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2013년4월21일(일요)
동산불교대학(원)동산가족 봄 사찰순례와 동참
사찰명:완주 송광사와 위봉사
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산21번지
추줄산 위봉사(崷崒山 威鳳寺)
전화번호:063-243-7657
1992년 세운 정면 1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
추줄산 위봉사 (崷崒山 威鳳寺)
전주에 살면서 한학자이시며 유명한 서예가이신
강암(剛庵) 송성용(宋成鏞)선생님의 멋진 현판을 볼 수가있다.
한자를 아는척 했기에 실수를 했다.
유자가 아닌 추줄산(崷:산 높을 추.崒:험할 줄 또는 취)
배우고 또 배워야한다.그래서 배우는 것이 즐겁다.
여수 향일암 현판
토함산 석굴암
***강암 송성용하면 우리는 흰 한복을 거룩하게 입고
정통적인 상투에 갓을 쓰고,넉넉한 풍체로 일필휘지하는
모습을 머리속에 떠 올리게 합니다.
우리 선비의 정신이 살아계셨던 분입니다***
사천완문
봉서루
조선 순조28년(1828)에 쓴 현판글
위봉사 보광명전
위봉사는 백제 무왕 5년(604)에 서암대사가 지었다는 설과 신라말에 최용각이라는
사람이 절터에서 세 마리 봉황새가 노는 것을 보고 위봉사(圍鳳寺)라 이름 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려 공민왕 8년(1358) 나옹화상이 절을 크게 넓혀 지었고 조선 세조
12년(1466) 석잠대사가 수리하였다고 한다.
위봉사 보광명전은 건축 수법으로 보아 17세기경에 지은 건물로 추정하며 ‘
보광명전(普光明殿)’이라 적힌 현판은 조선 순조 28년(1828)에 쓴 것이라고 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건물 안쪽은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우물천장으로 꾸몄다.
불단 위쪽으로 운룡(雲龍)과 여의주 모양의 구슬을 장식한 닫집을 만들어 놓아
불상에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안쪽 뒷벽에 그린 백의관음보살상을
비롯한 여러 불화와 비교적 채색이 잘 보존된 금단청은 차분하고 아늑한 법당
안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우수한 옛 채색기법과 조선시대 목조 불전건축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되는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
경남불교대학과 성암사에서 108산사순례하여 예불하는 모습
지장전
종각
위봉사 종무소
해강 김규진 선생의 글
해강선생의 글 가야산 해인사
개심사
전등사
송광사
보광명전
보광명전 뒤 백의관세음보살
삼성각
삼성각 탱화
위봉사의 전경
동산불교대학원 총학생회장 박문태 회장
〔설 화〕
범으로 둔갑한 효자이야기
옛적 운장산(雲長山) 기슭에 효심이 지극한 김만수(金萬壽)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사십 고개를 넘어선 그는 환갑이 지난 홀어머니를 모시고 아내와 두 남매를 거느리며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았다. 낮이면 아내와 함께 땀 흘려 일하고 밤이면 호롱불을
밝히고 책을 읽는데 시간가는 줄 모르는 어엿한 선비이기도 했다.
그러나 김서방에게는 한 가지 커다란 고민이 있었다. 늙으신 어머니가 유난히도 고기를
좋아하여 밥상에 고기반찬이 오르지 않으면 숟갈을 들 생각도 않는 것이었다.
늙으면 어린애처럼 된다던가, 환갑이 지난 뒤부터 식성은 더욱 까다로워져서 고기반찬이
없으면 투정을 부리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위봉사에 도사 스님 한 분이 오셨다는
얘기를 듣고 김서방은 "옳다, 그 분에게 가서 상의하면 좋은 방법을 일러 주시겠지"
라고 무릎을 쳤다.
