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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산사(山寺)참배

화성 용주사(龍珠寺)를 찾아서(동파산사순례91)

by 동파 2016.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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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용주사(龍珠寺)를 옛날 1972년(?)에 방문을 했던 기억이 있었다.

오늘 2016년 1월17일(일) 이곳에 방문을하니 좀더 일찍 참배를 못했던 것이 아쉽기도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본사 용주사(龍珠寺)

경기도 화성시 용주로136(송산동)

전화번호:031-234-0040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이다. 854년(문성왕 16)에 창건하여 952년(광종 3)에 소실된 갈양사(葛陽寺)의 옛터에
창건된 사찰이다.

1790년(정조 14)에 사일(獅馹)이 팔도 도화주(八道都化主)가 되어 철학(哲學) 등과 함께 팔도 관민의 시전(施錢)
8만7000여 냥을 거두어 갈양사 옛터에 145칸의 사찰을 창건하였다. 이 절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능인 현륭원(顯隆園)에 명복을 빌어 주는 능사(陵寺)로 창건되었다.
 창건과 동시에 이 절은 전국 5규정소(五糾正所)의 하나가 되어 승풍(僧風)을 규정하였다.
그 뒤 1900년에 용해(龍海)가 중수하였고, 1911년에는 30본산의 하나가 되어 수원·안성·남양·죽산·진위·
음죽·용인·고양·시흥 등에 있는 49개 사찰을 관장하였다.

1931년에 강대련(姜大蓮)이 중수하였고, 1955년 사찰 정화 뒤에 조계종 제2교구 본사가 되었다.
같은 해에 관응(觀應)이 불교 전문강원을 개설하였으며, 1965년 대웅보전을 중수하였다.
1966년 주지 희섭(喜燮)이 동국역경원(東國譯經院)의 역장(譯場)을 두었고, 1969년 전강(田岡)이 중앙선원(中央禪院)을
설립하여 1975년 지장전을 중수하고, 1977년 일주문을 세웠으며, 1981년 3층의 부모은중경탑을 세웠다.
1985년 불음각(佛音閣), 1986년 중앙선원 건물을 지었다. 1987년 대웅보전을 중수하고, 1988년 호성각을 지었다.
 1993년 천불전을 짓고 만수리실을 개축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1790년에 건립한 대웅보전(大雄寶殿)이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지장전(地藏殿), 시방칠등각(十方七燈閣), 범종각, 법고각(法鼓閣), 봉향각(奉香閣)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6호인 천보루(天保樓), 나유타료(那由他寮), 만수리실(曼殊利室), 삼문각(三門閣), 일주문, 수각(水閣),
동별당(東別堂) 등이 있다. 또 문화재로는 국보 제120호인 용주사 동종과 보물 제1754호인
 불설대보부모은중경판(佛說大報父母恩重經版),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호인 금동향로, 제12호인 청동향로,
 제13호인 용주사 상량문, 제14호인 전적수사본(典籍手寫本), 제15호인 용주사 병풍,
 제16호인 용주사 대웅전후불탱화 등이 있다.

 

 

 

 

 

 "禪宗刹大本山"
世尊應化二千九百五十年
仲秋 以應
姜松屋大和尙雅囑
奉獻龍珠寺佛展
竹儂 安淳煥

동파는 여기에서 죽농선생의 현판글을 볼수가있었다.

1924년 가을 강송옥대화상으로부터 부탁을 받고

죽농 안순환 선생이 쓴 글입니다.

 

 

여기 송광사의 글씨는 해강선생의 글씨이고

양옆으로는 대나무와 난은 죽농 안순환선생의 그림이다.

마곡사의 현판에도 해강선생의 글씨와

죽농 안순환 선생의 그림을 볼수가있다.

직접 죽농선생의 글씨는 용화사에서 볼 수가있었다.

 

여기 3문에는 龍珠寺佛의 첫음으로

다음과 같은 주련을 볼수가 있다.

