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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 上經

周易(上經)~重地坤卦(2)~2

by 동파 2022.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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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六은 履霜하면 堅氷至하나니라.
초육(初六)은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이른다.

【本義】 六은 陰爻之名이니 陰數는 六老而八少라 故로 謂陰爻爲六也라
 霜은 陰氣所結이니 盛則水凍而爲氷이라 此爻는 陰始生於下하여 
其端甚微로되 而其勢必盛이라 故로 其象이 如履霜則知堅氷之將至也라
 夫陰陽者는 造化之本이니 不能相无요 而消長有常하니 
亦非人所能損益也라 然이나 陽主生하고 陰主殺하니 
則其類有淑慝之分焉이라 故로 聖人作易에 於其不能相无者엔 
旣以健順仁義之屬明之하여 而无所偏主하고 至其消長之際, 淑慝之分하여는
 則未嘗不致其扶陽抑陰之意焉하시니 蓋所以贊化育而參天地者니 
其旨深矣라 不言其占者는 謹微之意 已可見於象中矣일새라.

육(六)은 음효(陰爻)의 이름이니, 음수(陰數)에서 육(六)은 노음(老陰)이고 
팔(八)은 소음(少陰)이다. 그러므로 음효(陰爻)를 육(六)이라고 말한다. 
서리는 음기(陰氣)가 맺힌 것이니, 성(盛)하면 물이 얼어 얼음이 된다. 
이 효(爻)는 음(陰)이 처음 아래에서 생겨나서 그 단서가 매우 미약하나 
그 기세는 반드시 성(盛)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상(象)이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장차 이르름을 아는 것과 같다.

무릇 음양(陰陽)은 조화의 근본이니 서로 없을 수 없고, 
소장(消長)이 일정함이 있으니 역시 사람이 덜어내고 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양(陽)은 생성을 주장하고 음(陰)은 죽임을 주장하니, 
그렇다면 그 부류에 선악(善惡)의 분별이 있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이 
역(易)을 지을 적에 서로 없을 수 없는 것에는 이미 건(健)·순(順)과 인(仁)·
의(義)의 등속으로 이를 밝혀서 편벽되게 주장한 바가 없고, 소장(消長)의 
실제와 선악(善惡)의 구분에 이르러서는 일찍이 양(陽)을 붙들어주고 
음(陰)을 억제하는 뜻을 지극히 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화육(化育)을 
도와서 천지에 참여하는 것이니, 그 뜻이 깊다. 점(占)을 말하지 않는 
것은 은미함을 삼가는 뜻이 이미 상(象) 가운데 나타났기 때문이다.


象曰 履霜堅氷은 陰始凝也니 馴致其道하여 至堅氷也하나니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이른다는 것
 음(陰)이 처음 응결한 것이니, 그 도(道)를 순치(馴致)하여 단단한 얼음에 
이른 것이다.”

【本義】 按魏志에 作初六履霜하니 今當從之라 馴은 順習也라.
〈위지(魏志)〉를 상고해 보면 ‘초육이상(初六履霜)’으로 되어 있으니, 
지금 마땅히 이것을 따라야 한다. 순(馴)은 순히 익힘이다.

六二는 直方大라 不習이라도 无不利하니라.
육이(六二)는 곧고 방정하고 위대하다.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

【本義】 柔順正固는 坤之直也요 賦形有定은 坤之方也요 德合无疆은 
坤之大也라 六二柔順而中正하고 又得坤道之純者라 故로 其德이
 內直外方而又盛大하여 不待學習而无不利하니 占者有其德이면 
則其占如是也라.

유순하고 정고(正固)함은 곤(坤)의 곧음이요, 형체를 부여함에 일정함이 
있는 것은 곤(坤)의 방정함이요, 덕(德)이 무강(无疆)에 합하는 것은 
곤(坤)의 위대함이다. 육이효(六二爻)는 유순(柔順)하며 중정(中正)하고 
또 곤도(坤道)의 순수함을 얻었다. 그러므로 그 덕(德)이 안은 곧고 밖은
 방정하며 또 성대하여 굳이 배워 익히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 점치는 이가 이러한 덕(德)이 있으면 그 점(占)이 
이와 같을 것이다.

象曰 六二之動이 直以方也니 不習无不利는 地道光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육이(六二)의 동함이 곧고 방정하니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지도(地道)가 빛남이다.”

【傳】 承天而動은 直以方耳니 直方則大矣라 直方之義는 其大无窮이라
 地道光顯하여 其功順成하니 豈習而後利哉리오.