다음날 아침 김서방은 새벽밥을 먹고 수 십리 고갯길을 단숨에 달려가, 스님을 뵙고
자초지종 사정얘기를 했다. 김서방의 얘기를 듣고 한참 동안 묵묵히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스님은 "내 그대의 효성에 감복해서 이 책을 주노라. 책에 쓰인 주문을 읽으면
능히 둔갑을 할 수 있느니라" 하고 책 한 권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책을 사용할 수 있는
자세한 방법까지도 일러주었다.
스님에게 수십 번 감사의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 김서방은, 식구들이 깊이 잠들자
부엌에 들어가 등잔불을 켜 놓고 책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김서방은
사나운 범의 모습으로 변모했고, 둔갑한 김서방은 집을 뛰쳐나가 삼경(三更)이 지난 뒤
커다란 산돼지 한 마리를 물고 돌아왔다.
이튿날 아침 마당에서 산돼지를 발견한 아내가 깜짝 놀라 김서방을 깨웠다. 김서방은
엉겹결에 산아 놓아둔 덫에 산돼지가 걸렸기에 새벽에 옮겨 놓았다고 둘러대었다.
아내는 미심쩍은 점이 있었지만 횡재한 산돼지가 대견하기만 해서 동네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열고, 며칠간 어머니에게 배부르도록 고기봉양을 해드렸다.
그러나 고기가 떨어지자 김서방은 또 다시 범으로 둔갑해서 산짐승을 잡아와야 했다.
이렇게 하기를 몇 차례, 아무래도 의심을 풀 수 없게 된 아내는 어느 날 밤 잠든 체하고
남편의 거동을 살폈다. 밤이 깊어지자 김서방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주문을 외우고
범으로 둔갑하여 쏜살같이 산으로 달려나갔다.
"내가 범 남편과 살다니…."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 와들와들 떨며 어쩔 줄 모르던 아내는 불현듯 정신을 차리고
남편이 처마 끝에 꽂고 간 주문 책을 꺼내어 불에 태워버렸다.
"원수 같은 이 놈의 책!"
집에서 일어난 일을 알 까닭이 없는 효자 범은 짐승을 잡아서 돌아와 보니 책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난 뒤였다. 안타깝게 처마를 뒤지는 남편 범을 보고, 아내는 보다 못해
손짓으로 불태워 버렸다는 시늉을 했다.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된 범은 펄펄
날뛰다가 날이 밝아오자 눈물을 쏟으며 산으로 돌아갔다.
그제서야 남편을 잃어버리게 된 것을 알게 된 아내는 울고 불며 후회한들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도 며느리로부터 아들의 사연을 듣고 사흘 동안 대성통곡을 했다. 자신의 못된
식성이 외아들을 돌아오지 못할 길로 보냈다며 피맺힌 넋두리를 했지만 이 역시 부질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이제 마지막 한 길, 위봉사에 가서 아들이 다시 사람이 되도록 불공을
드리는 수밖에 없다고 깨달았다. 그리고는 고기를 입에도 대지 않고 3년 동안을 하루같이
지성을 다해 천일기도를 드렸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효자 범은 때가 되면 잊지 않고 산짐승을 날라다 놓고는
사라졌다. 아내는 그때마다 고기를 마을사람들에게 고루 나눠주었고, 마을에는 큰 일이
생겨도 고기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고마운 나머지 마을사람들은 김서방네 농사를
모두 지어주고 ‘효자 범’ 이라고 부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김서방을 칭송했다.
그 사이 천일기도를 끝낸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와 며느리와 함께 범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사흘이 지나자 범은 또 짐승을 물고 나타났다. 어머니는 등잔불을 높이고 위봉사의 스님이
준 두루마리를 펼쳐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주문을 끝까지 외우고 두루마리를 불사르자
순간 범은 간 곳이 없고 그 자리에는 김서방이 서 있었다.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동네사람들도 큰 잔치를 벌이며 함께 기뻐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임금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어, 임금은 김서방 내외에게
큰상을 내리고 모든 백성이 길이 본받도록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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