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처럼 빼어난 소나무가 있어
사진을 담고 서울로 상경하여 검색을 하여보니 미인송이라고 한다.
벽송사에서 유명한 것은 미인송과 도인송이라고
지칭되는 두그루의 소나무가 있다.
비스듬이 기울여져 있으며 한껏 교태를 부리는 듯한 미인송과 꼿꼿이 서서
범접하지 못할 위엄을 갖춘 도인송...
미인송에 빌면 미인이 될 수 있고 도인송에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자료를 찾아보기 전에 이 사실을 몰라 아무것도 빌지 못했고
원통전에 3배하고 산신각에 3배하고 열심히 기도를 했다.
소재지: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259번지
벽송사(碧松寺)
전화번호:055-962-5661
원통전
靈光獨耀 脫逈根塵 영광독요 탈회근진
體露眞常 不拘文字 체로진상 불구문자
心性無染 本自圓成 심성무염 본자원성
但離妄緣 卽如如佛 단이망연 즉여여불
高嶽峨巖 智人所居 고악아암 지인소거
碧松深谷 行者所棲 벽송심곡 행자소서
신령한 광채 호젓이 밝아
육근(六根)·육진(六塵)을 아득히 벗어났고
영원한 진상 그대로 드러나
문자에 매이지 않도다
심성(心性)은 물듦이 없어
그 자체 본래 완전하나니
허망한 인연 여의기만 한다면
그대로가 여여(如如)한 부처라네.
높은 산 토굴은 지혜로운
사람의 거처이며
깊은 공짜기 암자는
수행자의 거처로다.
여기 주련은
(금강경 오가해와 원효스님의 발심수행장의 글)
간월루(看月樓)
벽송사 목장승
지리산 벽송사 (해인사 말사)
벽송사(碧松寺)는 조선 중종시대인 1520년 벽송지엄(碧松智嚴)선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수행하여 도를 깨달은 유서 깊은 절이다.
조선시대 불교의 선맥(禪脈)에서 보면 벽계정심, 벽송지엄, 부용영관,
경성일선, 청허휴정(서산),부휴선수, 송운유정(사명), 청매인오, 환성지안, 호암체정,
회암정혜,경암용윤, 서룡상민 등 기라성 같은 정통조사들이 벽송사에서 수행교화하여 조선
선불교 최고의 종가를 이루었다.
아울러 선교겸수한 대 종장들을 109분이나 배출하여 일면 "백팔조사 행화도량"
(百八祖師 行化道場) 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벽송사는 지리산의 천봉만학(千峰萬壑)을 앞뒤 동산과 정원으로 하여 부용(芙蓉:연꽃)이
활짝 핀 것과 같은 부용만개 (芙蓉滿開),혹은 푸른학이 알을 품고 있다는 뜻의
청학포란(靑鶴抱卵)의 형국에 자리하고 있다.
고인이 "운거천상(雲居千上 : 구름위 하늘세계) 별유천지 (別有千地 : 인간세상 밖에 따로있는),
부용정토(芙蓉淨土 : 연꽃이 활짝 핀 극장정토에) 조인만대 (祖印萬代 : 조사의 깨달음을
만대에 이어지리)" 라는 말로 표현하였듯이
벽송사는 만고에 수려한 풍광속에 자리하고 있다.
벽송사를 창건한 벽송선사는 태고보우, 벽계정심 선사로부터 내려오는 심인(心印)을
전해받아 조계정문(曺溪正門)의 정통조사가 되었다.
선사는 "무자화두(無字話頭)에 의해 무명(無明)을 타파하고 선요(禪要)에 의해 지혜의 병을 떨쳐버렸으니,
간화선 수행법(看話正宗)에 의해 수행하고 깨달음을 얻은 조선의 첫 번째 조사가 되었다.
그래서 벽송사는 간화선의 제 일 조정(朝庭)으로서의 역사를 간직한
'한국선불교의 근본 도량'이 되는 것이다.
벽송대사의 뒤를 이어 벽송산문의 제 2대 조사에 오른 분이 부용영관(芙蓉靈觀)선사이다.
부용선사는 도가 높고 학문이 깊어 배우러 오는 승속제자가 문정성시를 이루었는데,
특히 영호남 일대에 부용선사의 가르침을 받은 선비가 수 없이 많아
"전단향나무를 옮겨 심으니 다른 나무들도 향기가 난다"
라고 하는 말이 널리 유행하였다.
부용영관 문하에 수많은 제자가 배출되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분이
서산대사라 불리는 청허휴정(靑虛休靜)과 부휴선수(浮休善修)이다.
서산대사는 깨달음을 얻은 뒤 벽송산문의 제 3대조사가 되어
지리산 일대에서 행화하다 이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팔도도총섭이 되어
승군을 일으켜 도탄에 빠진 나라와 백성을 구하는데 전력을 다 하게 된다.
한국 선문의 거장 청허휴정이 벽송조정의 제 3대조사라는 사실은 벽송사 사적이 백미가 아닐 수 없다.
서산대사 문하에 사명대사와 청매조사도
이곳 벽송사에서 오도하여 크게 불법을 떨치게 된다.
그리고 부용영관의 다른 한 사람의 수법제자인 부휴선수선사 또한 벽송사에서
도를 깨닫고 벽송산문의 조사가 되어 오랫동안 지리산에서 행화하였다.
오늘날 한국불교 출가스님의 모두가 서산문파와 부휴문파에 속한다.
서산과 부휴 양대조사가 모두 벽송사 출신이라는 사실은 벽송사가
조선불교의 종가(宗家)임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벽송사를 가리켜서, "조계조정(曺溪朝庭), 벽송총림 (壁松叢林),
선교겸수(禪敎兼修),간화도량 (看話道場)" 이라고 불렀다.
1704년(숙종30년)에 환성지안대사가 벽송사에 주석하며 도량을 크게 중수하였다.
이 때에 불당,법당,선당,강당,요사 등 30여동의 전각이 즐비하였으며,
상주하는 스님이 300여명에 이르렀고, 부속암자는 10여개가 넘었다고 전한다 .
함양이나 지리산 고속도로 인월면 혹은 생초에서 마천면 추성리로 오면 칠선계곡으로 들어오는
아치형 다리가 하나 있고 그길로 계속들어오면 약2km지점에 벽송사와 서암 정사가 지척간에 있다.
한국선불교 종찰이라 할 만큼 많은 조사스님들이 이곳에서 수행을 하고 도를 이룬 유서깊은 절
벽송사가 있으며 글자그대로 두 그루의 푸른 소나무가 있는데 벽송사 원통전 뒤에 있는
도인송과 미인송이 경내를 굽어보고 있는 벽송사는 6.25의 전란 속에서 불타버린 옛 전각을
어렵게 어렵게 중창하여 쇄락해질대로 쇄락해진 사찰을 지금 서암정사에 주석하시는
경허스님 석호스님 석암스님으로 이어지는 한국불교 정통 법맥을 이으신
원응 큰스님께서 중창하시고 그 명맥을 이으셨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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