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사[無爲寺]
주소 :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1174
전화번호 : 061-432-4974 fax:061-433-4974
주지:법정 스님
사무장:여래향보살
우리 동산불교대학37기 도반들과 강진 월출산 무위사(無爲寺)에
2014년 3월22일 오후 4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남강(南岡)이효갑(李孝甲)(전남 광주 거주 현재 국전 초대작가)
일주문 편액을 읽을 수가 있다.
무위사(無爲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신라 617년(진평왕 39)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관음사(觀音寺)라 했다고 전한다. 875년(헌강왕 1) 도선국사가 중건하여 갈옥사(葛屋寺)로
이름을 바꾼 뒤에 많은 승려가 주석했다고 하며 946년(정종 1) 선각국사(先覺國師)가 3차 중수하여
모옥사(茅玉寺)라 했고, 1555년(명종 10) 태감선사(太甘禪師)가 어명으로 중창하여 현재의 이름인
무위사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내에 있는 선각대사편광탑비(先覺大師遍光塔碑)의 명문에 의하면
신라시대에 이미 무위갑사(無爲岬寺)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최근까지 경내에 있던 목조건물은
극락전(국보 제13호)·명부전과 요사채뿐이었으나 1974년에 벽화보존각(壁畵保存閣)·해탈문(解脫門)·
분향각(焚香閣)·천불전·미륵전 등을 새로 지었다. 이밖에 경내에는 946년에 세워진 선각대사편광탑비
(보물 제507호)와 종형의 옥신을 가진 사리탑, 석탑형식을 한 부도가 있고 미륵전 안에 고려 말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입상이 있다. 그리고 1955년 보수공사 때 무위사가 1476년에 크게 중창된 사실이
밝혀졌는데 이는 〈동국여지승람〉의 기록과도 일치하며, 극락전 안에 있는 목조아미타삼존불상 및
29점의 불화는 조선 초기 작품으로 중요시되고 있다. 현재 삼존불상과 후불벽화만 남기고 모두
벽화보존각에 보존되어 있다.
원교 이광사 극락보전
후불벽화
이 이야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나라 전설 중 하나다.
파랑새가 그렸다는 벽화는 전남 강진의 무위사(無爲寺) 극락보전 안에 있다.
무위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무위(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행위에 아무 걸림이 없다’는 말로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는 의미다. 이 또한 마음에 와 닿는다.
이 벽화를 담고 있는 극락보전은 국보 13호로 1430년(세종 12년)에 지어졌다.
우리나라에 몇 남지 않은 조선 초기 건물이다. 유려한 처마안허리 곡선의 팔작지붕이
대부분인 오늘날의 전통 한옥에 익숙한 내게 맞배지붕의 맛을 알게 해준 건물 중 하나다.
600년 가까이 된 목조 건축의 정교함이라니! 그 놀라움은 네 벽 모두 그림으로 장식된
법당 안까지 이어진다.
극락보전에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갔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무위사를 처음 찾았을 때는 황량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번창했을 때 58개 동에 이르던
사찰이 지금은 주차장에서부터 막 틀을 갖춰가기 시작하는 신진 사찰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주문을 지나 해탈문을 들어서자 계단 위로 드러나는 극락보전 맞배지붕의 육중함에
이내 마음을 사로잡혔다. 극락보전 계단을 올라 측면 문으로 삼존불과 후불벽화(後佛壁畵)를
바라본다. 파랑새가 완성하지 못했다는 관음보살의 눈동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혹시 없는 것이 아니라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건 아닐까.
불전을 짓고 백일기도를 드리는데 한 노승이 찾아왔다.
그는 새로 만든 법당에 자신이 벽화를 그리고 싶다고 했다. 차림은 비록 누추했지만
노승이 범상치 않음을 직감한 주지는 그러라고 했다. 노승은 49일 동안 절대 법당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노승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법당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너무나 궁금해진 주지는 결국 49일째 되던 마지막 날 문에 구멍을 뚫어 안을 들여다봤다.
