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초우(芭蕉雨)
조지훈
외로이 흘러간
한송이 구름
이밤을 어디메서
쉬리라 던고
성긴 빗방울
파초잎에 후둑이는 저녁 어스름
창열고 푸른산과
마주 앉아라
들어도 싫지 않은
물소리기에
날마다 바라도
그리운 산아
온 아침 나의 꿈을
스쳐간 구름
이밤을 어디메서
쉬리라 던고
진달래꽃
소 월
나보기가 엮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분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낙화(落花)
조지훈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향 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헐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지고 이삭 줍던 곳 ...
하늘에는 성근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산유화(山有花)
김소월
산에는 꽃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없이 꽃이 지네
가는 길
소 월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져 산(山)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西山)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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