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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상전(繫辭上傳)

繫辭上傳~第十章

by 동파 2022.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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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義】 此章은 言天地大衍之數, ?蓍求卦之法이라 然亦略矣니 意其詳이 具於大(太)卜筮人之官이어늘 
而今不可考耳요 其可推者는 啓蒙에 備言之하니라.
이 장(章)은 천지(天地) 대연(大衍)의 수(數)와 시초(蓍草)를 세어 괘(卦)를 구하는 법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또한 간략하니, 짐작컨대 그 상세한 내용이 태복(太卜) 서인(筮人)의 관직(官職)에 갖추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상고할 수 없고, 미룰 수 있는 것은 《계몽(啓蒙)》에 자세히 말하였다.

易有聖人之道四焉하니 以言者는 尙其辭하고 以動者는 尙其變하고 以制器者는 尙其象하고 
以卜筮者는 尙其占하나니,
역(易)에 성인(聖人)의 도(道)가 네 가지 있으니, 〈역(易)으로써〉 말하는 이는 그 말을 숭상하고, 
동(動)하는 이는 그 변(變)을 숭상하고, 기물(器物)을 만드는 이는 그 상(象)을 숭상하고, 복서(卜筮)하는
 자는 그 점(占)을 숭상한다.

【本義】 四者는 皆變化之道니 神之所爲者也라.
네 가지는 모두 변화의 도(道)이니, 신(神)이 하는 것이다.
是以君子將有爲也하며 將有行也에 問焉而以言하거든 其受命也如嚮(響)하여 无有遠近幽深히 
遂知來物하나니 非天下之至精이면 其孰能與於此리오.
그러므로 군자(君子)가 장차 일을 함이 있거나, 장차 행함이 있어 물어서 말하려 하면 그 명령을
 받음이 메아리와 같아 원근(遠近)과 유심(幽深)이 없이 마침내 미래의 일을 아니, 
천하(天下)의 지극히 정(精)한 이가 아니면 그 누가 이에 참여하겠는가.

【本義】 此는 尙辭尙占之事라 言人以蓍問易하여 求其卦爻之辭하여 而以之發言處事하면 
則易受人之命而有以告之를 如嚮之應聲하여 以決其未來之吉凶也라 以言은 與以言者尙其辭之以言으로
 義同이라 命은 則將筮而告蓍之語니 冠禮筮日에 宰自右贊命이 是也라.
이는 말을 숭상하고 점(占)을 숭상하는 일이다. 사람이 시초(蓍草)로써 역(易)을 물어 괘사(卦辭)와 
효사(爻辭)를 구하여 이것으로써 말을 하고 일에 처하면 역(易)이 사람의 명령을 받아 고(告)해주기를 
마치 메아리가 목소리에 응하듯이 하여 미래의 길(吉)·흉(凶)을 결단함을 말한 것이다. 
이언(以言)은 ‘말하는 자는 그 말을 숭상함’의 이언(以言)과 뜻이 같다. 
명(命)은 장차 점(占)을 치려 하면서 시초(蓍草)에게 고하는 말이니, 관례(冠禮)에 ‘날짜를 점칠 
적에 재(宰)가 오른쪽에서 명령을 돕는다’ 함이 이것이다.

參伍以變하며 錯綜其數하여 通其變하여 遂成天地之文하며 極其數하여 遂定天下之象하니 
非天下之至變이면 其孰能與於此리오.
삼(參)으로 세고 오(伍)로 세어 변(變)하며 그 수(數)를 교착(交錯)하고 종합(綜合)하여 
그 변(變)을 통하여 마침내 천지(天地)의 문(文)을 이루며, 그 수(數)를 지극히 하여 마침내 
천하(天下)의 상(象)을 정하니, 천하(天下)의 지극히 변화하는 이가 아니면 그 누가 이에 
참여하겠는가.

