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김길웅.
사람과 일을 분리시키지 못한다.
크든 작든, 공적이든 사적이든 무릇 사람에게는 일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일이 있어 마치 그것의 성취를 위해 태어난 것처럼 한평생
그 속으로 몰두한다. 일은 삶의 근본이고 사람이 살아 가는 본래의
존재 방식이다. 일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이 없는 시람을 일컬어 실업자라 한다.
백수건달이란 뜻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일이 없으면 기웃거리거나 주억거릴 뿐 마땅히 설 자리가 없다.
험한 파도를 건너는 좌표 없는 항해다. 생활인에게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요즘 별로 쓰이지 않지만, 예전에 한량(閑良)이란 말이 있었다.
부유한 집안 출신의 젊은 무직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오늘날에는 흔히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이성 간의 관계가 건전치 못한 사람이나, 백수처럼 직업을 갖지 않고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의미가 변형됐다.
일이 없으면 할 일을 찾아야 한다.
빌붙는 게 자존을 해치면, 창업도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뜻 같지 않다. 거리에 나가 보면 안다.
문을 내린 가게가 셀 수 없이 줄을 지었다.
오죽 힘들었으면 문을 닫았을까. 고환율, 고금리, 고물가 3고 시대를
넘을 재간이 없다.
하지만 일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고도의 기능이다.
무슨 일이냐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자기의 능력과 분수에 맞는
것이면 어떤 일이든 품고 볼 일이다. 성공과 실패는 하기 나름이다.
조그만 실패에 낙망하지 말아야 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무슨 일에든 사소한 시행착오는 따르게 마련이다.
고비를 넘기면 기회와 약속의 시간이 올 것이라 믿어야 한다.
그대에게 이르노니, 한다는 기업치고 평탄하게 시작한 경우는
없을 것이다. 성공한 기업들이 폭풍의 바다를 지나 오늘에 이른
것임은 명백한 일이다.
어머니가 여름 땡볕 아래 앉아 조밭 검질(김)을 매며 부르던 노래가 있다.
‘지서멍과 오름엣돌은 둥굴다가도 살을메 난다.’
‘조강지처와 오름의 돌은 굴러다니다가도 살 일이 생긴다.’
본처와 오름 위의 돌은 당장에 어려움이 있다 해도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이다. 겨울 한철 빼놓고 밭에만 살던 어머니도 당신의 삶을
긍정했다. 기다림이 있었다. 그 가난 속에서도 기대를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일은 사람을 생광케 하는 힘이 있다.
해가 저물 무렵 일개미 한 마리가 제 몸집보다 큰 먹이를 물고 어딘가를
향해 바지런히 가고 있다. 필시 귀갓길일 것이다.
저 미물도 양식을 저장하려 감당키 어려운 짐을 깜냥으로 지어 나르고 있다.
제 일은 제가 한다. 일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유의미한 역사(役事)다.
식물도 일을 한다.
땅속 깊이 뿌리내려 나무를 목마르지 않게 하는 것에 더할 일은 없다.
잎을 내놓고 가지를 뻗으며 무성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한 해의
굵직한 서사(敍事)를 쓴다,
그것은 그 행간으로 한 해의 성장을 완성하는 일이다.
나무는 연년이 이 일을 거듭하면서 아름드리로 굵은 위로 세월이 쌓여
고목이 된다.
일의 결과는 종내 자그마치 나무를 바라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위의(威儀)다.
동보 김길웅 시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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