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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싶은곳

강화도 연미정(燕尾亭)을 찾아서

by 동파 2016.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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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군(江華郡)의 연혁(沿革)

초명은 갑비고차(甲比古次)
고구려때에는 혈구군(穴口郡)
신라경덕왕때에는 해구군(海口郡)
고려 고종때에는 강도(江都)
그 후에 강화(江華)라고 했다.(傳燈本末寺誌)
강화도가 고향이면서 이곳을 찾아 담사를 못했다.
군사지역으로 옛날에는 쉽게 방문을 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쉽게 방문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교통이 편리하다.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여 한줄기는 서해로, 또 한줄기는 강화해협으로 흘러 그 모양이 마치 제비 꼬리 같다 하여
연미정(燕尾亭)이라 부른 것이다.

한양으로 가는 배들은 이 정자 아래에서 만조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한강으로 올라가곤 하는데
달이 뜨면 그 광경이 더욱 멋져 강화 팔경의 하나이기도 하다.

고려 (1213~1259) 1244년 왕이 구재(九齋)의 학생들을 모아 면학케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정묘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와 굴욕적인 형제 관계의 강화도조약을 맺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후 영조 20년(1744)에 중건되었고, 1891년 중수한 후 여러 차례 보수되었다고 한다.

인천 강화군 강화읍 월곳리 242
전화번호032-930-4338

홈페이지http://tour.ganghwa.incheon.kr/ 카테고리여행 > 관광,명소 > 문화유적

 

심은(沁隱)전정우(全正雨)작품

강화도 심은미술관 관장 (서예인)

 

 

 

 

 

 


화남 고재형(1846-1916) 선생시

 

燕尾漕


燕尾亭高二水中
연미정고이수중
            

三南漕路檻前通
삼남조로함전통
  

浮浮千帆今何在
부부천범금하재
 

想是我朝淳古風

상시아조순고풍


"연미정 높이 섰네 두 강물 사이에
삼남지방 조운 길이 난간 앞에 통했었네
 떠다니던 천 척의 배는 지금은 어디 있나
생각건대 우리나라 순후한 풍속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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