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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산사(山寺)참배

다시 가고싶은 영암 월출산 도갑사(道岬寺)(동파 산사순례85)

by 동파 2014.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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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출산 도갑사(月出山 道岬寺)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8번지

종무소전화:061-473-5122 FAX:061-473-9734

홈페이지:http://www.dogapsa.org/

 월출산 도갑사 일주문

 일주문 바깥쪽에는 '月出山 道岬寺'라는 편액이 걸려있고, 안쪽에는
'덕해문(德海門)'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그 아래에는 큰 글씨로 선종사찰
중 나라에서 제일이라는 '국중제일선종대찰(國中第一禪宗大刹)'이라는
현판이 보는 이로 하여금 기를 죽인다. 좌우 기둥에는 주련(柱聯)이 걸려 있다.

 歷千劫而不古 (역천겁이불고)

亘萬歲而長今 (긍만세이장금)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언제나 옛날이 아니고

긴 세월이 만세의 길이 가도 지금일 뿐이네"

일주문의 주련을 볼때 세월의 무상을 더 느끼는 문구다.

 일주문을 들어가면 해탈문이 나온다.

해탈문(解脫門)

 여기 해탈문이 국보 제50호다.

解脫門 글씨는 원교 이광사(李匡師)(1705-1777 조선시대 명필가)글씨다.

추사의 대 명필가로 빛을 볼수가 없었으나 서예가들은 다시 조명하고있다.

해탈문(국보 제50호)과 마애여래좌상(국보 제144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89호),
문수 보현보살 사자 코끼리상(보물 제1134호), 대형석조, 그리고 도선수미비 등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고찰임을 알수가 있다.

 解脫門

전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다.

진도출신 소전 손재형 서예가로부터 대통령은 사사했다고한다.

이곳에서 영암군 문화관광해설가 최정식 해설가님의 이야기로

도갑사에대한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었다.

감사합니다.


 

 국보제50호 해탈문에서 동파

 

 해탈문을 들어가면 광제루(廣濟樓)

광제루를 지나면 5층석탑이 나온다.

 (야경의 석탑 모습)

오층석탑

해탈문을 들어서면 바로 오층석탑을 만나게 된다. 이 탑은 보물 제1433호로
하층기단을 잃은 채 단층기단 위 5층 탑신부 및 노반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995년 이후 목포대학교ㅔ서 도갑사 경내 발굴조사 를 하던 중 하층기단부가
발견되어 2002년 2월 현 대웅전 앞에 2중기단의 5층석탑으로 복원하였다.
조각 및 구조수법 등의 특징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탑의 기단부 지대석은 지하에 매몰되어 확인할 수 없으나 단층 기단인 듯하다.
기단 면석은 4개의 판석으로 되어 있고 귀기둥과 지주 1주씩을 모각(模刻)하였다.
 2개의 판석으로 된 기단 갑석은 두꺼운 편이며, 밑면은 부연이 없이 수평으로
처리하였고, 윗면은 중앙에 오르면서 가벼운 경사를 이루고 1단의 원호(圓弧)
괴임대를 나타냈다.

1층 탑신은 4매의 판석으로 꾸몄는데, 2층에서부터 급격히 높이를 줄였으며,
위층으로 갈수록 서서히 줄어들었다. 1층 옥개석은 전체적으로 매우 두꺼운 편이며,
낙수면도 급한 편이고 전각(轉角)도 약간 반전하고 있다. 옥개석의 밑면은 5단의
층급 받침을 갖추고 있으나 간격이 매우 좁다. 옥개석 상면 중앙에 역시 1단의 탑신
괴임대를 갖추었다. 일반적으로 상륜부(相輪部)는 노반, 복발, 앙화, 보륜, 보개,
수연, 용차, 보주로 되어 있는데 이 탑은 단순히 노반(露盤)이 있고 꼭대기에는
보주(寶珠)를 얹었다.

