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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존불좌상(통일신라), 높이 160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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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주실벽에 새겨진 보현 보살 입상, 높이 198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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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감실의 보살좌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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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면관음보살, 석굴암의 십일면관음보살상 |
석굴암 안에 봉안된 38구의 통일신라시대 석불.
즉 본존불을 중심으로 범천(梵天)구, 제석천(帝釋天) 2구, 보살 3구,
나한 10구, 감실보살(龕室菩薩) 8구, 사천왕 4구, 인왕(仁王) 2구,
팔부신중(八部神衆) 8구가 배치되어 있다.
우선 전실에 들어서면 양쪽으로 갑옷을 입고 암좌 위에 서 있는 4구의
원래는 불교 이전부터 인도에 있었던 신으로 불교에 수용되어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상(神將像)으로 변한 것으로 부처가 설법할 때
항상 따라다니는 천부상이다.
그 이름은 천(天)·용(龍)·야차(夜叉)·건달바(乾 ![](http://100.file.daum.net/font/c5af0.gif) 婆)·아수라(阿修羅)·
가루라(迦樓羅)·긴나라(緊那羅)·마후라가(摩喉羅伽)로 알려져 있으나
경전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이 가운데 머리에 용관을 쓴 용, 사자관을 쓴
건달바, 3개의 얼굴과 6개의 팔을 가진 아수라는 쉽게 확인할 수
있으나 나머지 상들은 구별이 어려워 정확한 명칭을 붙이기가 어렵다.
더욱이 입구 양쪽에 있는 각각 2구의 팔부신중은 굴 안의 상들과 비교해
조각수법이 현저하게 떨어져 후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전실에서
원형주실 입구 양쪽에 있는 인왕상은 문지기의 역할을 하는 천부상이다.
상반신은 옷을 걸치지 않고 근육을 자랑하며 바람에 날리는 천의와
치맛자락이 특징적이다. 또한 번뇌와 망상을 깨뜨린다는 상징적인
주실로 들어가는 비도 양쪽에는 각각 2구의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모두 갑옷을 입고 손에는 칼이나 창을 들고 악귀를 밟고 서 있다.
이 상들은 불법과 불국토를 사방에서 수호하는 호법신장상이다.
손에 탑을 들고 있는 상은 북방의 다문천(多聞天)으로 석굴암에서는
오른쪽 안쪽에 위치해 있으므로 그 옆의 상은 동방의 지국천(持國天)
이다. 왼쪽 입구쪽의 상은 남방의 증장천(增長天), 그 안쪽의 상은
서방의 광목천(廣目天)으로 확인된다.
본존상이 모셔져 있는 원형의 주실 벽에는 15구의 부조상이 있고
벽 위에는 10개의 감실이 있는데 이 가운데 2곳은 비어 있고 나머지에는
8구의 보살좌상(86~95cm)이 있다. 우선 입구쪽에서 가까운 벽부터
보면, 양쪽의 처음 두 상은 범천과 제석천(213cm)으로 원래는
인도 아리안계의 브라마(Brahma)와 인드라(Indra) 신으로 불교에 귀의하여
불법수호와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천부상이다.
범천은 오른손에 번뇌를 털어내고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불자(拂子)를
들고 있으며, 왼손에는 번뇌를 씻어준다는 물병인 정병을 들고 있다.
제석천은 무복(武服)을 입고 손에는 금강저를 들고 있으며 머리에 쓴
높은 관이나 늘어진 옷주름선과 천의 표현은 정교하면서도 부드러워
마치 회화적인 표현을 보는 듯 섬세하다. 이 두 천부상 옆에는 조그만
잔을 들고 서 있는 상과 길고 네모난 지물을 들고 서 있는 보살상이
있는데 그 명칭은 학자에 따라 의견이 다르다. 길고 네모난 물건을 들고 있는 상은 지혜제일의 문수보살(文殊菩薩:198cm)로 경권(經卷)을 들고 있으며,
그 반대편 상은 문수보살과 짝을 이루고 부처를 보좌하며
보살행을 실천하는 보현보살(普賢菩薩:198cm)로 추정된다. 부드러운
천의자락은 바람에 나부끼듯 가벼운 느낌을 주며 영락장식과 군의(裙衣)의
늘어진 주름이 서로 겹치면서도 입체감과 부드러운 조형미를 보여준다.
