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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 김길웅 시인

정신 모델

by 동파 2025.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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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모델
 
김길웅, 칼럼니스트

정신 모델, 조금 낯설다. 
세상을 이해하고 행동하는 데 영향을 끼치는 뿌리 깊은 
가정(假定)이나 심상, 생각 따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 태도나 가치관 또는 신념 등에 기반을 
두고 있어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데 크게 
영향을 미친다. 일상에서 정신 모델이 변화의 걸림돌이 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찢어진 청바지는 낡은 것이라는 공식이 
자동적으로 돌아가는 꼰대들에게 “요즘은 이게 멋이야.”라고 
아무리 얘기해 봤자 그 말이 쉬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신품을 남루로 보고 있잖은가. 
이렇게 어떤 이미지를 봤을 때 머릿속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반사적으로 돌아가는 사고방식이 정신 모델이다.

우리는 이러한 정신 모델의 존재 여부나 그것이 우리의 행동에 
끼치는 영향을 까맣게 잊고 산다. 
그로 인해 결국엔 새로운 생각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실행이 
어렵거나 더딜 수밖에 없다. 정신 모델은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 
것으로 고정관념과 다르지 않다. 
시간이 지나간 후에야 ‘이건 아닌데….’하고 뉘우치게 되지만, 
버스는 이미 지나간 지 오래다. 비근한 예로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1950년대만 해도 남녀 차별이 아주 심했다. 
한 학년이 단학급이었는데, 어떤 이웃 마을에서는 여학생을 한 사람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중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그 사실이 분명해진 것이다.

“여자는 집에서 아이 낳고 살림이나 하면 되는 것이지 
무슨 교육.”이라는 관념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봉건적 사고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서 새로운 시대를 
호흡하지 못할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조금만 확대하면 개화기가 뒷전으로 떠밀려 
1894년 갑오경장에까지 이른 원인이 됐음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회, 문화, 경제, 과학에서 일본에게 열세를 면치 
못한 게 바로 이런 정체 요인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랜 몽매 속에 갇혀 새로운 시대에 대한 신선한 자각이 없었다. 
만시지탄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대목이 아닌가.

성공적인 변화의 핵심은 강력하면서도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인식 체계, 곧 정신 모델을 과감히 바꿈으로써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을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니, 
법고창신(法古昌新)이니 하는 것이 다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오랜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창조의 에너지를 불어 넣어 
새로 해석함으로써 재탄생케 한 것이다. 
아무리 전통이라 해도 그것은 세월의 누적일 뿐 전통이 아니다. 
답습은 인습이다.

우리는 거울을 밖에서 안으로 돌려서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과거의 이미지나 낡은 생각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밝혀내고 
그것을 시대에 맞춰 바꿔야만 할 것이다.

요즘 여성들의 머리 모양의 변화가 눈길을 끈다. 
아주 길어 허리에 닿을 지경이다. 
이 유행은 세계적으로 번지면서 어른만 아니라 어린아이까지 
눈만 뜨면 긴 머리다. 단발머리에 익숙한 기존의 잣대로 봐선 안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걸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케케묵은 과거의 정신 모델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시대가 바뀌면 세상도 변한다. 
변화를 외면하니까 꼰대로 낙인찍힐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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