하늘을 받들어 동함은 곧고 방정한 것이니, 곧고 방정하면 위대하다. 
직(直)과 방(方)의 뜻은 그 큼이 무궁하므로 지도(地道)가 빛나 그 공이 
순히 이루어지니, 어찌 익힌 뒤에야 이롭겠는가.

六三은 含章可貞이나 或從王事하면 无成有終하리라.
육삼(六三)은 아름다움을 머금음이 정(貞)할 수 있으나, 혹 왕사(王事)에 
종사하면 이룸이 없어도 종말은 있다.

【本義】 六은陰이요三陽이니 內含章美하여 可貞以守라 然居下之上하여 
不終含藏이라 故로 或時出而從上之事면 則始雖无成이나 而後必有終이니
 爻有此象이라 故로 戒占者有此德則如此占也라.
육(六)은 음효(陰爻)이고 삼(三)은 양위(陽位)이니, 안에 아름다움을 머금어서
 정고(貞固)히 지킬 수 있다. 그러나 하괘(下卦)의 윗자리에 거하여 끝내 
머금고 감출 수 없다. 그러므로 혹 때로 나와서 윗사람의 일에 종사하면 
처음에는 비록 성공이 없으나 뒤에는 반드시 종말이 있을 것이니, 
효(爻)에 이러한 상(象)이 있다. 그러므로 점치는 이에게 이러한 덕(德)이 
있으면 이 점괘와 같다고 경계한 것이다.

象曰 含章可貞이나 以時發也요.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아름다움을 머금어 정(貞)할 수 있으나 때에 따라
 발할 것이요,

【傳】 夫子懼人之守文而不達義也하여 又從而明之하시니라 
言爲臣處下之道는 不當有其功善이요 必含晦其美라야 
乃正而可常이라 然義所當爲者는 則以時而發이요 不有其功耳라 
不失其宜는 乃以時也니 非含藏終不爲也라 含而不爲는 不盡忠者也라.

공자(孔子)는 사람들이 글을 지키기만 하고 뜻을 통달하지 못할까 저어하여, 
다시 따라서 이것을 밝히신 것이다. 신하가 되어 아랫자리에 처하는 도리는
 마땅히 그 공과 잘한 것을 차지하지 말고, 반드시 그 아름다움을 머금고 
감추어야 정고(正固)하고 떳떳할 수 있다고 말씀한 것이다. 
그러나 의리상 마땅히 해야 할 경우에는 때에 따라 발할 것이요, 
다만 그 공로를 차지하지 않을 뿐이다. 마땅함을 잃지 않는 것은 때에 따라 
하기 때문이니, 머금고 감추어 끝내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머금고 하지 않는 것은 충성을 다하지 않는 이이다.

或從王事는 知(智)光大也라.
혹 왕(王)의 일에 종사한다는 것은 지혜가 밝고 큰 것이다.”

【傳】 象은 只擧上句로되 解義則幷及下文하니 他卦皆然이라 
或從王事而能无成有終者는 是其知之光大也니 唯其知之光大라 故로 
能含晦라 淺暗之人은 有善이면 唯恐人之不知하나니 豈能含章也리오.

〈상전(象傳)〉은 다만 윗구절만 들었으나 뜻을 해석한 것은 아래 글까지 
미쳤으니, 다른 괘(卦)도 모두 그러하다. 혹 왕사(王事)에 종사하여 
이룸이 없고 종말이 있는 것은 그 지혜가 밝고 크기 때문이니, 
오직 지혜가 밝고 크기 때문에 능히 머금고 품을 수 있는 것이다. 
지식이 얕고 우매한 사람은 잘한 일이 있으면 행여 남이 알아주지 
못할까 두려워하니, 어찌 아름다움을 머금을 수 있겠는가.

六四는 括囊이면 无咎며 无譽리라.
육사(六四)는 주머니끈을 묶듯이 하면 허물도 없으며 칭찬도 없으리라.

【本義】 括囊은 言結囊口而不出也라 譽者는 過實之名이니 謹密如是면
 則无咎而亦无譽矣리라 六四는 重陰不中이라 故로 其象占如此하니
 蓋或事當謹密이어나 或時當隱遁也라.