 

대웅보전 주련

佛葉難鳴樹摩能 불섭난명수마능

威光?照十方中 위광변조시방중

月印千江一體同 월인천강일체동

四智圓明諸聖士 사지원명제성사

賁臨法會利群生 분림법회리군생

華阿方般法涅呪 화아방반법열주

 

부처님, 가섭, 아난, 마명, 용수, 달마, 혜능
위엄의 빛이 시방을 두루 비추니,
일천 강에 달이 비치어도 모두가 하나이다.
사지에 밝으신 모든 성현들이
분연히 법회에 임하여 군생을 이롭게 하시네.
화엄경, 아함경, 방등경,반야경,법화경,열반경과주문


 

 道岬寺의 역사
 
월출산 남쪽 도갑산(해발 376m)을 등지고 주지봉을 바라보는 넓은 산자락에 자리잡은
도량으로 신라말 헌강왕 6년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현재 고려시대의 기록은 자료 유실로 알려진
것이 없고 조선 이후의 발자취는 소상히 남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사원의 중창은 1456년(세조2년) 수미(守眉)왕사에 의해서였다.

수미왕사는 왕실의 어명을 받들어 국가적 지원으로 966칸에 달하는 당우와 전각을
세웠고, 부속 암자만 해도 상동암, 하동암, 남암, 서부도암, 동부도암, 미륵암, 비전암,
봉선암, 대적암, 상견암, 중견암, 하견암 등 12개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사원중창은 그 후로도 계속 진행되었는데 '억불숭유'의 열악한 사회적 여건 속에서도
대규모의 중창불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도갑사가 불교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충분히 짐작케 한다.

1653년(효종4년)에는 '도선수미비'와 '월출산도갑사석교 중창비'가 세워졌는데,
당시 영의정과 형조판서 등 국가의 지도급 인사들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쓴 것으로
보아 그 당시 도갑사의 위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 후로도 사원의 중수는 계속 이어져 1677년(숙종3년)에는 당간석주를 세웠고,
1682년에는 대형 석조(石槽)를 조성하였다.
18세기 중엽에는 연담 유일스님이 이곳에 머물면서 당시 불교사전이라 할 수 있는
 '석전유해'를 편찬하였다.

그런데 19세기 이후의 연혁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고, 정유재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많은 문화재가 유실되었으며, 그나마 남아있던 것들도 일제시대와 6.25전란을
겪으면서 소실되었다.
더구나 1977년 참배객들의 부주의로 화재가 발생 화려하고 아름다운 대웅보전과
 안에 모셔져 있는 많은 성보들이 소실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1981년 대웅보전 복원을 시작으로 차츰 옛 가람의 복원불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2009년 4월11일 대웅보전낙성식을 갖는 등 유관기관의 역사적 검증을 거친
복원불사가활발하게 전개되고 대가람에 걸맞게 눈푸른 납자을 양성하기 한 수행환경을
 위해 選佛場(선불장)개창하였다.

도갑사는 이제 서서히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앞으로 도선국사의 재 조명에 힘입어
새로운 불교문화의 성지로 자리 매김 할 것이다.
 

 동산불교대학37기 도반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시고 도갑사의 역사를 말씀해 주셨던 사무장님!

감사합니다.

 도갑사의 야경

 

 밤9시까지 도반들과 신묘장구대다라니 독송을하고, 회향은 108대참을 혜조거사의 죽비에 따라 하면서 도갑사의

저녁기도를 엄숙하고 경건하게 기도를 할 수가 있었다.

금번 도갑사의 1박2일 산사 기도 순례는 나를 찾는 뜻 깊은

순례이면서 특히 새벽예불이 끝나고 집전하셨던 스님의

짧은 법문 즉 "나무아미타불"법문은 가슴 깊히 담았습니다.

다시한번 이 시간이 돌아왔으면 하는 생각으로

지난달에 있었지만 다시 가고싶은 사찰이 되었습니다.

<동영상을 클릭하시면 안내와 기도 모습을 보실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