보살상 다음에는 양쪽으로 5인의 나한상(213~218cm)이 각기 다양한 자세로
지물을 들고 서 있는데 10대 제자를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제자들의 명칭은 경전을 통해서 알 수 있으나 석굴에 표현된 상들과 관련하여 각각의 상에 이름을 붙이기는 어렵다. 각 나한상들은 사색하는 듯한 얼굴표정에서 수행자의 모습을 느낄 수 있으며 몸체와 가사의 주름처리는 다른 조각상들과 마찬가지이다. 이 10대 제자 사이로 뒷벽 정면에는 정교한 조각수법으로 마치 회화작품과 같이 섬세하게 표현된
상징하는데 그 자비를 베푸는 대상에 따라 구제와 교화하는 방법이 다양하며 보살이 지닌 여러 감응력을 상징하기 위해 여러 개의 얼굴과 팔로 표현된다.
이 십일면관음보살상은 그 표현이 정교하고 조각기술이 완벽해 석굴암
불상뿐 아니라 통일신라시대 불상 양식의 정수를 대표한다.
주실의 윗벽 감실에 있는 8구의 상들은 모두 좌상이며 입체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그중 나한과 같이 승려머리를 한 상은 저 세상에 태어난 중생의
정토왕생을 위해 노력하는 지장보살로, 현존하는 최초의 지장보살상으로
추정된다. 머리에 쓴 보관에 아미타화불이 있는 상은 관음보살상, 뒷벽 중앙의 양쪽에서 서로 마주보고 대담하는 상은 왼쪽이 유마힐거사(維摩詰居士),
오른쪽이 문수보살로 확인되나 나머지 상들은 그 명칭을 알 수 없다.
석굴암의 여러 상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상은 원형주실의
본존불상(326cm)으로 주변 모든 상들의 구심체이다. 대좌까지 합쳐 약 500cm나 되는 큰 상이며
신체의 비례가 알맞고 각 부분이 부드럽고 세련된 솜씨로 조각되어 마치 살아 숨쉬는 듯한 부처의
형상을 하고 있다. 본존불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법의를 걸쳤으며
두 다리는 결가부좌의 자세로 앉아 있다. 오른손은 땅을 가리키고 왼손은 모아진 두 다리의 중앙에
놓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는데, 이는 부처가 깨달음을 얻는 순간을 상징하는 것이다.
간략한 옷주름 표현은 상 전체의 단순한 조형성을 강조해주며 몸 전체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긴장감과 신비한 종교성이 어우러져 예배하는 사람의 마음을 경건하게 만드는 종교예술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 본존의 명칭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수인(手印)에 의해 인간세상에
태어나 득도(得道)한 석가모니불이라는 설과 부석사 무량수전 항마촉지인의 본존불이
아미타불인 것처럼 이 석굴암 본존불도 김대성을 비롯한 신라 왕실의 정토왕생을 바라는 의미에서
조성되었으므로 아미타불이라는 의견도 있다. 최근에는 불국사가 화엄종의 사찰이고
8세기 중엽 화엄종이 유행함에 따라 석굴암의 본존은 〈화엄경〉에 나오는 첫 장면을 나타낸 것으로, 보리수 밑에서 깨달은 석가모니가 부처의 형상으로 여러 대중과 보살들에게 그 깨달음의 황홀함을
보여주면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통해 〈화엄경〉을 설하는 장면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항마촉지인의 부처 모습은 석가모니불뿐 아니라 모든 부처가 깨닫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치는 단계를 상징하는 손 모양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석굴암의 본존과 같은 항마촉지인의
불좌상 형식은 이후 통일신라 후기 및 고려시대까지 크게 유행했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 석굴암 불상조각은 정교하고 완숙한 조각기술과 신라인의 미적 감성이
반영되어 이루어진 이상적인 불상으로 8세기 통일신라시대 불교조각의 절정기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당시 중국·일본과 더불어 동아시아의 불교미술에 보이는 국제적인 성격의
불교 조각양식 형성에 통일신라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증명해주는 예이다.(백과사전 옮겨옴) |