‘괄낭(括囊)’은 주머니의 입을 묶어 나오지 못하게 함을 말한다. 
예(譽)는 실제보다 지나친 이름이니, 삼가하고 치밀함이 이와 같으면 
허물도 없고 또한 칭찬도 없을 것이다. 육사효(六四爻)는 거듭된 음(陰)이고 
중(中)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상(象)과 점(占)이 이와 같으니, 
혹 일이 마땅히 삼가고 은밀해야 하거나 혹 때가 은둔할 때를 만난 경우이다.

象曰 括囊无咎는 愼不害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주머니끈을 묶듯이 하면 허물이 없다는 것은 
삼가면 해롭지 않은 것이다.”

【傳】 能愼如此면 則无害也라.

삼가기를 이와 같이 하면 해가 없다.

六五는 黃裳이면 元吉이리라.
육오(六五)는 황색(黃色) 치마처럼 하면 크게 길(吉)하리라.

【本義】 黃은 中色이요 裳은 下飾이라 六五以陰居尊하여 中順之德이
 充諸內而見於外라 故로 其象如此而其占爲大善之吉也니 
占者德必如是면 則其占亦如是矣리라 春秋傳에 南蒯將叛할새 
筮得此爻하고 以爲大吉이라 한대 子服惠伯曰 忠信之事則可어니와 
不然이면 必敗하리라 外强內溫이 忠也요 和以率貞이 信也라 
故로 曰黃裳元吉이라 하니 黃은 中之色也요 裳은 下之飾也요 
元은 善之長也라 中不忠이면 不得其色이요 下不共(恭)이면 
不得其飾이요 事不善이면 不得其極이라 且夫易은 不可以占險이어늘 
三者有闕하니 筮雖當이나 未也라 하더니 後에 蒯果敗하니
 此可以見占法矣로다.

황(黃)은 중앙의 색이요, 치마는 아래의 꾸밈이다.
 육오효(六五爻)가 음(陰)으로서 존위(尊位)에 거하여 중순(中順)한 덕(德)이
내면에 충적되어서 외면에 드러난다. 그러므로 그 상(象)이 이와 같고 
그 점(占)이 크게 선(善)하여 길함이 되니, 점치는 이의 덕(德)이 반드시 
이와 같으면 그 점(占) 또한 이러할 것이다. 《춘추전(春秋傳)》에 
남괴(南蒯)가 장차 반란을 일으키려 할 적에 점을 쳐서 이 효(爻)를
 얻고는 “크게 길하다.”고 말하니, 자복혜백(子服惠伯)이 말하기를
 “충신(忠信)의 일이라면 괜찮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패한다. 
밖은 강하고 안은 온순한 것이 충(忠)이요, 화(和)로써 정(貞)을 따름이 
신(信)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황상원길(黃裳元吉)’이라고 하였으니, 
황(黃)은 중앙의 색이요, 치마는 아래의 꾸밈이요, 원(元)은 선(善)의 으뜸이다. 
중심(中心)이 불충(不忠)하면 그 색(色)을 얻지 못한 것이요, 
아랫사람이 공손하지 않으면 그 꾸밈을 얻지 못한 것이요, 
일이 선(善)하지 않으면 그 극(極)을 얻지 못한 것이다. 
또 무릇 역(易)은 험한 것을 점쳐서는 안 되는데, 세 가지가 결함이 있으니,
 점(占)이 비록 이에 해당된다 하더라도 안 된다.” 하였는데, 
뒤에 남괴(南蒯)가 과연 실패하였으니, 여기에서 점치는 법을 볼 수 있다.

象曰 黃裳元吉은 文在中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황상원길(黃裳元吉)’은 문(文)이 중(中)에 있는 것이다.”

【本義】 文在中而見於外也라.
문(文)이 속에 있어서 밖에 드러나는 것이다.

上六은 龍戰于野하니 其血이 玄黃이로다.
상육(上六)은 용(龍)이 들에서 싸우니, 그 피가 검고 누렇다.

【本義】 陰盛之極하여 至與陽爭하여 兩敗俱傷하니 其象如此라 占者如是면 
其凶可知라.
음(陰)의 성함이 지극하여 양(陽)과 다툼에 이르러 둘이 모두 패하고 상하니, 
그 상(象)이 이와 같다. 점치는 이가 이와 같으면 그 흉함을 알 수 있다.

象曰 龍戰于野는 其道窮也라.
〈상전(象傳)〉에 말하였다. “용이 들에서 싸우는 것은 그 도(道)가 궁극한 것이다.”

【傳】 陰盛하여 至於窮極이면 則必爭而傷也라.
음(陰)이 성(盛)하여 궁극함에 이르면 반드시 다투어 상한다.

 

 

(김재홍 박사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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