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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회현동

제3회 회현동 은행나무 축제

by 동파 2014.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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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제1회 회현동 은행나무 축제

2013년 제2회 회현동 은행나무 축제

 

2014년 제3회 회현동 은행나무 축제

 

제3회 회현동 은행나무 축제

일시:2014년10월27일 오후1시부터 4시

장소:회현동 은행나무 쉼터

 

 

 


 회현동 은행나무 축제가 벌써 제3회를 맞이합니다.
 나는 매일 이 은행나무 길을 걸어가면서 선대 조상님께 감사하고
이 멋진 은행나무가있게되어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길을 걸어 갑니다.
마침 오는 10월27일 제3회 회현동 은행나무 축제가 있게 되어 행복한 마음으로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여기 은혜 갚은 은행나무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은혜 갚은 은행나무 >
 
“아~악~ 안 돼~! 안~돼~! 그 나무를 베면 안 된다니까!”
왜병은 날카로운 고함소리에 깜짝 놀라 손을 멈추었다. 그리고 재빨리 칼을 뽑아들었다.
그런데 나타난 사람은 머리카락이 새하얀 노파였다, 노파는 왜병에게 손을 내저으며
나무를 베지 말라고 고함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노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왜병은
뽑아들었던 칼을 칼집에 꼽으며 노파를 노려볼 뿐이었다.
 
때는 임진왜란이 끝나가던 1598년 한양도성 안 남산골이었다. 7년간이나 계속된 전쟁으로
지친 왜병들은 조선군의 반격을 견디지 못하고 퇴각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남산 아랫마을에 진치고 있던 왜병 하나가 화풀이 대상으로 삼은 커다란 은행나무를
베어버리려고 톱질을 하고 있을 때 노파가 나타난 것이다.
 
톱날은 여전히 은행나무 밑둥치에 박혀 있었지만 아직은 무사한 상태였다.
가까이 다가선 노파는 왜병이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깨닫고
손짓발짓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은행나무는 100년이나 된 나무로 자신이
치성을 드리는 나무이니 톱으로 베지 말라는 것이었다.
 
은행나무를 구하려고 왜병 앞에 무릎 꿇은 노파
노파의 손짓발짓으로 말뜻을 알아차린 왜병은 어이없다는 듯 눈을 부라렸다.
자신이 화풀이로 은행나무를 자르려는데 노파가 방해하는 것이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왜병은 눈을 부라리며 노파를 위협 한 후 다시 톱질을 하려고 했다.
 그때였다 노파는 왜병의 두 손을 붙잡으며 왜병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원하는 표정을 짓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자신이 손에 들고 있던 생선꾸러미를 왜병에게 넘겨주었다.
 왜병은 처음에는 화를 냈지만 늙은 노파가 무릎을 꿇고 눈물까지 흘리며 애원할 뿐만 아니라,
 생선까지 손에 쥐어주자 은행나무를 베어버리려던 마음을 접고 일어섰다.
노파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왜병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병이 사라지자
노파는 은행나무 가까이 다가갔다.
 
“은행나무님 얼마나 아프십니까? 이렇게 상처가 났으니... 제가 돌봐드리겠습니다.”
 노파는 근처에 있는 개울에서 물을 조금 길어다가 고운 흙을 이겨 톱질로 상처 난
부위에 정성스럽게 발라주었다. 그리고 그 앞에 절을 하며 치성을 드리기 시작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은행나무님, 제발 3대독자 우리 아들 살아 돌아오게 해주십시오.
” 노파가 치성을 드리는 것은 왜군의 침입으로 위태롭게 된 나라를 구하기 위해 군대에
외아들이 무사히 살아서 돌아오기를 바라는 치성이었던 것이다, 노파는 아들이 군대에 간
이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은행나무 앞에 치성을 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왜병이
그 은행나무를 베려는 것을 보고 너무 놀란 나머지 죽음을 무릅쓰고, 왜병에게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애원했던 것이다.
 
은행나무가 은혜를 갚았을까? 홀로 살아 돌아온 노파의 아들
 
왜병의 톱질로 생긴 은행나무의 상처는 꽤 깊었지만 노파의 정성스러운 돌봄 때문인지
별탈이 없었다. 근처에 주둔하고 있던 왜병들은 얼마 후 조선군들에게 밀려 허겁지겁 한양 땅을 떠났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노파의 아들은 무사히 살아서 돌아왔다. 한 동네에서 함께 군대에 간
다른 청년들은 모두 전쟁에서 전사하여 살아 돌아온 사람은 노파의 아들 하나뿐이었다.
노파는 아들이 살아 돌아온 날 밤, 다시 은행나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은행나무님,
제 아들을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노파는 무릎을 꿇고 앉아
눈물을 흘렸다. 감사의 눈물이었다.
 
왜병의 톱질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노파의 아들을 살려준 ‘은혜 갚은 나무’ 전설이 깃든 은행나무는,
중구 회현동 4거리 남산터널 입구 오른편에 있는 우리은행 본점 구내에 있다. 이 나무는 서울시
보호수 ‘서 2-4호’로 513년 된 은행나무다. 은행나무는 높이가 22,6미터, 둘레가 8미터 19센티미터나
되는 거목이다.
 
은행나무가 서있는 우리은행본점 부지에는 조선시대 중종임금 때 영의정을 지낸 정광필의
 집터였다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은행정문 오른편 은행나무 앞에 서있는 동래정씨 회현방
 표지석이 있는데, 그 내용에 따르면 문익공 정광필의 꿈에 한 선인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선인이 바로 전설의 주인공인 은행나무에 당시 정승들만 사용하는
 물소뿔로 만든 허리띠인 서대 12개를 걸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정광필의 후손들 중에서
 영의정과 좌의정, 그리고 우의정 등 정승 12명이 나왔다고 한다. 한 마디로 전설의 은행나무가
서있는 정광필의 옛 집터는 복이 가득한 길지, 은행나무는 행운의 나무였던 셈이다.
 나는 몇년전 은행나무에 식목일날 막걸리를 주었던 계기가되어 이처럼 회현동 은행나무 축제가 되었다. 

은행나무 추진위원장 오세홍 회장님의 적극 추진과 회현동 새마을금고 여창대 이사장님의 협조가 있었고

중구청과 우리은행,남대문시장(주),남대문 새마을 금고,신세계백화점,각 직능 단체가 협조하에 이렇게

자리매김을 했습니다.
전설의 은행나무는 우리은행 본점 뒤에 우뚝 서있습니다.
지하철 4호선 1번 출구에서 나오면 멋진 은행나무를 볼 수가 있습니다.
나는 동래정씨 33세 손으로 남대문시장에서 장사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일  이 길을  늘 합장을 하면서 걸어가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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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당일 교통 통제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