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50번지
구산선문 최초가람 지리산 실상사
전화번호:063-636-3031
실상사 창건에 대해《신증판 남원지》는 "증각대사(證覺大師)가 일으킨 실상사(實相寺)는
구산선종(九山禪宗)중에서도 으뜸으로 손꼽았으며 나중에는 증각(證覺)의 많은
고제자(高弟子)가 전국에 포교(布敎)하고 다니니 이를 실상산파라고 까지 불렀다.
문헌에 의하면 흥덕왕 3년(828)에 실상사를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 그후
이곳서는 수철(秀澈)과 편운(片雲) 양대사(兩大師)가 나왔다"라고 말했고,
<실상사 사적기>에도 "실상사는 828년(흥덕왕 3)에 홍척국사가 실상산문을
열면서 창건 했다"라고 했다.《다시 쓰는 택리지》(신정일)는 실상사에 대해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자락에 자리 잡은 실상사는 신라 구산선문 중
최초의 산문인 실상사파의 본사로서 우리나라 불교사상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천왕문
들앞의 잣나무
석등과 보광전
보광전
실상사의 주법당인 보광전은 1884년(고종 21)에 월송대사가 세운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이다.
건물 안에 모셔진 삼존상 중 본존불은 조선시대에 조성한 것이고, 좌우의 관음, 세지 두 보살은 원래 극락전에
아미타불과 함께 봉안되었던 것으로 월씨국(베트남)에서 모셔왔다고도 한다.
현재는 단청이 되어 있지 않아 소박한 모습으로 실상사를 찾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렇지만 조선후기의 건축양식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로써, 보광전 주변에는 83평을 추정케 하는
주춧돌이 남아 있어 굉장한 규모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1991년 동국대 박물관에 의한 보광전 주변 발굴에 의한 보광전 주변 발굴에서
이미 증명된 적이 있다.
불상 뒤에는 아미타여래도가 있고, 불단 오른편에는 1981년에 만든 신중불화와 산신불화가 있다.
약사전
현재 불사중입니다.
실상사 철재여래좌상
보광전 앞의 석등
오른쪽과 왼쪽에 쌍둥이 실상사 삼층석탑
실상사 목탑지
실상사 칠성각
오래된 실상사 뒷간
실상사의 역사 개관
천년사찰, 호국사찰로 잘 알려진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興德王) 3년(서기 828년) 증각대사
홍척(洪陟)이 당나라에 유학, 지장의 문하에서 선법(禪法)을 배운 뒤 귀국했다가 선정처(禪定處)를
찾아 2년동안 전국의 산을 다닌 끝에 현재의 자리에 발길을 멈추고 창건했다.
증각대사가 구산선종(九山禪宗) 가운데 최초로 그의 고향인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에 절을 세운 것이다.
증각대사의 높은 불심을 높게 기린 흥덕왕이 절을 세울 수 있게 해줬고
왕은 태자선광(太子宣光)과 함께 이 절에 귀의했다. 증각은 실상사를 창건하고 선종(禪宗)을
크게 일으켜 이른바 실상학파(實相學派)를 이루었고 그의 문하에서 제 2대가 된 수철화상과 편운(片雲)스님이
가르친 수많은 제자들이 전국에 걸쳐 선풍(禪風)을 일으켰다.
신라 불교의 선풍을 일으키며 번창했던 실상사는 그 이후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화재로 전소됐다가 3차례에 걸쳐 중수 복원돼 오늘에 이른다.
세조때(1468) 원인모를 화재로 전소됐다는 기록과 정유재란 때 왜구에 의해 전소됐다는
설이 동시에 전해지고 있다. 화재로 인해 실상사의 승려들은 숙종 5년(1680)까지 약 200년 동안
백장암에서 기거했으며 절에는 철불, 석탑, 석등 등만 남아 있었다 한다.
그러다가 숙종 때 300여 명의 수도승들과 함께 침허대사가 상소문을 올려 36채의 대가람을 중건했다.
또 순조 21년(1821) 의암대사가 두번째 중건을 했으며 고종 21년(1884)에 월송대사가 세번째 중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여기서 제3중창건을 하게 된 것은 고종 19년(1882) 어떤 사람들이 절터를 가로챌 목적으로
방화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실상사는 6?25를 맞아서는 낮에는 국군, 밤에는 공비들이 점거하는 등 또 한차례의 수난을 겪게 됐는데
용케도 사찰만은 전화를 입지 않았다.
천년 세월을 보내오면서 호국사찰로 알려진 실상사에는 유독 일본, 즉 왜구와의 얽힌 설화가 많이 전해진다.
앞서 언급한 사찰의 전소원인을 정유재란 당시의 왜구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는 부분에서도 일본과 관련된 전설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약사전의 약사여래불은 천왕봉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천왕봉 너머에는 일본의 후지산이
일직선상으로 놓여져 있다 한다. 이 때문에 가람배치도 동쪽을 향해 대치형을 하고 옆으로 강이 흘러 대조적이다.
이 절에는 "일본이 흥하면 실상사가 망하고 일본이 망하면 실상사가 흥한다"는 구전이 있는데 이는 천왕봉
아래 법계사에서도 전해지고 있어 흥미를 끈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실상사 경내의 보광전 안에 있는 범종에
일본 열도의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스님들이 예불할 때마다 종에 그려진 일본열도를 두들겨 치고 있다.
이는 앞서 언급했듯 우리나라와 실상사가 흥하면 일본이 망한다는 구전에 의한 것으로 여겨진다.
스님들이 이 속설에 따라 범종의 일본지도를 많이 두드린 탓에 범종에 그려진 일본지도 중
훗카이도와 규슈지방만 제 모양으로 남아 있을 뿐 나머지 열도는 희미해져 가고 있다.
최근의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의 망언이 있는 오늘날 한일관계를 두고 볼 때 보광전의
범종에 얽힌 사연이 갖는 의미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하다.
이 같은 전설과 구전들을 살펴볼 때 실상사는 일본에 대한 호국사찰이며 불교문화의
큰 도량임을 알 수 있다.
(구산선문 최초의 가람 지리산 실상사)
***우리나라의 구산선문***
1) 실상산문(實相山門) : 전북 남원군 산내면 실상사. 신라 흥덕왕 때 선사 홍척이 세운 선문
2) 가지산문(迦智山門) : 전남 장흥군 유치면 가지산의 보림사. 도의국사가 세운 선문.
3) 사굴산문(捨堀山門) : 강릉 하구정면 굴산사지 문성왕때 범일선사가 개창한 선문. 범일대사.
4) 동리산문(桐裡山門) : 전남 곡성군 죽곡면 동리산 태안사. 신라 문성왕때 선사 혜철이 세운 산문.
5) 성주산문(聖住山門) : 충남 보령군 미산면 성주사지. 신라 문성왕때 선사 무염이 개창한 선문
6) 사자산문(師子山門) : 영월군 수주면 흥녕사(현재 법흥사).
7) 희양산문(曦陽山門) : 경북 문경군 가은면 원북리 희양산 봉암사
8) 봉림산문(鳳林山門) : 경남 창원 상남 봉림산사지
9) 수미산문(須彌山門) : 황해 해주군 금산면 광조사
위의 구산선문중 사굴산문(굴산사지), 성주산문(성주사지), 봉림산문(봉림사지),
수미산문(광조사지)은 터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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