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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보 김길웅 시인

개의 비유법

by 동파 2024.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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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비유법
 
김길웅, 칼럼니스트

개는 잘 따르고 용맹스럽다. 
또 영묘해 영물이라 말한다. 
날카로운 이빨에서 그의 조상이라는 늑대의 야성을 본다. 
냄새를 잘 맡으며 귀가 밝아 사냥견이나 군견, 안내견, 마약·
폭약 탐지견이나 목양견(牧羊用)으로도 기른다.

개 없이는 못 산다는 사람도 많다. 
목욕을 시키며, 털을 깎아주고, 고운 옷을 입혀 장신구를 달아 
치장해주는 세상이다. 이를 보며 시절의 변화를 읽는다.

몇 년 전, 어느 절에 갔다가 혼절할 뻔 했었다.

주지 스님이 삽살개를 방에 들여 친구로 지내고 있다. 
송아지만한 몸집에 목털은 말갈기를 연상하게 하고 있었다. 
방에 들어서려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뜻밖으로 사람에게 순해 숨을 돌리는 순간, 갑자기 맹수같이 밖으로 
내닫지 않는가. 절 밖이 소란하면 그렇게 사나워진단다. 
고라니를 향해 돌진하는 사자의 뒷모습이었다. 
불법의 수호신 금강역사인가.

하루는 애월 고내봉 절에 갔더니, 
누렁이 한 마리가 마당귀에 있다가 사람을 보자 꼬리를 내리며 
대웅전 뒤 과수원으로 몸을 숨긴다. 강아지 적부터 불경에 귀를 
맑혔는지 짖을 줄도 모른다. 
산을 오르내리는 노스님 산책길에 앞장선다는 말씀에 우정을 느꼈다.

사람들은 개하고 떼려야 뗄 수 없는 연을 맺는다. 
말에도 ‘개’자가 많이 들어가 친밀감을 실증한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산다 함’은 돈을 천한 일로 벌었더라도 
좋은 일에 쓴다는 빗댐이다.

또 상대를 낮잡아 부를 때 ‘개 발싸개’라고 한다. 
허름하고 빈약함의 비유다. ‘사람을 개 콧구멍으로 안다’며 
사람을 업신여긴다고 투덜거리기도 한다. ‘개가 개를 낳지’ 하고 
비아냥거리는 것도 이치에 닿는 어법이다. ‘개꼬리 삼 년 묵어도 
황모 되지 않는다’는 말도 다르지 않다.

이 밖에도 ‘개 눈에는 무엇만 보인다’고도 한다. 
평소 자신이 좋아하거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만 눈에 띈다는 
놀림조로 제법 풍자적이다.

한국인은 인정이 많다. 그 정 많음을 보이는 말도 있다.

‘개도 나갈 구멍을 보고 쫓아라’. 궁지에서 빠져나갈 
여지를 주라 함이다. 언어의 다의성을 함축하고 있어 놀랍다.
 ‘쥐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찍소리한다’는 말과 상통한다. 
몰아붙이다 의외의 저항에 부딪힌다는 얘기다. 우리 
넉넉한 마음이 엿보인다.

‘개도 텃세한다’는 말도 있다. 먼저 자리 잡은 사람이 나중에 
온 사람에게 선뜻 자리를 내주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다.

‘개뿔도 모른다’고 한다. 아는 척한다 함이다. 개에겐 뿔이 없다. 
이름 한번 희한한 풀이 있다. ‘개불알꽃’. 하고 많은 말 가운데 그런가. 
악취미다.

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니, 
너른 지면에 개를 주인공으로 하는 속담이 두 쪽에나 걸쳐 있다. 
사람과 친숙해서 나온 
구어는 더 감각적이다.
 ‘개 같은’이라거나 ‘개만도 못한’이라는 수식을 밥 먹듯 쓰고 있잖은가. 
마구잡이로 쓸 말이 아니다. 상대가 개 같은 사람인가. 
개만도 못한 사람인가. 자신은 그런 비유에서 비켜날 
‘개’자를 함부로 입에 바를 일이 아니다. 
개가 얼마나 부러웠으면 ‘개 팔자가 상팔자’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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