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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묘심행)

제주도 조천 연북정(戀北亭)

by 동파 2014.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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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북정(戀北亭)

지정번호 유형문화재 제3호
(1971년 8월 26일 지정)
소재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690
제작시기 1374년

 

 

연북정(戀北亭)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 있는 고려, 조선 시대의 정자이다.

바닷가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정자로 조선 선조 23년(1590)에 조천관 건물을 새로 지은 후
쌍벽정이라 하였다가 선조 32년(1599)에 건물을 보수하고 이름을 연북정으로 고쳤다.
‘연북’이라는 정자의 이름은 제주도로 유배 온 사람들이 한양의 기쁜 소식을 기다리면서
북쪽에 계시는 임금을 사모한다는 충정의 뜻을 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사람의 키보다 훨씬 높게 축대를 쌓고 다진 기단 위에 세웠다. 축대의 북쪽으로 둘러싼
타원형 성곽의 모양과 크기가 옹성과 비슷한 것으로 보아 망을 보기 위한 망대의 용도로
지은 것이라 추측한다.
기둥의 배열과 건축재료의 배열방법은 모두 제주도 주택과 비슷하다.

 

 

 

 연북정에서 바라본 조천 양진사

(조천 평화통일불사리탑사에 안내문)

 

조천 연북정과는 관련된 허응당 보우스님이야기를 빼놓을 수가없다.

허응당 보우 스님은 조선5백년 혹독한 숭유배불의 법난이 지독스럽던 역사적 암흑기 한 가운데서
 온 몸을 던져 쓰러져가던 불법을 중흥시키고 오늘에 이르게한 나라와 불교의 위대한 스승이시다.
 스승의 법명은 보우(普雨)이고 법호는 나암 허응당이시다.

조선 중종(中宗)5년(1510)에 태어나시어 8세 어린나이에 불문에들어와 15세때 금강산마하연에서
 사미계를 받고 24세에 금강산이암굴에서 수행을 시작하여 크게 깨달으셨다. 도를 이룬지 6년만에
금강산을 나서 만행을 시작하신 스님은 당시 수많은 사찰이 헐리고 스님들이 무고하게 투옥되는
무술법난(1538)을 보시고 이 땅 어디에도 갈곳이 없음을 한탄하시며 다시 금강산으로 들어가셨다.

39세에 문정왕후의 명을받아 봉은사주지로 부임하신 스님은 48년동안 철폐되었던 선교양종을
다시일으켜 세우시고 42세에는 제104대 판선종사도대선사가 되셨다.
1552년 승과가 다시열려서산과 사명을 비롯한 수많은 종장과 인재들이 배출되고 도승제가 시행되어
출가승이 5천명에 이르는 등 8년에 걸친 스님의 불교중흥에 대한 원력과 의지로 인해 꺼져가던
법등이 다시 살아났다.

하지만 유생과 척불세력들의 시기와 모함이 날이갈수록 높아져 46세에 봉은사주지를 사임하고
서산대사에게 후임을 맡긴뒤 청평사에서 7년을 머무셨다. 53세에 문정왕후의 간청으로 정릉을
선능으로 옮기고 다시 선종판사의 직책을 맡으셨다.

56세 명종20년(1565) 문정왕후 돌아가신뒤 스님을 음해하는 참소가 연일 계속되자 마침내 스님은
 승적을 마져 박탈당한채 제주도로 유배되셨다가 그해 가을 제주목사 변협의 위해로 세수
56세(법랍 49)에 순교 입적하셨다.

허응당 보우대사의 열반송은 다음과 같다.

허깨비가 허깨비 고을에 들어

    오십여 년을 미치광이처럼 놀았네

    인간의 영욕을 다 겪고

    중의 탈을 벗고 푸른 하늘에 오른다.


    幻人來入幻人鄕

    五十餘年作戱狂

    弄盡人間榮辱事

    脫僧傀儡上蒼蒼

 

(동국대학교 역경원 ;<한글대장경> 김상일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