그러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노승은 온데간데없고 붓을 문 파랑새 한 마리가 벽화를
그리는 게 아닌가. 그림을 모두 마치고 마지막으로 관음보살의 눈동자를 찍으려던 찰나,
인기척을 느낀 파랑새는 붓을 떨어뜨리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그래서 지금도
관음보살의 눈에는 눈동자가 없다고 한다.
아미타삼존도
후불벽화(後佛壁畵)로 그려진 아미타삼존도. 흙벽에 채색. 210 × 270 cm. 1476년 작.
후불벽화로 그리기 위하여 따로 세워진 벽면에 그려졌다. 구도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앞의 좌우에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배치하고 뒤쪽으로 6명의 나한(羅漢)을 배치하여
원근감을 표현하였으나 상하로 구분하는 2단구조의 고려 불화나 16세기의 조선 불화와도
다른 것이다.
아미타불의 뒤에 표시된 광배(光背)의 모양은 키를 연상케 하는 것으로 15세기부터
사용되었다. 착의법(着衣法)은 고려 후기의 단아양식(端雅樣式)을 계승한 것이며,
가슴 아래까지 올라온 군의(裙衣)의 상단을 주름잡아 고정시킨 매듭끈을 대좌(臺座)
좌우로 길게 드리운 것은 조선 초기의 특징이다. 내용상에서도 변화가 있다.
곧 고려시대의 삼존형식에 자주 등장하던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대신 지장보살이
배치된 것은 고려 후기의 신앙대상의 변화를 말해주고 있다.
화기(畵記)에 의하면 아산현감을 지낸 강노지(姜老至) 등
수십명의 시주로 혜련(海連) 대선사 등이 그렸다 한다. (홈에서인용)
무위사극락전백의관음도 (無爲寺極樂殿白衣觀音圖)
백의관음도에 화제
海岸孤絶處(해안고절처) 中有洛伽峰(중유낙가봉)
大聖住無住(대성주무주) 普門峰不峰(보문봉불봉)
明珠非我欲(명주비아욕) 靑鳥是人逢(청조시인봉)
但願蒼波上(단원창파상) 親瞻滿月容(친첨만월용)
바닷가 외딴 곳 한가운데 낙가봉이 있더라
석가모니불 계시든 안 계시든 아미타불 만나든 못 만나든
빛나는 구슬 내 바라는 바 아니고 우리가 찾는 건 파랑새뿐
단지 바라는 것은 푸른 물결 위 보름달 같은 얼굴 보기를...
무위사 선각대사
1969년 6월 16일 보물 제507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약 2.35m, 너비 1.12m.
무위사 극락보전 서쪽 약 30m에 위치하는데 돌로 쌓은 담장 안에 남향으로 있다.
귀부(龜趺)·비좌(碑座)·비신(碑身)·이수(首) 등을 다 갖춘 전통적 양식의 비이다.
귀부의 두부(頭部)는 양 뿔을 뚜렷이 조각한 용머리이며, 여의주를 물고 있는 입은
투조(透彫)로 되었다.
거북의 등에는 6각갑(六角甲)무늬를 양각하고 비좌의 앞뒤 2면에는 보운(寶雲)무늬,
양 측면에는 안상(眼象)을 각각 양각·음각으로 새겼다. 이수에는 3단의 층급형(層級形)
받침을 새겨 겹송이 연꽃무늬를 장식하였다.
비제(碑題)는 ‘高麗國故無爲岬寺先覺大師遍光靈塔碑銘 幷序’라고 시작하여
지은이 최언휘(崔彦)와 쓴이 유훈율(柳勳律)의 성명을 기록하였다.
각부의 조각기법은 당대의 다른 비석에 비하여 사실(寫實)의 경향을 띠어 조각예술로서의
우수성을 보여준다. 여기에 새겨진 글자의 크기는 2cm이고 해서체(楷書體)이다.
천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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