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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 김길웅 시인

거스러미

by 동파 2024.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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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러미
 
김길웅, 칼럼니스트

지저깨비, 보푸라기, 군더더기, 거스러미. ‘불필요한 것’이 이 
말들의 공통점이다. 노작 과정에서 깎거나 다듬을 때 생겨난 
잔 조각 ‘지저깨비’, 종이나 옷의 거죽에 일어나는 잔털 ‘보푸라기’, 
쓸데없이 덧붙는 ‘군더더기’, 손발톱 뒤 살 껍질이나 나무의 결에 
가시처럼 터져 나오는 ‘거스러미’.

치열한 창작의 손이 털어 놓은 쪼가리거나 전성기가 지난 퇴락과 
소진의 기운, 과잉의 군것이거나 간에 그것들은 이미 중심에서 
밀려나와 쇠락이 진행되고 있는 것들이다. 명이 다해 버려질 
허름한 것들, 좋은 것이 쓰다 남은 허름한 허섭스레기다. 
그중, 사람을 꽤 성가시게 하는 게 거스러미다. 
손발톱의 뿌리가 박힌 자리에 덧나 귀찮게 구는 궂은 살. 
거친 일을 하는 손일 때는 걸리거나 긁혀 피가 나기도 하니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손톱 언저리에 덧나 거슬리는 
눈엣가시 같은 녀석이다.

일의 현장에 가 보면 나무나 돌로 물건을 만들며 끊임없이 
다듬어 내고 있다. 나무는 대패로 밀어내고, 거친 돌은 정이나 
해머로 쪼면서 조탁하고 연마한다. 나무와 돌에 생겨난 거스러미는 
딱딱하고 거칠다. 그걸 제거해 다듬는 과정이 곧 제작의 마감 손질이다. 
그걸 그냥 놓아두면 미완에 그치니 내공의 정교한 손길이 따라야 
만 한다. 형상이나 실체를 지닌 것에만 거스러미가 있는 게 아니다. 
하다 보면 대소사에 부스럼을 만들어 내는 수가 있다. 일을 매끄럽지 
못하게 하는 밀썽꾸러기도 거스러미다.

먼 데를 돌아왔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내 글은 어떠한가. 내 글에는 거스러미가 없는가. 
습작기를 거쳤지만, 까탈스럽고 버거워 쓸수록 어려운 게 문장이다. 
줄이고 덜어내면서 간결하게 쓰다 봐도 너덜거리는 부사와 형용사의 
보풀, 중복되는 잉여의 말, 난삽하고 공허한 말의 퇴적, 비효율의 
언어 구사, 성긴 문장의 흠결, 동어반복의 요설에 고통스럽다.

사실주의 작가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을 떠올린다. 
그가 제자 모파상에게 이른다. “이 세상에는 똑같은 두 개의 모래가 
없으며, 똑같은 두 마리의 파리도 없다. 사물의 이름에는 오직 하나의 
명사, 움직임에는 하나의 동사, 그것을 형용하는 데는 오직 하나의 
형용사가 있을 뿐, 작가는 이 하나밖에 없는 말을 찾아야 한다.”

어디쯤일까. 
이 새벽, 옛 시인의 목소리가 귓전에 솔바람으로 온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1930년대의 시인 김영랑의 시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의 앞 연이다. 
잘 쪼고 다듬은 시어, 순수시가 갖는 언어 감각의 섬세함이야 
문학사적 전범이지만, 이 시가 보여 주는 우리말의 그 순연한 
민낯에 소스라쳐 놀란다. 우리말과 글이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된다는 사실에 고개 수그러든다.

격하거나 된소리에 익숙한 타성에 우리말과 글은 얼마나 거칠고 
조악한가. 말이나 글은 말하거나 쓰는 이를 말해 준다. 
작가의 심성은 고운 말로 말하고, 고운 글로 쓸 때 더욱 빛난다.

거스러미 없는 깔끔하고 간명한 개성의 문체를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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