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水蒙(4)
p47
蒙은 亨하니 匪我求童蒙이라 童蒙求我니 初筮어든 告(곡)하고
再三이면 瀆이라 瀆則不告이니 利貞하니라.
몽(蒙)은 형통하니, 내가 동몽(童蒙)에게 구하는 것이 아니라
동몽(童蒙)이 나에게 구함이니, 처음 묻거든 고해 주고 두 번 세 번
물으면 번독하다. 번독하면 고해주지 않을 것이니, 정(貞)함이 이롭다.
蒙:어릴 몽.어리석다.匪:아닐비.筮:점칠서.瀆:더럽힐 독
【本義】 艮亦三畫卦之名이니 一陽이 止於二陰之上이라
故로 其德이 爲止요 其象이 爲山이라 蒙은 昧也니 物生之初에
蒙昧未明也라 其卦以坎遇艮하니 山下有險은 蒙之地也요
內險外止는 蒙之意也라 故로 其名爲蒙이라 亨以下는
占辭也라 九二는 內卦之主로 以剛居中하니 能發人之蒙者요
而與六五로 陰陽相應이라 故로 遇此卦者는 有亨道也라 我는 二也요
童蒙은 幼穉而蒙昧니 謂五也라 筮者明이면 則人當求我而其亨在人이요
筮者暗이면 則我當求人而亨在我니 人求我者는 當視其可否而應之요
我求人者는 當致其精一而扣之며 而明者之養蒙과 與蒙者之自養이
又皆利於以正也라.
간(艮) 또한 3획괘의 이름이니, 하나의 양(陽)이 두 음(陰)의 위에
멈춰 있다. 그러므로 그 덕(德)이 그침이 되고 그 상(象)이 산(山)이 된다.
몽(蒙)은 몽매함이니, 사물이 생긴 초기에 몽매하여 밝지 못한 것이다.
이 괘(卦)는 감(坎)으로서 간(艮)을 만났으니, 산(山) 아래에 험함이 있음은
몽(蒙)의 처지요, 안은 험하고 밖은 그침은 몽(蒙)의 뜻이다.
그러므로 그 이름이 몽(蒙)이 된 것이다. 형이하(亨以下)는 점괘(占卦)의
내용이다. 구이(九二)는 내괘(內卦)의 주체로 강(剛)으로서 중(中)에
거하였으니, 남의 몽매함을 개발해 줄 수 있는 것이며, 육오(六五)와
더불어 음양(陰陽)이 서로 응(應)하므로 이 괘를 만난 이는 형통할
도(道)가 있는 것이다. 아(我)는 이(二)요, 동몽(童蒙)은 유치하고 몽매한
이이니, 오(五)를 이른다. 점치는 이가 지혜가 밝으면 남이 마땅히
나에게 구하여 그 형통함이 남에게 있을 것이요, 점치는 이가 어두우면
내가 마땅히 남에게 구하여 형통함이 나에게 있을 것이니, 남이 나에게
구할 경우에는 마땅히 가부(可否)를 보아 응(應)할 것이요, 내가 남에게
구할 경우에는 마땅히 정일(精一)함을 지극히 하여 물을 것이며 밝은
이가 몽매한 이를 길러줌과 몽매한 이가 스스로 기름이 또 모두
정도(正道)를 씀이 이로운 것이다.
彖曰 蒙은 山下有險하고 險而止 蒙이라.
〈단전(彖傳)〉에 말하였다. “몽(蒙)은 산(山) 아래에 험함이 있고
험하고 그친 것이 몽(蒙)이다.
【本義】 以卦象卦德으로 釋卦名하니 有兩義라.
【본의】 괘상(卦象)과 괘덕(卦德)으로 괘명(卦名)을 해석하였으니,
두 가지 뜻이 있다.
蒙亨은 以亨行이니 時中也요 匪我求童蒙童蒙求我는 志應也요,
‘몽형(蒙亨)’은 형통함으로써 행함이니, 때를 얻었고 중도(中道)에 맞기
때문이요, 내가 동몽(童蒙)에게 구하는 것이 아니라 동몽(童蒙)이 나에게
구함은 뜻이 응(應)함이요
【傳】 山下有險하니 內險하여 不可處하고 外止하여 莫能進하여
未知所爲라 故로 爲昏蒙之義라 蒙亨以亨行時中也는 蒙之能亨은
以亨道行也라 所謂亨道는 時中也니 時는 謂得君之應이요
中은 謂處得其中이니 得中則[一有得字]時也라
匪我求童蒙童蒙求我志應也는 二以[一无以字]剛明之賢으로
處於下하고 五以童蒙居上하니 非是二求於五요
盖五之志應於二也라 賢者在下하니 豈可自進以求於君이리오
苟自求之면 必无能信用之理라 古之人이
所以必待人君致敬盡禮而後往者는 非欲自爲尊大라
蓋其尊德樂道不如是면 不足與有爲也일새니라.
