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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시인의 <청포도>

by 동파 2015.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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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도

 

    

                        이육사

 

 내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계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 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돚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 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호는 육사(陸史), 본명은 원록(源祿) 또는 원삼(源三)이다. 1904년 4월 4일 경북 안동
(安東)에서  태어나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고 대구 교남(嶠南)학교에서 신학문을 접했다.
 1925년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하였다가 1926년에는 북경으로 가서
 북경사관학교에 입학하였다.
 1927년 귀국했으나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복역해야 했다. 그때의 수인번호 64를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

1930년 <조선일보>에 <말>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그는 언론인으로 일하면서
 중국과 대구, 경성부를 오가면서 항일운동을 하고 '시인부락', '자오선' 동인으로 작품도
 발표했다. 대구 격문 사건 등으로 수차례 체포, 구금되기도 했다. 1937년 윤곤강(尹崑崗)ㆍ
 김광균(金光均) 등과 함께 동인지 <자오선(子午線)>을 발간,
 그 무렵 유명한 <청포도(靑葡萄)>를 비롯하여 <교목(喬木)>, <절정(絶頂)>,
 <광야(曠野)> 등을 발표했다. 1943년 중국으로 갔다가 귀국, 같은 해 6월에 국내에서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 이듬해인 1944년 1월 16일 베이징의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1946년에 그의 유고시집 <육사시집>이 그의 동생이자 문학평론가인 이원조에 의해 출간되었다.

많은 문인들이 문학과 펜으로서 일본에 항거했고 그마저도 쉽게 변절했던 것에 비해,
 이육사는 글과 행동으로 끝까지 항일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그의 시는 <광야>에서
 처럼 강인하고 담대한 한편, <청포도>와 같이 평화롭고 목가적이며 이상적인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희망 역시 잘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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