 

龍蟠華雲 용반화운 

 珠得造化 주득조화    

 寺門法禪 사문법선    

 佛下濟衆 불하제중    


 잠룡이 화운 속에 서리었다가

 여의주를 얻어서 조화 부리고

 사중의 스님들은 선을 수행해

 불법으로 중생을 제도하도다

 

천보루와 5층석탑

 

 

 

 

 

 

용주사 대웅보전 주련

 

報化非眞了妄緣     
法身淸淨廣無邊     
千江有水千江月     
萬里無雲萬里天     

   
보신과 화신은 참이 아니라 허망한 인연인 줄 알면   
 법신은 청정하여 광대무변하리라   
천 강에 물 있으면 천 강에 달 비치고   
 만 리에 구름 없으면 만 리가 하늘일세라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 아미타

 

신중탱화

 

관세음보살

부모은중경탑

 

① 어머니 품에 품고 지켜 주는 은혜
   [懷耽守護恩(회탐수호은)]
 
 ② 해산날에 즈음하여 고통을 이기시는
     어머니 은혜
    [臨産受苦恩(임산수고은)]
 
 ③ 자식을 낳고 근심과 고통을 잊는 은혜
    [生子忘憂恩(생자망우은)]
 
④ 쓴 것을 삼키고 단 것을 뱉아 먹이는 은혜
   [咽苦吐甘恩(인고토감은)]
 
⑤ 진 자리 마른 자리 가려 누이는 은혜
   [廻乾就濕恩(회건취습은)]
 
⑥ 젖을 먹여서 기르는 은혜
   [乳哺養育恩(유포양육은)]
 
 ⑦ 손발이 닳도록 깨끗이 씻어주시는 은혜
    [洗濁不淨恩(세탁부정은)]
 
 ⑧ 먼 길을 떠나갔을 때 걱정하시는 은혜
    [遠行憶念恩(원행억념은)]
 
 ⑨ 자식을 위하여 나쁜 일까지 감당하는 은혜
    [爲造惡業恩(위조악업은)]
 
⑩ 끝까지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 주는 은혜
   [究意憐愍恩(구경연민은)]

地藏大聖威神力 지장대성위신력 

 

恒河沙劫說難盡 항하사겁설난진 

 

見聞瞻禮一念間 견문첨례일념간 

 

利益人天無量事 이익인천무량사 

 

 

 

 

 

지장보살님의 크나큰 위신력이여 

 

억겁을 두고 설명해도 다 말하기 어렵도다 

잠만 보고 듣고 예배하여도 

 

인천에 이익된 일 무한히 많아

 

 


전강대종사(1898~1975)는 현대 한국의 대표적 고승이자 용주사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합니다.
입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용주사 대중들에게 크게 추앙받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먼저 스님의 행장을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스님의 속성은 정(鄭)씨이며 전남 곡성출신으로 부친은 해룡(海龍), 모친은 황계수(黃桂秀)로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화상(霽山和尙)을 은사로, 응해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출가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습니다. 1918년 해인사 강원에서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한 뒤, 도반의 죽음을 보고 무상함을 느껴 김천 직지사(直指寺) 천불선원(千佛禪院)으로 들어가 제산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불철주야 정진하고, 이후 예산 보덕사(報德寺), 정혜사(定慧寺) 등에서도 수행에 전념하였습니다.

 

 

 

전강스님 오도송(悟道頌)

 昨夜月滿樓(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창외노화추) 
佛祖喪身命(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류수과교래)
 
어젯밤 달빛이 누각에 가득하더니
창 밖엔 갈대꽃 가을이로구나.
부처와 조사도 몸과 목숨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 구나.


만공스님 전법게(傳法偈)

 

佛祖未曾傳(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아역무소득) 
此日秋色暮(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峯(원소재후봉) 

 
 
부처와 조사도 일찍이 전하지 못하였고
나 또한 얻은 바 없다네
오늘 가을 빛 저물어 가니
원숭이 휘파람은 뒷산 봉우리에 있구나.

천불전

범종각(국보제120호)

 

 

 

 

천보루5층탑앞에서 동파

조지훈 시인은 이곳에서 승무를 보고 쓴 시가 승무라고한다.

 

승무(僧舞)

    조지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빰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고교시절에 외우던 시를 다시 읊어보다.

여기 글은 용주사 홈페이지에서 많이 인용을했습니다.

용주사  http://www.yongjoo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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