산(山) 아래에 험함이 있으니, 안은 험하여 처할 수 없고 밖은
그쳐서 나아갈 수 없어 어찌 할 바를 모른다. 그러므로 혼몽(昏蒙)의
뜻이 된다. ‘몽형이형행시중야(蒙亨以亨行時中也)’는
몽(蒙)이 형통함은 형통할 도(道)로써 행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형통할 도(道)라는 것은 시중(時中)이니, 시(時)는
군주(君主)의 응(應)을 얻음을 이르고, 중(中)은 처함이
중(中)을 얻음을 이르니, 중(中)을 얻으면 때에 맞는다.
‘비아구동몽(匪我求童蒙) 동몽구아지응야(童蒙求我志應也)’는
이(二)가 강명(剛明)의 현자(賢者)로서 아래에 처하였고
오(五)가 동몽(童蒙)으로서 위에 거하였으니,
이는 이(二)가 오(五)를 구하는 것이 아니요 오(五)의 뜻이
이(二)에 응(應)한 것이다. 현자(賢者)가 아래에 있으니,
어찌 스스로 나아가 군주(君主)에게 써주기를 구하겠는가?
만약 스스로 등용해주기를 구한다면 반드시 군주가
신용(信用)할 리가 없다. 옛사람이 반드시 인군(人君)이
공경을 지극히 하고 예(禮)를 극진히 하기를 기다린 뒤에야
간 까닭은 스스로 존대하게 하려고 함이 아니라,
인군(人君)이 덕(德)을 높이고 도(道)를 즐거워함이
이와 같지 않으면 더불어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初筮告은 以剛中也요 再三瀆瀆則不告은 瀆蒙也일새니,
처음 묻거든 고해줌은 강중(剛中)하기 때문이요,
재삼(再三) 물으면 번독함이니, 번독하면 고해주지 않음은
몽(蒙)을 번독하게 하기 때문이니,
【傳】 初筮는 謂誠一而來하여 求決其蒙이니
則當以剛中之道로 告而開發之요 再三은 煩數(삭)也니
來筮之意煩數하여 不能誠一이면 則瀆慢矣니 不當告也라
告之라도 必不能信受요 徒爲煩瀆이라 故로 曰瀆蒙也니
求者, 告者 皆煩瀆矣라.
‘초서(初筮)’는 정성스럽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와서
그 몽매함을 결단해 주기를 구하는 것이니, 마땅히
강중(剛中)한 도(道)로써 고(告)하여 개발시켜 주어야 된다.
‘재삼(再三)’은 번거롭게 자주함이니, 와서 묻는 뜻이
번삭(煩數)하여 정성스럽고 한결같지 못하면 독만(瀆慢)이 되니,
고해주지 말아야 한다. 고해주더라도 반드시 믿고 받아들이지
않아서 한갓 번독함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독몽(瀆蒙)’이라
하였으니, 구하는 자와 고해주는 자가 모두 번독함이 된다.
蒙以養正이 聖功也라.
어릴 때에 바름을 기름이 성인(聖人)이 되는 공부이다.
【本義】 以卦體로 釋卦辭也라 九二以可亨之道로 發人之蒙하고
而又得其時之中하니 謂如下文所指之事는 皆以亨行而當其可也라
志應者는 二는 剛明이요 五는 柔暗이라 故二不求五而五求二하여
其志自相應也라 以剛中者는 以剛而中이라 故로 能告而有節也라
瀆은 筮者二三이면 則問者固瀆而告者亦瀆矣라 蒙以養正은
乃作聖之功이니 所以釋利貞之義也라.
괘체(卦體)로써 괘사(卦辭)를 해석하였다.
구이(九二)가 형통할 수 있는 도(道)로 남의 몽매함을 개발시키고
또 그 때의 알맞음을 얻었으니, 하문(下文)에서 가리킨 일은
모두 형통할 도로써 행하여 그 가(可)함에 마땅한 것이다.
‘지응(志應)’은 이(二)는 강명(剛明)하고 오(五)는 유암(柔暗)하다.
그러므로 이(二)가 오(五)에게 구하지 않고 오(五)가 이(二)에게
구하여 그 뜻이 서로 응(應)하는 것이다. ‘이강중(以剛中)’은
강(剛)하고 중도(中道)에 맞기 때문에 능히 고해줌에 절도가
있는 것이다. ‘독(瀆)’은 점치는 이가 두 번 세 번 치면 묻는
이도 진실로 번독하고 고해주는 이도 번독하다. 어릴 때에
바름을 기름이 바로 성인(聖人)이 되는 공부이니,
이는 ‘이정(利貞)’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象曰 山下出泉이 蒙이니 君子以하여 果行하며 育德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산(山) 아래에서 샘물이 나옴이
몽(蒙)이니, 군자(君子)가 이로써 행실을 과단성 있게 하며
덕(德)을 기른다.”
【本義】 泉은 水之始出者니 必行而有漸也라.
천(泉)은 물이 처음 나온 것이니, 반드시 흘러가되 점점함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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