吉凶也라.
송(訟)은 쟁변하는 것이다.
위는 건(乾)이고 아래는 감(坎)이니,
건(乾)은 강(剛)하고 감(坎)은 험(險)하다.
위는 강(剛)함으로 아래를 제재하고 아래는 험(險)함으로
위를 살피며, 또 안은 험하고 밖은 굳세며, 또 자기는 험하고
상대는 굳셈이 되니, 모두 쟁송하는 도(道)이다.
구이(九二)는 중실(中實)하나 위에 응여(應與)가 없고 또 더
근심함이 된다. 또 괘변(卦變)에 있어서 돈괘(遯卦)[ ]로부터
왔으니, 강(剛)이 와서 이(二)에 처하여 하괘(下卦)의 중(中)에
당하였으니, 성실함이 있으나 막힘을 당하고 능히 두려워하여
중(中)을 얻는 상(象)이 있다. 상구(上九)는 지나치게 강하여
송(訟)의 극(極)에 처하였으니 송사(訟事)를 끝까지 하는
상(象)이 있고, 구오(九五)는 강건(剛健)하고 중정(中正)하여
존위(尊位)에 거하였으니 대인(大人)의 상(象)이 있으며,
강(剛)으로서 험(險)을 타고 실(實)로서 함(陷)을 밟았으니
대천(大川)을 건넘이 이롭지 않은 상(象)이 있다.
그러므로 점치는 이에게 반드시 쟁변(爭辯)할 일이 있는데
대처하는 바에 따라 길(吉)하거나 흉(凶)하다고 경계한 것이다.
彖曰 訟은 上剛下險하여 險而健이 訟이라.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송(訟)은 위는 강하고 아래는 험하여
험하고 굳셈이 송(訟)이다
【本義】 以卦德으로 釋卦名義라.
괘덕(卦德)으로 괘명(卦名)의 뜻을 해석하였다.
訟有孚窒?中吉은 剛來而得中也요,
‘송유부질척중길(訟有孚窒?中吉)’은 강(剛)이 와서 중(中)을 얻은
것이요,
【傳】 訟之道固如是요 又據卦才而言하면 九二以剛으로
自外來而成訟하니 則二乃訟之主也라 以剛處中은 中實之象이라
故爲有孚라 處訟之時하여 雖有孚信이나 亦必艱阻窒塞而有?懼하리니
不窒則不成訟矣라 又居險陷之中하니 亦爲窒塞?懼之義라 二以陽剛으로
自外來而得中하니 爲以剛來訟而不過之義니 是以吉也라
卦有更取成卦之由爲義者하니 此是也니 卦義不取成卦之由면
則更不言所變之爻也라 據卦辭하면 二乃善也로되 而爻中엔
不見其善하니 蓋卦辭는 取其有孚得中而言하니 乃善也요
爻則以自下訟上爲義하니 所取不同也일새라.
송(訟)의 도(道)가 진실로 이와 같고, 또 괘재(卦才)를 근거하여 말하면
구이(九二)가 강(剛)으로서 밖으로부터 와서 송(訟)을 이루었으니,
이(二)는 바로 송(訟)의 주체이다. 강(剛)으로서 중(中)에 처함은
중실(中實)의 상(象)이므로 ‘유부(有孚)’라 한 것이다.
송(訟)의 때에 처하여 비록 부신(孚信)이 있으나 또한 반드시 어렵고
막혀서 두려움이 있을 것이니, 막히지 않으면 송(訟)을 이루지 않을
것이다. 또 험함(險陷)의 가운데에 처하였으니,
이 역시 막히고 두려워하는 뜻이 된다.
이(二)가 양강(陽剛)으로 밖으로부터 와서 중(中)을 얻었으니,
강(剛)이 와서 쟁송을 하나 지나치게 하지 않는 뜻이 되니,
이 때문에 길(吉)한 것이다. 괘(卦) 중에 다시 성괘(成卦)의 이유를
취하여 뜻을 삼은 경우가 있으니, 이 괘(卦)니, 괘(卦)의 뜻에
성괘(成卦)의 이유를 취하지 않으면 다시 변한 효(爻)를 말하지 않는다.
괘사(卦辭)를 근거하면 이(二)는 바로 선(善)한 것이나 효(爻)
가운데에서는 선(善)함을 볼 수 없다. 괘사(卦辭)는
‘유부득중(有孚得中)’을 취하여 말했으니 바로 선(善)한 것이고,
효사(爻辭)는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과 쟁송함을 가지고 뜻을
삼았으니, 취한 바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終凶은 訟不可成也요,
끝까지 하면 흉(凶)함은 송사(訟事)를 끝까지 이루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요,
【傳】 訟은 非善事요 不得已也니 安可終極其事리오
極意於其事則凶矣라 故로 曰不可成也라 하니 成은 謂窮盡其事也라,
송(訟)은 좋은 일이 아니고 부득이해서 하는 것이니,
어찌 그 일을 끝까지 하겠는가. 다투는 일에 뜻을 다하면 흉하다.
그러므로 ‘이루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으니,
성(成)은 그 일을 끝까지 함을 이른다.
利見大人은 尙中正也요,
대인(大人)을 봄이 이로움은 숭상함이 중정(中正)하기 때문이요,
【傳】 訟者는 求辯其是非也니 辯之當이 乃中正也라 故利見大人이니
以所尙者中正也라 聽者[一有或字]非其人이면 則或不得其中正也리라
中正大人은 九五是也라.
송(訟)은 그 옳고 그름을 분별해 주기를 구하는 것이니, 분별함이 마땅한
것이 바로 중정(中正)이다. 그러므로 대인(大人)을 봄이 이로우니,
숭상하는 바가 중정(中正)하기 때문이다. 쟁송(爭訟)을 다스리는
이가 훌륭한 사람이 아니면 혹 중정(中正)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중정(中正)한 대인(大人)은 구오(九五)가 이것이다.
不利涉大川은 入于淵也라.
대천(大川)을 건넘이 이롭지 않음은 못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淵:못 연
【本義】 以卦變卦體卦象으로 釋卦辭라.
괘변(卦變)과 괘체(卦體)와 괘상(卦象)으로 괘사(卦辭)를 해석하였다.
象曰 天與水違行이 訟이니 君子以하여 作事謀始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하늘과 물이 어긋나게 감이 송(訟)이니,
군자(君子)가 이로써 일을 하되 처음을 잘 도모한다.
違:어길 위 謀:꾀할 모
【本義】 天上水下하여 其行相違하니 作事謀始면 訟端이 絶矣라.
하늘은 위로 올라가고 물은 아래로 흘러가서 가는 것이 서로 어긋나니,
일을 할 때에 처음을 잘 도모하면 분쟁의 발단이 없어질 것이다.
김재홍 박사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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