【本義】 此는 尙象之事니 變則象之未定者也라 參者는 三數之也요 伍者는 五數之也니
旣參以變하고 又伍以變하여 一先一後하여 更相考?하여 以審其多寡之實也라 錯者는
 交而互之니 一左一右之謂也요 綜者는 總而?之니 一低一昻之謂也니 此亦皆謂?蓍求卦之事라
 蓋通三?兩手之策하여 以成陰陽老少之?하고 究七八九六之數하여 以定卦爻動靜之象也라
 參伍錯綜은 皆古語而參伍尤難曉라 按荀子云 窺敵制變엔 欲伍以參이라 하고 
韓非曰 省同異之言하여 以知朋黨之分하고 偶參伍之驗하여 以責陳言之實이라 하고
 又曰 參之以此物하고 伍之以合參이라 하며 史記曰 必參而伍之라 하고 又曰 參伍不失이라 
하며 漢書曰 參伍其賈(價)하여 以類相準이라 하니 此足以相發明矣니라.
이는 상(象)을 숭상하는 일이니, 변(變)은 상(象)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
 삼(參)은 삼(三)으로 셈이요 오(伍)는 오(五)로 셈이니, 이미 삼(三)으로 세어 변하고 또 
오(五)로 세어 변하여 한 번 먼저하고 한 번 뒤에 하여 번갈아 서로 상고해서 많고 
적음의 실제를 살피는 것이다. 착(錯)은 사귀어 서로 함이니 한 번 왼쪽으로 하고 
한 번 오른쪽으로 함을 이르며, 종(綜)은 총괄하여 셈이니 한 번 낮추고 한 번 높임을 이르니, 
이 또한 모두 시초(蓍草)를 세어 괘(卦)를 구하는 일을 말한 것이다. 
두 손의 책(策)을 통틀어 세 번 설(?)하여 음양(陰陽) 노소(老少)의 획을 이루고, 
칠(七)·팔(八)·구(九)·육(六)의 수(數)를 연구하여 괘효(卦爻)와 동정(動靜)의 상(象)을 정한다. 
삼오착종(參伍錯綜)은 모두 옛말인데, 삼오(參伍)가 더욱 알기 어렵다. 
살펴보건대 《순자(荀子)》〈의병(義兵)〉에 “적을 엿보고 변화에 대처함에는 오(伍)하고 
삼(參)하고자 한다.” 하였고, 《한비자(韓非子)》〈비내(備內)〉에 “같고 다른 말을 살펴 
붕당(朋黨)의 나눠짐을 알고 삼오(參伍)의 징험을 맞추어 진언(陳言)의 실제를 책한다.” 
하였으며, 또 〈양권(揚權)〉에 이르기를 “이 일로써 참고하고, 다섯으로 맞추어 삼(參)에 
합한다.” 하였으며, 《사기(史記)》〈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 “반드시 삼(參)으로 세고 
오(伍)로 센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삼오(參伍)함이 실수하지 않는다.” 하였으며, 
《한서(漢書)》에 “그 값을 삼오(參伍)하여 유(類)로써 서로 기준한다.” 하였으니, 
이것을 보면 충분히 서로 발명될 것이다.

易은 无思也하며 无爲也하여 寂然不動이라가 感而遂通天下之故하나니 非天下之至神이면 
其孰能與於此리오.
역(易)은 생각이 없고 함이 없어 적연(寂然)히 동(動)하지 않다가 감동하여 마침내 천하(天下)의 
원인을 통하니, 천하(天下)의 지극히 신묘(神妙)한 이가 아니면 그 누가 이에 참여하겠는가.

【本義】 此는 四者之體所以立而用所以行者也라 易은 指蓍卦라 无思, 无爲는 言其无心也라
 寂然者는 感之體요 感通者는 寂之用이니 人心之妙가 其動靜亦如此라.
이는 네 가지의 체(體)가 서서 용(用)이 행해지는 것이다. 역(易)은 시초(蓍草)와 괘(卦)를 
가리킨다. 무사(无思), 무위(无爲)는 마음이 없음을 이른다. 적연(寂然)은 감(感)의 체(體)이고 
감통(感通)은 적(寂)의 용(用)이니, 사람 마음의 묘(妙)함이 그 동(動)·정(靜)이 또한 이와 같다.

夫易은 聖人之所以極深而硏幾也니,
역(易)은 성인(聖人)이 깊음을 다하고 기미를 살피는 것이니,
【本義】 硏은 猶審也요 幾는 微也라 所以極深者는 至精也요 所以硏幾者는 至變也라.
연(硏)은 살핌과 같고 기(幾)는 기미이다. 깊음을 다함은 지극히 정(精)함이요, 기미를 살핌은 
지극히 변함이다.

唯深也故로 能通天下之志하며 唯幾也故로 能成天下之務하며 唯神也故로 不疾而速하며 
不行而至하나니,
깊기 때문에 천하(天下)의 뜻을 통하며, 기미이기 때문에 천하(天下)의 일을 이루며, 
신묘(神妙)하기 때문에 빠르지 않으면서도 속하며 행하지 않으면서도 이르나니,

【本義】 所以通志而成務者는 神之所爲也라.
뜻을 통하고 일을 이루는 것은 신(神)이 하는 것이다.

子曰 易有聖人之道四焉者 此之謂也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역(易)에 성인(聖人)의 도(道)가 네 가지가 있다는 것은 이것을 
말한 것이다.”


右는 第十章이라.
이상은 제10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